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먼저 어떤 일을 맡아 주선하고 처리한다는 뜻과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처리하는 직무,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간사라고 알고 있는 익숙한 의미는 후자일 텐데, 간사는 보통 어떤 일의 원활한 조율을 담당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지난 4월 18일 서울에서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첫 전원회의가 개최됐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날 양대노총 소속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회의장에서 한 공익위원을 향한 항의성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노동자들이 피켓시위를 한 이유는 누구보다 공정하고, 중립을 지켜야 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이를 위배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노동자들이 규탄한 공익위원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다. 공익위원의 대표 격인 운영위원인 그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진행하고, 노·사·공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공익간사’라 불린다. 그 역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자신을 공익간사라 칭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 공식적으로 공익간사라는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 제6조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장만이 위원회의 간사로서 위원장을 보좌하고 부의안건을 정리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또한, 최저임금법 제15조에 근거해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존재한다. 만약 위원장이 불가피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부위원장이 위원장의 역할을 하면 된다. 물론, 최저임금위원회 부위원장이 노동부 고위공무원이고, 위원장이 직접 권한 행사를 하기엔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공익 운영위원이 원활한 심의 진행을 도와주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그는 공익 운영위원의 역할을 넘어 위원장과 부위원장, 최저임금위원회 간사보다도 훨씬 많은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심의 도중 위원들의 발언을 끊기도 하고, 위원장과 부위원장보다도 더 자주 언론이나 공식 석상에서 최저임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동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부는 근로감독관을 파견해 노조 회계장부를 빌미로 노조의 운영을 압박하고, 노골적으로 새로운 노동조합 출범을 지지하며 양대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해치려 한다. 여기에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노동조합을 ‘범죄집단’처럼 규정하면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계를 배제한 각종 위원회를 동시다발적으로 출범시키고 일방적인 노동탄압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초 출범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와 ‘상생임금위원회’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핍박하는 주 69시간제, 대체근로, 파견 확대, 직무급제 개편 등을 만들고 있다.
이번 전원회의장에서 노동자들이 규탄한 공익위원이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는 좌장, ‘상생임금위원회’에서는 부위원장을 맡으며 사실상 노동계를 핍박하는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그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해치려는 칼을 쥔 자이며, 중립성과 공정성을 져버려 저임금노동자의 생명줄과도 같은 최저임금 심의를 맡는다는 게 옳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각종 노동탄압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위원회의 수장인 자가 어떻게 최저임금을 공정하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공익’을 수행하는 사람이 한쪽의 이익만 대변한다면
이날 회의가 파행된 이유는 노동계의 탓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는 위원장의 개회 선언과 노·사·공 운영위원의 모두발언까지 전체 공개다. 모두발언 이후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는 데 이때 회의장에 누군가가 출입하려 한다면 합의된 배석 인원에 어긋나지만, 모두발언이 끝날 때까지는 언론관계자나 다른 정부의 부처별 실무자까지 회의장에 존재할 수 있다. 이날 회의 장소가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회의장이었는데 이곳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소이고, 어떠한 출입 통제나 절차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에 이들이 회의장에 존재한 것은 문제 될 수 없다. 하지만,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어떤 중재나 조율 없이 마치 회의장 불법점거라도 한 듯이 규정하고 배타 시 했다. 위원장을 겨냥한 피켓시위도 아니고, 국가의 대표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의 위원장이라면 설득하고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한 노력을 해야 했지만, 전화로 사무국 직원에게 자기 뜻을 전달하거나 다른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등 위원장의 임무를 다하지 않았다.
공익이라는 의미는 넓은 의미에서 표현되기에 명확히 정의하기 힘든 개념이다. 그렇지만 사회 통념상 공익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느 의견에도 휘둘리지 않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의무로 이해되곤 한다. 만약 공익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느 한쪽의 의견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사익이 돼버린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구성의 특성상 27명의 위원 중 노사 각각 9명의 위원은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기에 견해차가 팽배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므로 나머지 9명의 공익위원이 노사 간 견해차를 조율하고 중재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다.
필자는 노총의 최저임금 실무를 담당하며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역량에 대해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노동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며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공익위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고 단지 노사의 의견을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 어렵다면 자신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노사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한 것이다. 부디 올해 최저임금 심의부터는 공익위원들이 누군가의 주도나 정치적인 목적에 휘둘림이 없이 공익을 위해 최저임금 제도 취지에 맞는 심의를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란다.
이날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가 파행된 것에 대해 며칠 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계의 피켓시위를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관의 말처럼 이날 노동자의 피켓시위를 언론상의 장면으로만 접한 국민에게도 노동계가 최저임금 첫 회의부터 무산시키고 방해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 언론관계자와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입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피켓을 든 최저임금노동자들이 공개된 장소에 서 있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위법이나 불법적인 행동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을 향해 ‘점거’, ‘시위’, ‘난입’, ‘행패’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불청객으로 매도하고 개회 시간이 되었는데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박준식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첫 회의를 파행시킨 것이야말로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