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우 금융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 부위원장
산업은행 부산 이전 분쇄 투쟁!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한 2023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는 '337일차 이전반대 아침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교사'였다는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가 ‘부산 이전’이라는 미션을 들고 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산업은행 직원들은 매일 아침 출근 전 로비에 모여 '산은 이전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매주 목요일마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 광화문 금융위원회 앞 등 야외 집회를 열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부산시청 앞,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도 집회를 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산업은행 직원들이 부산 이전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부산에 살기 싫어서’가 아니다. 지역 표팔이를 위해 한순간에 말을 바꾼 대통령, 기관 경쟁력과 국가 금융경쟁력은 뒷전인 산업은행 경영진과 금융당국, 그리고 최소한의 노사협의조차 없이 일방통행으로 강행하는 일련의 절차에 분노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후보 시절에는 공공기관 이전으로 국가균형발전 안된다더니...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사퇴한 후 대전 간담회에서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아버지는 KTX를 타고 다니고, 가족은 수도권에 산다”며, “공공기관이나 정부 부처 이전으로 공기업을 내려보내는 정부의 일방적인, 강제적인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를 지원해 민간 기업들 스스로 특정 지역에 산업기지를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당시 “국책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은 조직의 효율성 및 고유기능의 저하 등을 이유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국책은행 서울 유지 동의” 입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시기 부산 유세 중 돌연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부산 발전과 국가 금융산업 발전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가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설명이 없었다. 작년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문제점들이 다수 지적되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지역균형발전, 금융산업발전에 대한 정부의 로드맵과 청사진이 없는데 산업은행 하나만 덜렁 이전해서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라고 비판했고, 오기형 의원 또한 “서울 금융중심지 정책은 정권과 상관없이 유지되었던 것인데 이러한 국가정책을 아무 이유 없이 바꿀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산업은행 이전이 필요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국가 금융산업의 ‘자해행위’
산업은행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이다. 금융시장에서 하나의 ‘플레이어(Player)’가 되어 다른 기관들과 협업하고 경쟁하며 정책금융에 필요한 자금을 벌어들인다. 만약 산업은행이 금융시장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수행 능력이 떨어져 국가 금융산업 전체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우선 고객 기업과 멀리 떨어져 비효율성이 증가하고 수익성은 떨어진다. 산업은행 거래처의 70%가 수도권에 있다. 실제로 본점 기업금융실의 거래기업들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반대한다. 올해 초에 해양금융을 확대한다고 부산으로 내려보냈는데, 해운사, 조선사 본사가 다 종로나 여의도에 있다. 본사가 포항에 있는 포스코의 자금부서도 서울에 있다. 금융기관뿐만이 아니다. 실제 기업대출이 이뤄질 때까지 신용평가사, 보험사,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여러 기관이 함께 협력한다. 규모가 클 때는 은행과 증권사 여러 곳이 모여 ‘대주단(Lenders)’을 구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보통 기업이 대출을 받으려고 하면 여의도에 와서 산업은행을 방문하고 수출입은행도 가고 여의도 증권사도 간다. 그런데 산업은행만 부산에 있으면 모두가 불편할 것이다.
또한, 금융산업은 적시성이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기업이 자금이 필요할 때, 산업에 투자가 필요할 때 금융기관이 빠르게 금융 수요를 파악하고 자금지원을 해 성장에 가속도를 붙인다. 만약 산업은행이 멀리 떨어져 적시에 구조조정을 못하고, 적시에 미래 유망산업에 투자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손해는 국가 전체에게 돌아간다. 혹자는 화상으로, 비대면 회의가 가능하지 않냐고 한다. 기업 대출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 번에 수백억 원, 수천억 원, 심지어 수조 원까지 이뤄지는 대출은 비대면으로 불가능하다. 기업 CEO가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금융지원을 할지 구조를 짜고, 대주단이 생각하고 있는 금리 수준도 조율해야 한다. 적게는 수십 번, 많게는 백번 이상의 회의를 한다. 비대면 회의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산업은행 이전을 ‘자해행위’라고 표현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울을 국제금융도시로 키우겠다는 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서울이 금융기능을 가지고 있다.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해도 다수의 기능은 서울에 남기고 껍데기만 이전하게 된다. 비효율을 감수하면서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과연 국가적으로 옳은 일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불통’ 윤석열 정부에 맞선 산은 노조, ‘전 직원이 하나되어’ 싸운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역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탄압하고 있는 ‘노조’, ‘은행’, 공공기관’. 산은 노조는 세 개 모두 해당한다. 여기에 ‘부산 이전’까지 겹쳤다. 직원들은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마침내 정부는 일방적으로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대상 기관으로 지정‧고시를 했다. 실망감과 좌절감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산업은행 직원들은 어려움을 딛고 단단해지고, 더욱 강해지고 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 불통 정부에 맞서고 있다. 젊은 직원들이 ‘KDB서포터즈’라는 자체 TF를 구성하여 홍보 책자도 만들고 취업준비생 대상 설명회도 개최했다. 비조합원인 팀장, 부서장들은 아침 집회 참여자들을 위해 간식을 마련하고 있다. 부산 이전 저지를 위한 법률비용, 홍보비용 등 ‘지방이전저지기금’을 자발적으로 모금했다.
산업은행 노조도 다양한 투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산업은행 이전 과정의 위법‧불법성에 대해 감사원 국민감사청구를 하고, 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1항을 지키기 위해 ‘당원 가입 1만 명 캠페인’ 중이다. SNS 활용으로 대내외 홍보를 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채널을 구축하고,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를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로 홍보하고 있다.
모든 과정이 조합원과 공유되고,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산업은행 노조, 나아가 산업은행 직원들은 ‘단결’의 힘을 믿는다. 정부의 외풍이 아무리 거셀지라도 우리가 하나로 똘똘 뭉쳐있으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한다고 하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바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