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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력발전소가 멈춘다고 우리의 삶마저 멈출 수는 없다

송홍곤 공공노련 한전산업개발노조 위원장

등록일 2024년10월17일 09시2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내 삶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아버지는 한전KPS 노동자였다. 마산에 있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마산의 발전소가 문을 닫자,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삼천포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로 옮겨가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일했다.

 

나 역시 25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일터였던 삼천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26년째 석탄화력발전소를 일터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51년 평생 석탄화력발전소 밥을 먹고 산 셈이다.

 

어느 순간 내 삶의 터전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기후 악당으로 전락했다. 2016년,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30년 이상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의 폐쇄를 내놨다. 이듬해에는 5년 내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 폐쇄로 발전소 폐쇄 시기를 앞당겼다.

 

2018년에는 국제사회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억제하자고 결의했다. 정부는 2020년 10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넷제로를 선언했다. 정부의 넷제로 선언 이후 석탄화력발전소는 사라져야만 하는 공간이 됐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통해 밥 벌어 먹고산 나 역시 지구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사라진다...우리의 삶도 사라진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인력은 크게 발전사 노동자, 협력사 노동자, 자회사 노동자로 구분된다. 협력사는 경상정비와 연료 환경, 설비운전을 담당하고 자회사는 청소, 경비, 소방방재, 시설관리 등을 맡는다.

 

내가 일하는 한전산업개발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전설비를 운전하고 보일러, 터빈, 탈황, 석탄 취급설비를 정비하는 협력사에 해당한다. 2021년 10월 기준, 전국의 발전소에서 일하는 나 같은 협력사 노동자는 7,000명이 넘는다. 자회사 노동자도 2022년 6월 기준으로 1,300명 가까이 된다. 2022년 5개 발전공기업 노동자 1만 4,000여 명이었는데, 협력사 및 자회사 노동자가 이 규모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셈이다.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오는 2036년까지 전국 59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28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는다. 2만 2,000여 명이 일하는 일터의 절반이 사라진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는 그냥 발전소라는 공간의 폐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노련과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2022년 발간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중심으로」를 보면,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쇄할 때 발전사, 협력사, 자회사 노동자 모두 일자리를 잃는데, 협력사의 경우 그 규모가 엄청나다.

 

특히 석탄을 직접 다루는 우리 회사의 경우, 석탄화력발전소가 30기 폐쇄될 때 1,0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는다. 정년퇴직을 고려해도 300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상대적으로 발전사나 협력사 노동자보다 임금이 낮고 지역에 밀착한 자회사 노동자의 경우 거의 모두가 실업으로 내몰리는 셈이다.

 

2만 2,000여 명이 일하는 발전소에서 수백 명 정도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 규모가 작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서류상 숫자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게 된, 또는 이미 일자리를 잃은 한 명에게는 숫자 1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삶과 이야기가 있다.

 

매일 아침,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버지와 그 뒤로 피어오르던 석탄화력발전소의 연기를 매일 같이 보고 자라 아버지처럼 작업복을 입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석탄화력발전소로 26년째 출근하는 나처럼.

 

미래를 위해 들어온 회사, 미래를 위해 떠나는 사람들

 

당장 내년 12월이면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2호기가 문을 닫는다. 태안화력을 시작으로 2032년까지 매년 2기에서 많게는 5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 우리도 일터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대개 회사에 들어오면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러나 폐쇄를 목전에 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우리는 일터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이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한전산업개발에는 3,400여 명이 일한다. 그러나 현재 일하는 인원의 절반 수준인 1,200명 정도가 지난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회사를 떠났다. 이 시기 한전산업개발을 떠난 20대 후배는 440명에 달한다.

 

가정을 꾸리고 지역에 정착해야 하는 30대 후배들 역시 같은 기간 300명 넘게 일터를 떠났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꿈꿀 수 없는 미래에 사직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2021년 5월, 내가 일하는 삼천포 석탄화력발전소의 1·2호기가 폐쇄됐다. 두 호기가 폐쇄된 삼천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24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했다. 폐쇄를 앞둔 어느 날, 전환배치와 사직 후 새로운 도전 중 고민하던 동료가 자신이 일하던 공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안한 미래로 일터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버린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동의하지만…

우리의 삶도 함께 살피는 정의로운 전환 필요해

 

여기까지 말하면 ‘그래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지 말라는 거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데 동의한다.

 

2022년 사회공공연구원에서 발전소 비정규직(협력사 및 자회사 노동자) 8,4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고용보장을 전제로 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찬성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도 4.3%나 있었다. 불안정한 삶 때문이다. 이 설문에서 응답자의 79.3%가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됨에 따라 고용이 불안하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절반 이상이 불안감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1990년대 처음 등장한 개념인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피해 지역이나 산업을 지원하는 한편, 일자리를 잃거나 낙오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국제노동기구(ILO)는 2013년, 「지속가능발전, 괜찮은 일자리, 녹색일자리에 관한 총회 결의안」을 채택하며 ▲사회적 대화 ▲사회적 보호 ▲노동권리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조했다.

 

2015년에는 「모두를 위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전환 지침」을 통해 “전환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의 예측, 실직과 해고와 관련된 사회적 보호, 직업능력개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포함하는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한 바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산업전환지원법을 제정했다. 올해 4월부터 시행 중인 산업전환지원법에 따르면, 고용안정 지원책은 사회적 대화를 기반으로 추진돼야 한다. 사회적 대화 기구는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심의회 내에 새로 꾸린 산업전환고용안정문위원회다. 그러나 법 시행 반년 동안 산업전환고용안정전문위원회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현재 한국노총 공공노련 한전산업개발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노조 전체대표자회의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속한 상급단체를 넘어 우리가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 게 2020년이다. 4년 동안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관련 법을 제정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지만,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실업의 불안감을 해소하기까지 길이 멀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멈춘다고 우리의 삶마저 멈출 수는 없다. 국가와 동료 시민을 위해 전기를 공급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8,418명의 발전소 비정규직, 2만 2,000여 명의 발전소 노동자의 삶 하나하나를 살피는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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