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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서울시 이주노동자 정책에 고한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너도 남을 대접하라!”

등록일 2024년10월18일 10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우상범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4월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민은 260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한다. 이주민 중에서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총 56만 명이고, 이중 고용허가제라고 불리는 E-9(비전문취업)이 33만 명으로 58.9%를 차지한다.

 

고용허가제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사업장에 비전문 이주노동자 취업을 허용하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됐다. 현재 고용허가제 업종은 중소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서비스업, 임업 등이며, 윤석열 정부 들어 증가추세이다. 올해만 해도 작년보다 4만 5천 명 증가한 16만 5천 명이 E-9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일방 추진·속전속결 필리핀 가사노동자 도입과정

 

최근 고용허가제와 관련된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논란은 정부와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필리핀 가사노동자 도입이다. 아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추진과정도 뜬금없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채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2022년 9월 오세훈 시장이 홍콩, 싱가포르의 사례를 접한 뒤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한다. 이에 호응하듯이 2023년 3월 21대 조정훈 의원이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과 최저임금 적용 배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사법개정안을 발의한다.

 

2023년 5월 서울시・고용노동부는 2023년 하반기 이주 가사노동자 100명 도입 및 시범사업을 발표하고 윤석열 대통령도 추진을 지시한다. 2023년 7월 고용노동부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E-9 비자, 가사법, 최저임금 적용 등을 발표한다.

 

2024년 3월 한국은행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발행한다. 2024년 6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으로 2025년 1,200명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과 5,000명의 가사돌봄 취업 허용을 발표한다. 결국, 2024년 8월 100명의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입국하고, 2024년 9월 필리핀 가사서비스가 시작됐다.

 

 

이주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의 문제점...출발부터 틀렸다

 

필리핀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1인당 96만 원 정도의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2개 정부인증 업체가 교육 수당 등을 미지급한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시범사업을 추진한 결과이다. 둘째 사업의 초기 취소율이 56.7%로 높았다. 초기 731가정이 신청했고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157가정이 최종 선정되었다. 그러나 사업 개시 직전에 절반 넘는 89가정이 취소한다.

 

당황한 서울시는 부랴부랴 추가 모집하여 142가정을 재선정하고, 이후 다시 계약 취소를 우려해 수시 모집으로 변경했다. 셋째 소위 잘 사는 지역으로 선정가정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최종 선발된 142가정 중 66가정(47%)이 동남권(서초, 강남, 송파, 강동)에 거주했다. 가사서비스보다는 영어를 말하는 ‘필리핀 이모’라는 홍보가 먹힌 것이다.

 

넷째 모호한 업무범위이다. 서울시의 업무가이드라인을 보면 청소기로 거실 청소는 가능하지만, 손빨래나 현관 청소는 안되고, 육아 돌봄은 가능하지만, 어르신이나 반려동물 돌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상관없이 ‘을’의 입장인 필리핀 가사노동자는 가사돌봄과 아동돌봄 모두 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가사노동이 가사서비스와 육아돌봄서비스로 분업화·전문화되었는데 시범사업으로 파괴될 수 있다. 다섯째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도 없이 내년 이주 가사노동자 확대를 발표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이주 가사노동자는 6,200명이 넘을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을 저출산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높은 집값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등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 주 69시간을 추진하면서 저출산 해결책으로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도입하는 윤석열 정부는 출발부터가 틀렸다.

 

이주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의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이주 가사노동자 확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월 50~80만 원의 값싼 이주 가사노동자를 활용하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했다는 홍콩과 싱가포르 정책을 모델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지난해 출산율은 각각 0.75명과 0.97명으로 1명 미만으로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패 사례를 모범 사례로 추진하고 있으니 한심할 정도이다. 그러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필리핀 가사노동자 중 2명이 휴대폰을 끈 채 숙소를 이탈해 연락이 두절 되었다. 가사노동보다 임금이 높은 업종으로 이탈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 초기부터 노동계가 이를 우려하며 지적했지만, 서울시와 정부가 귀담아듣지 않은 결과이다.

 

올바른 이주노동자 정책 추진을 위해서

 

그래서 올바른 이주노동자(이주 가사노동자 포함) 정책추진을 위해 제도적 변화가 절실하다. 첫째 이주노동자 정책 추진 시 주요한 이해관계자인 노동계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현재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와 업종 등을 심의·의결하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본회의)는 정부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실무회의)에 노동계 대표로 양대노총이 참여하고 있지만, 실무위원회 의견이 본회의에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외국인고용법을 개정하여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 노동계 대표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국내법의 ‘가사사용인’ 조항 삭제이다. ‘가사사용인’은 가정 내에서 가사업무를 제공하는 노동자이다. 최저임금법(제3조), 근로기준법(제11조), 남녀고용평등법(제3조) 등 많은 국내법은 ‘가사사용인’의 적용 제외를 두고 있다. 정부가 개인 가정 내 가사서비스 계약을 허용함으로써 이주 가사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을 노리고 있다.

 

따라서 국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가사사용인’ 조항을 삭제하여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물론 노동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황금종이’를 보면 학생운동 하다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이 되지만 정치에 환멸을 느껴 귀농한 한지섭이 나온다. 이주노동자 없이 깻잎 한 장 딸 수 없는 것처럼 한지섭도 이주노동자들의 도움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를 자신의 집과 똑같이 지을 정도로 처우에 최선을 다했다. 한지섭의 파격행보는 주변 농장주들의 비난을 산다. 하지만 한지섭은 “이주노동자도 우리가 똑같은 사람이다. 당신들이 주인으로 대접받고 싶으면 그들을 당신네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하라”라고 농장주들을 나무란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는 성경의 황금률(Golden rule)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을 무시하고, 상품처럼 대하는 정부와 서울시는 한지섭과 성경의 황금률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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