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직원이 떼쓰는 것까지 다 받아 주라카믄 사업을 우째 합니까? 거는 민노총이랑 쪼매 다른 줄 알았드만 거기 일도 아니면서 왜 한목소리인교?” 평소 직원들의 연차휴가, 일용직이나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 활용 문제를 상담해 온 어느 제조업체 인사관리 담당자가 전화로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7일 경남도의회 정례회에서 유형준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의원이 5분 자유발언대에 나섰다. 한국노총 소속 노조간부 활동의 이력으로 비례대표 의원이 된 그는 지난해 대우조선 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사측이 하청노동자 5명에게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관심과 기업·정치권의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열악한 근로조건의 하청노동자 5명에게 기업이 청구한 손해배상액 470억원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자칫 이 문제가 과거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자동차 손해배상 문제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 11월 1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조속한 공포 촉구 양대노총 기자회견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서 통과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국노총은 노란봉투법이 그동안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며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외면해 온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립하고, 노동자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막아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기에 신속한 입법을 주문해 왔다.
사실 한국노총 단위노조 대표자들에게 노란봉투법은 큰 관심 사항은 아니었다. 노사분쟁에서 파업 등 현장의 조직력을 활용한 물리적 투쟁보다는 가용 가능한 사회적 자원을 활용한 협상에 치중하는 한국노총의 특성상, 장기 파업이나 격렬한 노사대치가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활동에서 협상과 투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한국노총 역시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노동권을 언제든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이 만연한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신사적인 협상만으로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난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다시 한번 인식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결정하고 작업내용을 지휘·감독하며, 원청 본사의 제조·생산·물류시스템에 하청노동자를 편입시켜 업무 효율성을 강화해 왔다. 임금인상이나 고용계약 해지 이슈에는 원청에서 결정권이 있다며 발뺌하는 하청업체 사장이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사장 원청을 찾아가는 일뿐이다. 정규직 노동자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면서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열악한 근로조건을 방치하는 원청의 무책임한 태도가 유지되는 한, 노동현장에서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같은 극한 투쟁은 반복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이후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와 한목소리로 노란봉투법 통과를 비판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노사관계를 불안정하게 할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수고용·파견·용역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기반해 이윤을 누리는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대놓고 기업의 편을 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은 하청노동자 떼쓰기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원청이 눈감은 사용자 책임을 돌아보라는 사회적 주문이자,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권을 틀어막으려는 기업의 횡포를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다. 정부·여당, 그리고 기업은 다시 한번 노란 봉투법 입법을 청원한 노동자 수만 명의 바람에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