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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위기인 최저임금, 본질에 집중할 때

유동희 한국노총 정책1본부 선임차장

등록일 2024년05월10일 09시0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우리나라 헌법은 최저임금 제도 시행을 보장한다. 헌법이 최저임금 제도를 보장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사용자와 노동자 간 힘의 균형에서 노동자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인 임금을 시장 논리에 따라 노·사 자율에 맡기게 된다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금의 수준과 처우 결정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임금의 결정 구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동등한 경제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자의 최저수준 임금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와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생활 안정을 국가가 보장하고 장려하는 최소 수준의 안전장치다.

 

헌법에 따라 제정된 최저임금법에서 최저임금제도의 목적은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고 생활 안정 및 노동력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하고, 임금격차를 완화하여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하며, 노동자의 생활안정 및 사기진작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향상하는데 있다. 또한, 저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방식을 지양해 적정임금을 지급하여 공정경제를 촉진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법은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약 37년 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첫 심의가 열린 이후 현재까지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임금으로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제도의 본래 기능을 망각한 논쟁으로 심의 전부터 최저임금 제도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현재 업종별 차등적용, 산입 범위 확대, 적용 제외 및 감액 적용, 주휴수당 폐지 등 최저임금제도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 2023. 4. 26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 발족식에서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

 

한국은행,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

본격적인 최저임금 심의 일정이 5∼6월에 진행되지만, 올해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최저임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불을 지핀 건 노·사 그리고 관련 정부 부처도 아닌 국책은행인 한국은행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물가 폭등으로 민생 어려움이 극에 달하는 시기 한국은행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발행했다. 주된 내용은 돌봄서비스 업종의 인력난이 심각하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활용을 검토해야 하며,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 지정,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한국은행의 보고서 발표 직후 기다렸다는 듯 사용자 단체와 보수 경제지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시행을 강하게 주장한다.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이 사실상 최저임금 차등적용 여론화 및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은 제도 시행 첫해에 실시된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단일적용으로 유지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이 첫해만 유지되고 사라진 이유는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1988년 식료품, 섬유, 신발 등 12개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 결정액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했지만, 노·사간 갈등, 사회 혼란 야기, 업종 선정의 모호성 등을 이유로 폐지된 것이다.

 

사문화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법이 정하고 있는 위원회의 기능(제13조) 조항으로 인해 매년 최저임금 심의안건으로 오르며 노·사간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 된다.

 

사용자 단체의 주장에 따라 2009년, 2017년, 2022년에 고용노동부와 최저임금위원회가 업종별 차등적용에 관한 기초연구를 진행했지만, 결국 차등적용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뒷받침할 근거가 마련되지 못해 종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용자 단체가 아닌 국책은행이 업종별 차등적용 불씨에 불을 붙여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업종별 차등적용 논의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예상된다. 노사 간 첨예한 의견 대립과 갈등 구조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국책은행인 한국은행이 나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으로 사회 갈등을 조장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노총, 여성·청년·비정규직 대변해 최저임금 결정에 대응할 것

12대 최저임금위원의 잔여임기(24년 5월 13일)가 얼마 남지 않아 13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위촉을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각종 정부위원회에 노동계 참여를 배제했다.

 

최저임금위원회까지 노동계 위원 배제를 우려했지만 올해 양대노총은 노동자위원 추천을 변함없이 한다. 5명의 노동자위원 추천권을 가진 한국노총은 여성, 청년, 비정규직·비정형 노동자 등의 최저임금 영향을 고려해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대표로 정문주 위원(한국노총 사무처장), 박용락 위원(한국노총 금속노련 부위원장), 장도준 위원(한국노총 공공사회산업노조 기획교섭실장), 최영미 위원(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지부장)을 추천했다.

 

한국노총은 한국은행이 제기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들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돌봄 노동, 비정규직 노동과 각 계층을 대변할 위원으로 최저임금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필수 노동, 외국인 노동, 고령자 노동 등 노동을 분절하면서 저임금 추진으로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는 일체의 시도를 방관하지 않을 예정이다.

 

고물가-실질임금 하락...최저임금 노동 보호해야

정부가 발표한 거시경제지표를 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6%이고, 올해는 2.6%로 전망했다. 정부의 발표와는 다르게 실제 생활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표적으로 채소, 과일, 육류 및 어패류 등의 신선 식품 물가는 상승 수준을 넘어 두 자리 수 이상 폭등했고, 각종 공공요금과 공업제품의 상승률까지 겹치며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고물가 영향에 따른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전례 없는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2023년 5%, 2024년 2.5%)은 낮아,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을 막지 못하고, 소비위축과 내수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오히려 물가만 더욱 상승시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검증된 것이 아니다. 역대 최고 최저임금 상승률(2018년 16.4%, 2019년 10.9%)을 기록한 문재인 정부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9년 0.4%, 2020년 0.5%로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됐다.

 

결국, 낮은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 가구만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발표한 비혼 단신의 1인 가구 생계비가 240만 원이 넘는 상황에서 올해 최저임금심의는 노동자의 가구 생계비를 결정기준으로 반영한 공정한 심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병에 담긴 투명한 물에 색 잉크를 떨어뜨리면 그 물은 다시 투명해질 수 없다. 그 물은 먹지 못하거나 쓰지 못하는 물이 돼 본래의 목적을 잃는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최저임금제도의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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