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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조 길들이기, 뒤바뀐 피해자와 가해자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등록일 2023년02월23일 09시0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2016년 1월11일 새해 벽두에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2015년 9월15일 박근혜 정부와 한국노총, 한국경총이 합의한 노사정 대타협의 파기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2015년 9월 그는 한국노총의 협상 실무 책임자로 정부·재계와 머리를 맞대고 노사정 대타협을 이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합의 체결 다음날 노동계와 합의가 안 된 비정규직 법안을 추진하고, 그해 연말에는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는데도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손쉽게 개악할 수 있는 정부 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이정식 사무처장은 한국노총을 대표해 노사정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언론을 통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대가는 혹독했다. 한국노총은 수십년간 수행하던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에서 배제됐다. 2015년에 국회가 확정한 법률구조사업 국고보조금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고, 2016년에는 아예 사업에서 배제됐다.

이는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고 정부를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용노동부의 노동단체 지원사업 선정 심사위는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고, 대정부 투쟁을 통해 정부의 각종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해 합리적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한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라는 취지로 배제 이유를 밝혔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한국노총은 노동부에서 국고보조금을 받아 노동법률구조 사업을 수행해 왔다. 전국 19개 지역에 상담소를 설치하고 30여명의 상담활동가를 배치해 비정규 노동자나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같은 사안을 상담하고 노동부 진정이나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을 지원했다.

한국노총의 정책과 예산을 비롯해 사무를 총괄하는 위치에서 이정식 사무처장은 깊이 고심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겁하게도 전체 일하는 국민을 수혜 대상으로 정부를 대신해 한국노총이 수행하는 법률상담서비스를 볼모로 한국노총을 길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윤석열 정부에서 첫 노동부 장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시장 경제라는 이름으로 기업활동의 자유 보장을 중시하며 노동조합의 근로조건 개선 활동을 기업활동의 발목잡기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는 변화였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명분으로 올해 초 1천명 이상의 단위노조 및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연합노동단체 334곳을 대상으로 노조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일부 노조간부의 일탈 행위를 빌미로 마치 전체 노동조합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연일 보수 언론을 동원해 노조를 압박했다. 이미 정상적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노조 재정 장부를 비치하고 조합원 열람을 보장하는 대다수 노조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혈세 수천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며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 내용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에 단호한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며 노조를 비판했다. 이정식 장관은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회계자료 미제출 노동조합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대응할 것”이라며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정부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와 같은 협박은 정부가 행정권을 남용해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노조 회계자료 사무소 비치 의무는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정함이 없다. 노조가 자율적으로 조합원의 열람 권한을 보장하면 될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세세하게 행정지침으로 정해 특정 노조를 상대로 강요하는 행위는 행정 권력의 남용이다.

더욱이 노조가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할 대상은 국가보조금에 대한 회계자료가 아니고 조합원들에게 납부받은 조합비 사용 내역이다. 노조의 국가보조금 지원 부분은 이미 정부의 회계시스템에 사용 내용을 보고하고 정부의 점검을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의 재정지원 대상 노조가 정부 보조금의 사용 내용과 관련된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이 아님에도 마치 정부 보조금에 대한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의 노동권 상담 서비스를 수행해 온 노조에 대한 국가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역할을 방기하는 자해 행위다.

다시 2015년으로 돌아가 보자.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을 파기하고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비판하자 당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가보조금 지원 중단을 고리로 한국노총을 압박하도록 지시했다. 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2018년 조사에서 이를 명백한 직권남용 행위로 보고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부의 행정상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스스로 구성한 위원회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다시금 이러한 행위를 노조 대상 정책 수행에 활용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것도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조합 길들이기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이정식 장관을 가장 앞장세워서 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기가 막힌 상황이다.
 

※ 이 칼럼은 매일노동뉴스와 공동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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