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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해결의 목적은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체제전환이다

안은미 한국노총 정책2본부 국장

등록일 2024년10월24일 08시5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올해 2월부터 이어진 의정갈등이 이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다다랐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전공의가 흰 가운을 벗어던진 채 현장을 떠난 지 어느덧 8개월. 정작 의료를 개혁하겠다면서 이해당사자도 없이, 여러 변수에 대비한 후속대책도 없이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 정부는 책임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국회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총선 직후 보건의료 단체, 보건복지부와 연달아 청문회를 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려던 노력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가 2025년 의대 입시 정원(1,509명)을 발표했지만, 의협은 전면 백지화하지 않으면 대화 테이블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에서는 응급실 뺑뺑이, 가짜뉴스, 복귀 전공의 블랙리스트 등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져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동안 ‘의료’에 관심도, 전문성도 없던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말을 보태고 있는데, 실마리가 되기보다는 본말이 전도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본질에 접근해, 국민이 원하는 의대 증원의 필요성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보장에 대한 톺아보기가 필요하다.

 

의사의 수는 적지만 의료서비스가 부족하지는 않다?

 

병원을 이용하면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불편을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정부나 리서치 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의대 증원에 대한 찬성 입장이 60~70% 정도로 나타났다. 여러 전문가의 보고서에도 조금씩 수치는 다르지만, 의사 수가 부족해 고령사회를 대비하기 어렵다며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의사단체는 다른 수치와 결론을 주장한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서로 다른 통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를 비교하지만, 반대로 대한민국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로는 인구 100만 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을 사용한다.

 

치료 가능 사망률은 어떤 질병이 발생했을 때 보건의료 시스템이 구할 수 있는 사망을 말하며, 수치가 낮을수록 해당 국가의 의료수준이 높다고 본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과 다른 국가에 비해 적지만, 100만 명당 치료가능 사망률은 다소 낮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것이 가장 과학적인 근거와 수치인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OECD도 2022년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의대 정원 확대로 고령화와 만성질환 수요를 대비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권고한 바 있다.

 

의료수요자인 국민도 부족함을 느끼고 국제통계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는데 유독 의사들만 아니라고 한다. 전체 의사 수가 문제가 아니라 필수과(소아청소년, 응급의학, 산부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와 지역으로 배분되지 않는 시스템을 탓한다.

 

의사 수 확대와 필수·지역의료 지원대책은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전문성과 과학적 근거를 따져 추진계획을 촘촘히 짜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3년 말부터 300명이니 500명이니 하다가 2월 갑작스레 2,000명 확대를 발표했으니,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다.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 불만이 증폭된 의사들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 것이다. 의료현장에서 전공의를 등 떠민 건 정부임이 분명하고,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직접적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의료’는 의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의사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의정협의를 통해 ‘2000년대 의대 정원 351명 감축’을 추진했다.

 

이후 의대정원은 20년간 동결됐다. 2020년 코로나로 의료진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던 시기, 문재인 정부는 의대정원을 400명 확대를 시도했으나 의사단체의 집단행동 경고에 증원계획을 철회하는 의정협의를 했다.

 

역대 정권들이 의대정원을 건드리려다가 100보의 양보를 하며 여러 의료개혁 과제가 유보됐다. 불합리한 수가 체계, 실손보험와 비급여 확대 등 의료 전달체계가 왜곡되어 병원은 그야말로 돈에 종속된 시스템으로 체질화를 마쳤다.

 

수도권 미용, 성형으로 의사가 몰리고 필수, 지역의료의 공백이 커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수익을 추구하는 의료현장에서 개별 의사들의 헌신과 직업윤리만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희소성을 유지하여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몽니는 부리지 말아야 한다. 의료는 의사들의 전유물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무기도 아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3조에 따르면 “보건의료인”은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자격·면허 등을 취득하거나 보건의료서비스에 종사하는 것이 허용된 자’로 통칭한다.

 

국가는 국민의 보건의료 수요를 형평에 맞게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설치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수요자 대표, 공급자 대표를 포함한다. 이 균형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도 마찬가지다.

 

의료는 의사집단이 독점하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수요자인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면서 정부와의 직접 대화 테이블을 주장하는 의사단체의 주장은 이기적이다.

 

의사 수를 늘리려면 당사자들과 합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어느 직역이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인력의 공급은 수요에 기반한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보건의료는 공적 인프라이자 필수재라 더욱 그렇다. 의사들은 사회적인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정갈등은 성패가 아니라 해결과 발전으로 나아가야

 

의협은 의대증원 전면 백지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걸었다. 사실상 전체 의사 중 7%에 해당하는 전공의가 현장을 떠날 당시, 의사를 대변한다는 의협은 비전과 전략이 부재한 상태였다.

 

전공의가 의협의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조직적 선택을 한 것보다는 자발적 내지는 우발적으로 사직을 선택한 의사가 많았다. 그래서 개별 전공의의 현장 복귀를 위한 연착륙도 쉽지는 않다.

 

의료대란 중에도 1차, 2차 병원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병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얼마 전 간호법 통과로 진료 지원업무가 합법화된 PA간호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상급종합병원의 외래진료를 축소해 의료진이 중증 응급 환자 진료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1차 의료를 책임지는 일반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지만,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의 공백은 앞으로 전문의, 전임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혼란의 시간 후에 돌아올 전공의도 있겠지만, 일반의로 남게 될 의사들에 대한 대책과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 갈등의 중심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 다양한 과제를 논의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권의 과제이다.

 

다른 직역과의 조화, 국민의 수요 충족이라는 다양한 고리 안에서 풀어나가기 위해 전문가, 이해당사자, 일반 국민의 숙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공공의대 설립, 의료공공성과 1차의료 강화를 통한 개선을 해나가야 한다.

 

의정갈등이 단순히 승자와 패자, 또는 미봉책으로 끝내기에는 국민의 인내가 너무 길었다. 정치권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중단없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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