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시행 19년을 맞이한 한국 사회 일터는 어느새 이주노동자로 메꿔지고 있다. 더 험하고 더 힘든 일터,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이주노동자로 급격히 채워지고 있지만, 이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도, 이주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은 ‘노예노동’에 내몰려 있다.
2020년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의 한겨울 비닐하우스 사망 사건으로 사회적 질타와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요구하는 이주노동자의 투쟁이 거세지자, 정부는 ‘숙식비 및 사업장 변경 관련 TF’를 구성했다. 그러나 몇 년에 걸쳐, 일 년에 두세 번 정도의 논의만 있었을 뿐, 정작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던 사업장 변경 관련 지역별 이동제한을 담은 개악을 정부는 강행했다.
▲ 7월 11일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기본권 제한, 사업장 변경 개악하는 정부 규탄 기자회견'
지역소멸 책임을 이주노동자에게 전가...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해야
윤석열 정부는 지난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7.5) 이주노동자의 숙식비 지침과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숙식비 지침 변경으로 기존의 ‘이주노동자 숙식비 징수지침’을 폐기하고,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관련 가이드라인’을 새로 만들었지만, 가설건축물 숙소 활용 및 숙식비 사전공제는 폐기되지 않았다. 특히,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 자유는 현행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서 권역별 지역 내 이내로까지 제한하는 독소조항을 덧붙였다.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 지역 이동까지 제한한 것은 노동기본권 후퇴이자 반헌법·반인권 정책이다. 특히 정부가 2021년에 비준한 ILO 29호 강제노동금지 협약 위반으로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열악한 일자리에서 한국의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지역소멸의 책임까지 떠넘기며 권역별 지역 내 변경 제한을 두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기본권 침해다. 당장 폐기하고,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를 보장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개악을 의결한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노사전문가 참여가 봉쇄된, 정부 부처 위원으로만 구성된 회의체다. 사전 회의체인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는 노동계가 반대 의견을 전달해도 전혀 수렴되지 않는 구조다. 정부는 이해당사자 또는 이를 대표하는 노동계의 의견을 배제했다.
자본가와 기업은 이윤 위해 내국인·이주노동자 물불 안가려
고용허가제의 목적은 내국인 고용 우선 및 노동시장 보호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소원 수리를 위한 이주노동자 확대 정책은 노동시장 전체 일자리 질 하락과 더불어 국내 노동시장 이중구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의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하청·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 열악한 일자리부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불편하고 힘든 일자리가 이주노동자로 메꿔지고 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바로 그 일이 내 일자리가 될 수도 있고, 조만간 나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것은 당연하다.
자본가와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내국인과 이주노동자를 가리지 않는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플랫폼 프리랜서 등 다양한 고용형태로 쪼개고 갈라치며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것이 눈앞의 현실임을 상기하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이주노동의 동등한 권리와 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바로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