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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학원노동자의 수난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등록일 2023년05월22일 13시5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대학을 다닐 때 서울 성북구의 어느 학원에서 일했다. 사업주는 같은 고향 출신이었는데,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내게 동향이라 반가움을 표시하고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켰다. 당시 최저시급이 3천원이 채 안 됐다. 학원강사 노동은 시급으로 따지면 1만원이 넘어 매력적인 일자리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원장은 “같은 고향 출신인데 형을 못 믿느냐고” 화를 냈다. 결국 두 달 동안 월급을 안 주다가 학원을 폐업하고 도망갔다. 당시 원장을 상대로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신고하려 했다. 그런데 노동청 부근의 법률상담소에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고용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난감해해 포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십여년 전 나의 학원 임금체불 사연을 꺼낸 이유는 최근 학원에서 일하던 강의노동자가 시·공간을 넘어 같은 이유로 노동상담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장의 일방적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는데 프리랜서로 취급돼 퇴직금과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출산율 둔화와 학령기 인구 감소, 기술 발전에 따른 인터넷 강의 확산으로 중·고교 입시생들을 상대로 한 대면 학원 강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지역에는 소규모 보습학원이 학생들의 학습능력 보강과 방과 후 돌봄 기능을 수행하며 영업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하는 강의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역시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몇몇 유명 입시전문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소규모 학원은 사업주인 원장과 소수의 전임강사, 그리고 다수의 시간제 강사로 운영된다. 따라서 정규 고용에 따른 사용자 책임에 부담을 느끼고 시간제 강사 노동자들을 일명 ‘프리랜서’로 등록한다. 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등이 정하고 있는 4대 보험 취득신고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가 여전히 발생한다.

프리랜서로 취급되면 해당 강의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부당하게 해고당하더라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해 도움을 받거나 실업 인정을 통해 구직급여를 받기 어려워진다. 또한 4주를 평균해 1주에 15시간 이상 일을 하기로 정하고, 1년 이상을 계속 근로를 제공할 경우 주어지는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일하다 다치더라도 산재보험법을 적용받지 못해 자기 비용으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학원 강의노동자들의 또 다른 하소연은 근로계약으로 약속한 업무 외 부당한 업무지시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하루 3시간씩 주 2일 고등학생 사회탐구 강의를 약속한 강의노동자는 수업 시간 전에 출근해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려 했으나 원장이 다른 학년 보충수업을 지시해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그런데도 초과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에는 한 달 이상 시험 대비 교습을 하는데 이때는 근로계약상 약속한 일주일의 강의시간이 의미가 없어진다 했다. 소규모 보습학원의 경우 시험 대비 기간에는 매일 각기 다른 학교 학생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별 진도에 따라 거의 소규모 그룹을 형성해 학습을 시킨다.

가령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학원에 주변의 5개 학교 학생이 다닌다면 그 수에 상관없이 시험 기간 중에는 최소 1시간의 시험 대비 강의를 5번 이상 해야 한다. 상담을 의뢰한 강의노동자는 그렇게 주말도 없이 월 100시간 가까이 강의노동을 했는데도 추가 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근로계약 외 부당한 업무지시와 같은 직장내 괴롭힘 행위도 눈에 띈다. 학원강의 업무를 주된 근로계약 내용으로 정했는데도 학부모와 학원생의 친구를 상대로 학원강습 등록을 권유하게 하는 등 영업을 시킨다는 불만도 있었다. 사업주의 사적 심부름을 강요한다며 하소연하는 강의노동자도 있었다.

소규모 보습학원은 운영자들이 가족 같은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특성상 인사·노무 역량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강의노동자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조차 모르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거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강의노동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이 많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에는 교육감은 “(학원의) 운영자, 강사 및 교습자가 갖춰야 할 사회교육 담당자로서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들의 연수에 관한 계획을 수립·시행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원강사들 연수교육 계획에 근로기준법 교육 등을 포함해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정작 학원 운영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등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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