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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외로운 섬

<절해고도>(2023)

등록일 2023년10월10일 13시3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어느 남자가 있다. 재능 있는 미술학도이자 촉망받는 조각가로 불리던, 그러나 지금은 예술 활동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과학관에 납품할 토성과 화성 모형 만드는 일, 바닥을 깨고 벽을 짓는 인테리어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한편으로 자유로운 방랑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덥수룩한 머리에 자유분방한 복장으로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같다. 아이들에게 가는 것이니 토성과 화성 모형에도 이야기를 주고 싶다는 모습이 천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길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는 지금 그는 쓸쓸한 게 아닐까. 애써 아쉬움과 슬픔을 지운 채 사는 건 아닐까. 예술가의 길이란 무엇이고, 그의 길은 또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는 길을 잃은 것일까. 살고 싶었던 삶과 지금의 삶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것일까. 살짝 피로한 얼굴과 단순한 몸짓, 몇 마디의 대사만으로 다양한 질문을 스크린에 불러오는 그의 이름은 윤철(박종환).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기 마음의 별만 보고 길을 찾는 일이었다. 길을 잃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었다.” 예술가를 꿈꿨고, 한때는 길을 잃을 위험이 없는 스님이나 신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남자. 세상에 휩쓸려 정신없이 살고 보니, 그는 결국 길을 잃었다.

 


▲ 다음영화

 

윤철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물려받아 그림을 잘 그리는 고등학생 딸 지나(이연)가 있다. 윤철은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도 함께 지내지는 않지만, 지나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부를 수 있는 보호자다. 미술에 재능을 가졌으나 “자기 목을 찌르는” 피 흘리는 여자를 그린 끔찍한 그림, 남들에게 쓰레기라고 불리는 그림을 그리는 지나는 세상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림을 뺏기고 휴식을 권고받은 지나는 방황 한다.

 

한편 윤철은 친구의 소개로 강사 영지(강경헌)를 만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영지는 세계 오지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사는 영혼이다. 몇 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했으나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녀를 세상에 묶어두는 족쇄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철은 어쩌면 영지가 생의 마지막 사랑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 윤철에게는 중요하고 소중한 두 여자가 있다. 하지만 이 관계는 점차 흔들린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지나는 갑자기 출가를 결심한다. 다 그만두고 절에 들어가 수행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한때 윤철이 그렸던 미래는 이제 지나의 것이 되었다. 이 선택에 누구보다 크게 흔들리는 건 윤철이다. 그는 운명에 대해, 내 것이 아닌 삶에 대해, 믿음에 대해 힘없이 질문을 던지며 주저앉는다. 곁에서 “지나는 조금 특별한 거야. 그렇게 자기 길을 찾아가는 거잖아.” 하고 영지가 다정한 말을 건네준다. 그런 영지를 두고 홀로 출국했던 윤철은 다시 돌아와 이제 떠나겠다는 영지의 뒷모습을 본다. “네 인생엔 너밖에 없지. 다른 사람들은 다 네 생각대로 움직이고 기다리기만 하나 봐?” 윤철은 이제 두 여자를 모두 잃었다. 그들은 윤철이 손을 뻗어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지나는 속세를 떠났고 영지는 해외로 떠났다. 관계는 개선해 볼 여지도 없이 어그러지고, 서로 이해하는 건 너무나 먼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여기에 어떤 것이 새롭게 가능해질까? 무언가 가능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 다음영화

 

<절해고도>는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영화잡지 ‘키노’에서 일했으며,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기도 했던 김미영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절해고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의 외딴섬’을 의미한다. 바다 한가운데 너무나도 외로운 섬. 이는 곧바로 윤철을, 그리고 지나와 영지를 이르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고독한 사람들. 아직 상대에 대한 이해에,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도 접어들지 못한 윤철. <절해고도>는 이 지점에서 마치 낭떠러지에서 한 발 내딛듯 과감한 결단을 한다. 실의에 빠진 윤철은 낡은 차를 몰고 어느 산으로 향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는 온갖 흙먼지로 뒤덮여 있다. 어쩌면 한 몇 년쯤 지났는지도, 아니면 그저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낯선 남자에 의해 윤철은 구조된다. 마치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그는 깨어난다. 그리고 삶은 거짓말처럼 다시 시작된다.

 

그사이 지나는 머리를 깎고 어느 암자에서 ‘도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행자 생활을 시작한다. 부녀는 다시 만난다. 서로를 ‘행자님’과 ‘거사님’으로 부르고 존대하며 부녀는 새로운 관계의 장에 들어선다. 윤철도 덥수룩한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국숫집을 열어 새 생활을 시작한다. 가끔 암자에 들러 여기저기 부서진 곳을 수리하며 그렇게 고요히 지낸다. 그러던 중 영지에게서도 연락이 온다. 암이 재발해 근처 수녀원에 몸을 의탁했다는 것이다. 서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졌던 인물들은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관계로 다시 만난다. 길 잃는 게 두려워 멀리멀리 회피하며 지냈던 윤철은 영화가 열어주는 낯선 길을 따라간다.

 

무언가 손에 쥐려 하기보다 버리기를 택한 사람들은 서로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여주고 서로의 삶을 조금 더 맑은 눈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새로 얻은 하루하루를 산다. 그러고 보니 죽다 살아난 건 윤철만이 아니다. 지나와 영지도 여행지에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노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그들을 살린 건 생면부지의 타인이다. 혼자인 줄로만 알았던, 어쩔 도리 없이 고독했던 삶이 실은 그토록 무수한 연결을 통해 지탱되고 있었다.

 


▲ 다음영화

 

“지금의 나도 내가 원해서 된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살 수 없다는 걸 깨닫지만 동시에 그 인생이 지독히도 고독하다는 걸 깨닫는 것. <절해고도>는 그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만, 비탄이나 절망에 빠져들지 않는다. 죽음과 질병의 얼룩을 가까이 두고도 영화는 계속되는 삶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절경 속에 고요히 움직이는 인물을 한 발 떨어진 채 담아내는 촬영은 우리가 이토록 거대한 세상에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러한 세상에서 삶은 순환된다. 삶은 서로 나누고 다시 살아지고, 연결된다.

 

윤철은, 지나와 영지는 여전히 서로에게 외로운 섬일 테고, 사람들은 언제라도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길 위에 서게 될 테다. 하지만 사는 일은 무용하지 않다.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 위에서 우리는 세상을 발견하고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깊고 고요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절해고도>는 우리에게 그러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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