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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조기 정착을 위한 제언

이명구 을지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등록일 2024년04월11일 09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산업재해 예방에 있어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경영책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이었기에 중대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그의 책임을 엄격히 규정하고자 2021.1.26.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공포했다.

이 법의 시행은 1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은 그 유예기간을 2년 추가하여 2024.1.27.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제정 당시에도 노동계와 경영계 간에 첨예한 논란이 되었고, 전문가 단체에서도 찬반 논란과 법령에 관한 이슈들이 있었으며,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 적용 확대 당시에는 더욱 큰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우여곡절 속에 법 제정 당시의 유예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적용하고 있다.

 


▲ 한국노총이 지난해 10월 개최한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현장 적용 및 개선방안 토론회’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것

중대재해처벌법은 법령명이 갖는 위엄성이 상당히 높긴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가 준수하여야 할 핵심적 내용을 열거하고 이것만을 준수하더라도 중대재해는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처벌법이 아니라 그 내용은 예방법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이를 확대 적용하지 않았더라면 50명 미만 사업장은 산안법 적용도 예외인 것으로 오인할 수 있을 것이다.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한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아직도 그 문제점들을 해소함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 조기 정착을 위해 법령 정비 및 정책 수립 방안에 대한 소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역량 강화 및 지속 경영 가능성 확보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 역량이 미흡하고 이로 인해 단 한 번의 중대재해가 사업의 도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2022년 산업재해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체 297만 개 사업장 중 5명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75%에 육박하고 5~49명 사업장은 23%(70만 개)에 해당하여, 50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98% 이상이 된다.

 

전체 사망재해자 2,223명 중 5명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26%에 육박하고 5~49명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36%(800명)이며, 사고사망자는 전체 874명 중 5명 미만 사업장에서 39%(342명)이고 5~49명 사업장에서 42%(365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했다.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역량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변화가 요구된다.

 

산안법 상 안전보건교육의 시행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고 그는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할 의무는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50명 이상 사업장(일부 사업장은 100명 또는 300명 이상)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선임하고 사업장의 안전보건 활동을 총괄할 역량을 갖추도록 직무교육 이수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선임의무가 없는 사업장(전체 사업장의 98% 이상)은 안전보건 활동을 총괄하는 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이수 의무가 면제되어 사업장의 안전보건 리더를 양성하지 못한 형태가 된다.

 

안전보건 활동의 리더는 안전보건 관련 법규, 효율적 활동 방법, 관련 정책 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야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의 진흥에만 역점을 두고 안전보건 활동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선임의무가 없는 사업장수는 전체의 98% 이상이며, 그러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 사망자 수는 전체의 80%를 넘는다.

 

정부는 이러한 사업장에 대한 지속 가능한 경영체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관리책임자를 선임하지 않은 사업장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직무교육 이수제를 도입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 실효성 증진을 위한 법령 개정

중처법 제8조 안전보건 교육의 수강 명령제의 조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경영책임자 등’에만 적용되고 ‘사업주’는 제외되어 있다.

 

양벌규정의 면책 사유도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관심 독려와 인식 증진을 위한 유인책으로 실효성이 낮으므로 개정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건설사의 대표이사로서 전국 각지의 건설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지위에 있는 경영책임자가 관계 법령에서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조직구성, 예산편성, 전담인력 배치, 이행상태 확인 등 시행령에서 정한 일체의 사항)를 모두 이행하고 늘 안전보건 활동을 강조하며 정기적으로 현장 확인 점검까지 직접 수행하였으나 현장에서 관리책임자가 일시적인 의무 불이행으로 중대 사고가 발생한다면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10억 원 이하의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법인 또는 기관은 면책을 받을 수 있다.

 

형식적인 방침 및 목표 설정, 전담조직 구성, 예산 지급, 이행상태확인 등 문서 위주의 이행이 중요한가 아니면 문서정리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경영책임자가 늘 관심과 격려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 후자가 훨씬 더 구성원의 안전보건 활동을 견인함에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현행 법조문은 전자를 택하고 있어 이는 향후 양벌규정 조문에서 면책규정을 경영책임자 등에게 부여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실질적 안전보건 활동을 유인하는 효율적 법규가 될 것이다.

 

중대산업재해 다발로 인한 행정력 소모 방지

산업재해는 그 원인이 없는 것이 없고, 그 원인을 제거한다면 모든 사고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방 활동을 철저히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미미한 허점으로 인해 사고는 발생하고, 사고로 인한 재해의 크기는 우연히 결정되어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원인을 제거한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자동차 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차를 모두 제거하는 것과 같고, 위험요인의 완벽한 제거를 위해 끝없는 예방비용을 투자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그들에게 부여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에 한하는 것이므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때에 발생한 중대재해는 면책될 수 있다. 하지만 면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고 이를 조사하는 근로감독관조차 사업장의 특성과 작업환경을 모두 고려할 정도의 충분한 역량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별 형법 적용에 있어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영국의 기업과실치사살인법의 경우 기업의 범죄 여부 판단을 배심원이 하도록 하고 있다. 배심원은 재해자에 대한 기관의 주의의무 여부와 그 의무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있었는지를 판단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중대재해가 발생하여 작업중지 명령을 받은 사업장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 해제 심의를 하는 때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제하고 있으며, 그 이외 다른 법령에서 행정처분을 하려는 경우에는 청문을 의무화하고 있고 청문에는 관계 민간전문가를 포함하여 회의를 거쳐 처분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와 유사하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여 기소청구를 결정할 때 근로감독관에게만 위임하지 않고,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 관계전문가, 해당 사고의 조사자(공무원 및 기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위반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면 소요되는 행정력 소모를 감소할 수 있고 위반 여부 판단에 관한 중압감을 다소 경감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선량한 사업장(예방활동을 충실히 하였으나 발생한 중대재해)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따른 법적 대응 소요 시간 및 경비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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