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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함께 산다는 것

<두 사람을 위한 식탁>(2023)

등록일 2023년11월06일 14시2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젊은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며 불꽃처럼 살았던 한 여성이 있다. 90년대에 접어들고 더는 운동 진영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출산과 육아의 길로 접어든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으나, 지방의 한 대안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어린 딸과 함께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자리와 역할을 발견한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 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일이 가져다주는 보람은 너무나 컸다.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려고 할 무렵, 그녀의 10대 딸은 식사를 거부했다.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극단적인 거부. 얼마나 심했던지, 엄마는 당시를 회상하며 “곧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딸은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10년 넘게 거식과 폭식을 오가는 섭식장애와 함께 살게 된다. <피의 연대기>로 월경에 관한 것을 모두 다루며 여성의 몸을 얘기했던 김보람 감독은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서 이 모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박상옥과 박채영.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지난 기억을 꺼내 놓는다. 여전히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딸 채영이 십수 년간 쓰고 모아 온 일기가 중간에서 이정표가 되어 준다. 엄마가 울면서 나를 체중계 위에 올려놓았던 기억, 병원에서의 일들, 폭식을 통해 욕구와 욕망에 집중할 수 있던 날들. 섭식장애에 관한 세상의 다양한 말들이 있지만, 채영에게 그것은 ‘외모에 대한 강박’ 같은 원인으로 비롯되는 증상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채영이 꺼내는 기억은 내 삶을 통제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지난 시절을 담고 있다.

영화의 개봉과 함께 출간된 박채영의 책 『이것도 제 삶입니다 – 섭식장애와 함께한 15년』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있다. “처음으로 엄마가 떠주는 밥을 남기기로 결심 한 날, 내 마음은 비장했다. 언제나 애타게 원하는 것이었던 엄마의 밥을 거절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정확히 엄마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다. 받은 것을 거절하는 마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영화는 그런 채영의 말을 찬찬히 듣는다.

 

그리고 한편에는 전전긍긍하며 딸을 데리고 병원을 오갔던, “군사주의하에서 여성성을 억압당했던 엄마가 저항하며 산 것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딸을 그렇게 키운 걸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빠졌던 상옥이 있다. 그녀에게는 왠지 그녀의 딸도, 딸의 증상도 섣불리 풀 수 없는 퍼즐 같은 미지의 무엇처럼 보인다. 섭식장애와 함께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 무언가 풀리지 않은 앙금이 남아있는 듯 보이는 그들의 현재에 카메라가 들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영화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든 낱낱이 밝히지 않는다. 섭식장애가 무엇인지, 그 일반적인 원인은 어떤 것인지, 이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파고들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일을 겪으며 지금껏 살아온 두 여자의 현재, 그리고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누군가의 삶이란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채영의 섭식장애가 엄마와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영향이 있었을 테지만, 삶은 그것을 훨씬 초과하는 것일 테다.

 

카메라는 대화하는 모녀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그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긴장과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관찰한다. 그렇게 여전히 일상을 괴롭히는 여러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를 응시한다. 서로를 아끼지만,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채영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며 독립을 하기로 한다. 한국에 남은 상옥은 나름대로 홀로서기를 한다. 그렇게 영화의 흐름도 변화를 맞이하는 듯 보이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답게, 코로나19와 함께 채영은 다시 국내로 돌아와 상옥의 집에 머문다.

 

영화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유 해 바라보는 질병의 속성이란 ‘완치’를 목표로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채영은 책에 이렇게 쓴다. “이것도 삶이다. 증상과 발맞추어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면서 사는 것도 삶이다.” 섭식장애 증상은 일상을 힘겹게 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너무나 괴롭지만, 채영은 그러한 질병, 나의 몸에 달라붙어 영향을 주는 병과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한다. 영화엔 섭식장애를 다룬 영화를 떠올릴 때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 들어있다. 정성스럽게 요리하고 함께 밥을 먹는 장면들이다. 요리하는 일을 즐기며 직업으로도 삼은 채영은 “세상에 나를 내놓는” 준비 연습인 음식 만들기를 통해 타인과 만난다. 그렇게 영화는 누군가를 먹이고 키우며 보살피는 ‘돌봄’이라는 주제 또한 슬며시 던져둔다. 밥이란 우리 삶에서 도저히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음식 때문에 아프고, 고통받지만, 필요로 하며, 원한다. 일상과 너무나 가까워 쉽게 잊곤 하는 아이러니를 이 예리한 영화는 일깨운다.

 

 

사랑하지만 가까이 있으면 힘들고, 필요하지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들 사이에서, 이토록 모순적인 세계에서 채영은 “내 몫”을 분명히 인지하려고 한다. 엄마가 내 삶에 영향을 주었지만, 일에 투신하느라 “딸아이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신경을 쏟지 못한 엄마의 딸로 살았지만, 내 병의 책임을 엄마에게 묻지 않고 내 몫으로 받아들이고 살기. 그것을 감당하는 것 또한 내 삶의 일부라고 인지하기. 다만 그녀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엔 모녀가 주방에 서서 혹은 앉아서 대화하고 그러다 싸우고 그러다 웃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대화엔, 내 삶은 나의 것이되, 우리가 함께 겪은 시간은 우리의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니 싸우더라도 대화해야 해, 그렇게 삶을 바라봐야 해.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마주 앉을 식탁이, 그렇게 함께 밥 먹을 식탁이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등장하진 않지만, 영화엔 채영의 할머니 그러니까 상옥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절대 좋게 기억할 수 없는, 그러나 채영에게 고구마 예쁘게 찌는 법을 알려주었던 사람. 영화는 누군가의 말 속에 등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복잡성을 드러내려 노력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각기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전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자기 몸 밖에 없어서, 목구멍을 쑤셔 토하며 살았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특히 여성들에게 몸이 어떤 의미인지, 몸과 마음의 연결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누군가의 사연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지 않고, 빈칸들을 통과하며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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