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50인 미만 사업장 시행(2024. 1. 27)을 앞두고 지난 1월 15일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추가 적용유예를 목적으로 ‘민생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부가 사업주들을 모아놓고 중소기업 사업장이 어려우니 중처법 적용유예를 추가로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하라고 해놓고, 이것을 ‘민생 현장 간담회’라 포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업재해 사망자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처법을 시행하는 것과 추가로 유예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민생에 가까운지 자명하다.
이번 중처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여부와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3가지 전제조건(①정부의 사과 ②정부의 지원대책 ③더 이상의 추가 유예를 바라지 않겠다는 경영계 단체의 선언)이 충족되면 추가 적용유예 연장을 의논할 수 있다고 하였다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일반회계 확대(8천억 원 증액)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까지도 조건에 추가했다.
민주당이 50인 미만 사업장 추가 적용유예 연장을 논의할 수 있다고 나서는 점도 비판해야 하지만, 우선 정부가 중처법 추가 적용유예를 위해 급조해 작년 12월 27일에 발표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지원대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1월 22일 오전 9시 40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반대 국회 긴급 기자회견’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지원대책」추진배경의 문제점
정부는 지난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며 위험성평가 강화를 표방했다. 그러나 실상은 위험성평가 기법만 완화했을 뿐 미실시 등에 대한 제재 강화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서 진행한 산업안전보건 수사·감독 개편으로 중대재해 발생 시 현장 수사·감독이 더 늘어지고 있다. 안전보건규칙도 사업장에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권고사항으로 낮춰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방임하거나 방치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약화했다. 수십 년간 지원 정책을 펼쳐 왔으나, 과정과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는지 성찰부터 할 필요가 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 강조? 50인 미만 사업장의 방임으로 방치로 이어질 뿐
정부는 민관합동 추진단 구성·운영에 노사를 배제했다. 최근 정부는 산재 예방 및 보상과 관련한 여러 회의체에서 노사를 직·간접적으로 배제하여 고질적이고 장기적 문제들을 덮는 데에만 급급하다. 지원대책 추진단에서도 노사를 배제한 것은 결과적으로 답정너 통과를 위한 형식적 절차 추진으로 보인다.
50인 미만 사업장(83.7만 개) 대상 전수 자체진단실시를 표방했으나, 전수 자체진단을 하지 않아도 패널티가 없다. 현 정부는 자기규율의 안전보건을 강조하고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 안전에 대한 방임과 방치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유예기간 연장 명분으로 제시한 정부 지원방식도 숙고가 필요하다.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 명분으로 이미 지원된 45만 개소의 사업장은 지금 안전한가? 추가 2년간의 유예기간은 지난 2년간의 유예기간과 무엇이 다르고 기업이 재해 예방을 위한 참여와 실천에 능동적, 자율적으로 임할 수 있는 기제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다.
과연 지난 2년과 다른 앞으로 제공될 컨설팅, 교육 및 기술지도 등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더 성과를 낼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다. 정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체계구축 사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사업장이 없다. 2년 유예되고도 과연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중처법 적용을 통해 50인 미만 사업주의 노동자 안전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게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 변화 없이, 자발에 맡긴 상황에서 정부의 물량 중심, 공급자 중심의 지원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숫자만 늘리는 안전보건관리역량 확충 지원? 실효성 없다
안전보건관리역량 확충의 경우 컨설팅, 기술지도 등의 서비스 품질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다. 안전보건 전문인력 양성도 2만 명을 어디서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노동단체는 공동안전관리가 단순 컨설팅 지원이 아닌 사업장의 실질적인 안전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전보건 전문인력 양성의 경우 정부가 이미 몇 년간 안전관리자에 대한 선임기준과 자격인정 요건 완화하는 연구과제를 진행한 바 있다. 안전보건 전문인력 수요 파악과 전문인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지 않고 숫자만 늘리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노사를 비롯한 학계의 전문가가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안전관리자 선임 또는 배치라는 형식적·절차적 실적이 안전보건관리 역량으로 포장된 채 엉터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봐야 한다.
작업환경 안전개선 방안 비판적 검토
소규모 사업장은 기초적인 방호장치가 없어 소위 ‘재래형 산업재해’가 다수 발생한다. 이번 지원 대책 중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비용 지원 확대>는 소규모 사업장 사고 현장 검토마저 없는 생색내기식 대책이다. 우선 기초적인 방호장치 유무와 작동 여부에 대한 실사 이후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 검토가 되어야 한다.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고위험 산단을 대상으로 한 안전모니터링 시스템 설치 지원 확대>는 이미 과거 사례를 볼 때 시간만 흘려보낼 분 성과가 없을 것이 자명하다. 안전모니터링 시스템 설치는 ①노동자의 통제와 감시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거나 부족하고 ②개인정보보호법상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갖는 등 노동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③해당 작업의 근로자 전원, 노조 또는 노사협의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에서 동의를 하고 제한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점 등 부작용이 대두되어 상당한 검토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정부는 이번 기업지원대책을 내놓으며 ‘민간주도 산업안전 생태계 조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열악하고 위험한 중소규모 현장을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순간, 중대재해를 방지하겠다는 목적을 전도하게 된다. 심지어 정부는 민간주도 산업안전 생태계 조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없이 재해 예방 역량이 강화 기대를 언급했다. 감나무 아래에서 홍시가 입안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꼴이다.
국민 눈속임 짜깁기·부풀린 대책 즉각 중단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중처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과 관련하여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고금리, 고물가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짐을 지우게 되면 중소기업 존속이 어려워, 그 피해가 근로자와 서민에게 돌아간다.”라고 발언하였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지만, 정부가 법 시행 이후 3년간 무엇을 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업장 내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할 시간은 충분했다. ‘기업 없으면 노동자 없다’며 노동자를 협박하며 2,500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터부시하는 정부와 여당은 어느 나라 정부이며 진정 국민을 위한 공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중소기업에서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일할 권리가 기업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