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여러 면에서 높아졌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졌다는 것이 곧 ‘완전’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공식적인 차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 공공연하게 여성이 부재하고, 일터와 가정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한다. 일견 평등할 것만 같은 노동조합에서조차 그렇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현재’라면 한국 사회 여성노동자의 지위, 과연 이대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23년 한국노총 여성노동포럼’을 여성과 여성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근본적 고찰의 장으로 삼았다.
▲ 7월 5일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3년 한국노총여성노동포럼'
경제는 선진국, 성평등 수준은 후진국
지난 6월 세계경제포럼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성격차지수는 2019년 이후 몇 계단씩 상승해오다 다시 하락해 전체 146개국 가운데 105위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에 있어 세계 10위권을 달리는 국가가 성평등 수준은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른 후진국이라는 ‘반전’이 그저 부끄럽다. 특히 성격차지수 가운데 경제참여·기회부문에서 114위를 차지할 만큼 격차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여율, 심각한 성별 임금 격차, 낮은 여성 관리직·전문직 비율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일과 노동의 세계는 심각하게 남성 지배적이고, 남성 편향적이다.
「저임금 여성노동과 성별 임금 격차」를 주제로 여성노동포럼의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김난주 연구위원 역시 여성노동이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고, 저임금화되어 있는지를 꼬집었다. 김 위원은 “한국의 노동시장 성별 격차는 성별 임금 격차로 압축된다”면서 “2022년 여성의 경우 임금근로자 5명 가운데 1명(21.6%)꼴로 시간당 중위임금 2/3미만을 받는 저임금근로자인 반면, 남성은 10명 가운데 1명(10.6%) 정도가 저임금근로자”라고 밝혔다. 김 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성별임금 격차의 2/3에 해당하는 68.6%는 ‘설명되지 않는 차이’라고 한다. 설명되지 않는 차이란 교육·훈련, 경력단절, 성별 직종 분리, 전일제와 시간제, 기업 규모와 노조 등 성별 임금 격차를 유발하는 각종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차이 즉, ‘차별’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이유도 없이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받고, 임금을 통해 구조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무급노동,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일터에서의 여성이 노동자로서 남성 노동자와 차별에 직면하고 있다면 가정에서는 과연 어떨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사와 돌봄은 남자와 여자 모두 평등하게 분담하고 있을까? 여성노동포럼의 두 번째 발제자 인천대학교 송다영 교수는 가정 내 가사노동과 돌봄에서 성별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남녀 모두 일하는 것이 일반 규범이 되면서, 일하면서 출산·양육 시기를 거쳐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 의제가 되었지만, 여성의 일가족양립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2021년 양성평등실태조사 결과, 경제적 부담과 돌봄에서 동등하게 책임을 지고 있는 비율은 16.4%에 불과해 여성이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가사노동과 돌봄 역시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장시간 노동 ▲조직문화로 수용되지 못하는 휴직제도 ▲가사노동 및 돌봄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일가족양립이 어려운 이유로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 관행은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가정 내 돌봄 제공자(주로 여성)를 전제해야 하기에 남성 우대, 여성 차별 구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주간 노동시간 단축으로 성평등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무급노동에서의 젠더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를 노동시간 단축에서 찾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바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평등 후진국 한국은 그와는 반대로 노동시간을 늘리려 하고 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무급(무보수)노동 없이 살 수 없기에 무급노동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매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자 하는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직장을 재설계하고,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과 같이 성별 고정역할 관념을 깨야 한다. 무급 가사·돌봄 노동이 여성만의 몫이라 여겨지지 않을 때 여성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유급 노동자’로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멀어도 가야 할 길, 성평등 사회
사실 조선 후기 성리학이 들어오기 이전 조선에서는 남녀지위가 동등했고, 여권도 존중됐다고 한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남성과 여성이 불평등했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며 성별 역할이 구분되고, 왜곡된 관념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만들어 놓은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구조적 차별이 만연하다. 여성의 지위만을 놓고 본다면 역설적이게도 과거로 돌아가는 게 더 낫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은 비단 우리 사회 ‘절반’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평등은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데 기여하며,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근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에서 2009년 이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가는 아이슬란드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슬란드도 불과 50여 년 전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1975년 10월 24일, 모든 여성이 유급노동(직장)과 무급노동(가정)에서 동시에 손을 뗀 파업은 남성들과 사회의 인식 전환을 가져왔고, 1976년 직장과 학교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성평등법 통과, 1980년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 선출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일등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에 아이슬란드의 변화를 벤치마킹해 배워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아직 한국 사회 여성의 지위는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끝에 정말로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