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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과 23일 발표한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경제의 핵심 두 축이 일자리와 소득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민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저소득자와 고소득자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방이 대표적이다. ‘저임금 생태계’를 조성한 뒤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재벌대기업과 프랜차이즈업계의 책임 온 데 간 데 없고, ‘을’들의 싸움만 남았다.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커지고 임시·일용직의 일자리는 줄었다. 7월 통계수치를 통해 확인되는 바다.
정부정책의 방향도 문제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늘려주는 방안은 감감무소식이고, 정작 집권여당은 ‘규제완화 법안’ 처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본질적으로 상충하는 정책들이 방향성 없이 쏟아져 나오는 형국이다.
취업자 증가율 0%, 40대 취업자도 감소
최근 발표된 통계치는 하나같이 ‘외환위기(또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고용쇼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노동시장이 얼어붙었다.
통계청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천708만3천명으로 지난해 같은달보다 5천명(0.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 영향권에 있던 2010년 1월 마이너스 1만명을 기록한 이래 8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1월만 해도 30만명을 넘었던 취업자 증가폭이 2월 10만4천명, 3월 11만2천명, 4월 12만3천명, 5월 7만2천명, 6월 10만6천명으로 위태로운 곡선을 그리더니 급기야 취업자 증가율이 0.0%까지 내려왔다.
산업별 고용 사정도 좋지 않았다. 그나마 좋은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 취업자는 12만7천명(2.7%) 줄어들어 전달(-12.6천명)보다 감소폭이 컸다.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에서도 10만1천명이나 줄었다. 자영업자가 많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각각 3만8천명, 4만2천명 감소했다. 도·소매업은 8개월째, 숙박·음식점업은 14개월째 하향곡선을 그렸다.
연령별 상황도 답답하다. 노동시장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40대 취업자가 14만7천명이나 줄어든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역시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8월 15만2천명이 줄어든 뒤 감소폭이 가장 컸다.
노동시장의 심각성은 실업자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실업자가 7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었다. 7월 실업자는 103만9천명으로 지난해 7월보다 8만1천명이 늘었다. 실업률은 3.7%로 1년 전과 비교하면 0.3%포인트 상승했다. 체감 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은 11.5%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청년층의 고용보조지표3은 22.7%로 0.1%포인트 각각 높아졌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득 양극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 가구의 소득 증대를 통해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살려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를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취업은 어렵고 소득은 줄었다. 그 피해가 소득 하위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통계청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분배가 1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나타냈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급감했는데, 고소득층 소득은 늘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다.
올해 2분기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2인 이상 가구)은 월평균 132만5천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 감소폭은 1분기(-8.0%)보다 소폭 완화됐지만, 2분기 기준으로는 2003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컸다. 반면 최상위 20%(5분위) 가계의 소득은 월평균 913만4천900원으로 10.3% 증가했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폭 증가다. 소득 상하위 계층의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소득분배 상황은 악화됐다[그림].
[그림] 소득 1분위와 5분위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감률 추이
노동의 대가인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계층간 격차가 더욱 뚜렷하다.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구 월평균 근로소득은 51만8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9% 감소했다. 1분기(-13.3%) 때보다 감소폭이 컸다.
일해서 버는 돈이 적다 보니, 주변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소득 최하위 20%(1분위) 근로소득(51만8천원)이 이전소득(59만5천원)을 밑도는 현상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계속됐다. 이전소득은 생산활동과 무관하게 정부가 무상으로 보조하거나 가족이 지원하는 용돈 등을 의미한다. 고용쇼크의 피해가 저소득층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5분위) 가구 월평균 근로소득은 661만4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4% 늘었다.
눈 여겨 볼 대목은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구의 가구주 평균 나이가 62.5세에 달한다는 점이다. 2분위 52.8세, 3분위 49.1세, 4분위 49.4세, 5분위 50.1세와 차이가 크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가구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가운데 분배 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2인 이상 가구)은 올해 2분기 5.23배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았다. 5분위 배율은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분배가 불균형하다는 뜻이다.
소득주도성장론 ‘폐기 없다’는 정부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고용·소득 지표까지 악화되자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소득주도성장 폐지론’을 제기하며 정부를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자 청와대가 나섰다. 장하청 정책실장은 주말인 지난 26일 “최근 고용·가계소득 지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상용 근로자가 증가하고 있고,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도 동시에 발견된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늘었다는 것은 정치권의 최저임금 공방과 별개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지 않았다는 정황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소득 격차가 확대된 이면에 전체 가계의 소득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2분기 전체 가구 명목소득은 월평균 453만1천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2% 늘었다. 2015년 3분기 이후 0%에 머물렀던 가구소득 증가율이 지난해 3분기부터 커지기 시작해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에 증가세로 돌아선 실질소득도 2분기에 2.7% 증가해 3분기 연속 증가행진을 이어갔다.
문제는 전반적인 가계소득 증가에도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고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커진 점이다. 고용 부진과 소득분배 악화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주력 산업의 몰락, 두고만 볼 것인가
일자리는 줄고 소득 격차는 늘어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근본적으로는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신성장 산업의 발굴·육성 지연,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성 변화 같은 구조적 요인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다.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주력 산업 대부분이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반도체를 제외한 국내 주력 산업 대부분이 뒷걸음질 치는 현실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39개 상장사의 지난해 매출은 1천85조4천억원으로 2012년 대비 1.9% 늘었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두 반도체 회사를 제외하면 오히려 2.2% 줄어든다. 전체 매출에서 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7.7%나 된다. 그동안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온 여타 주력 사업의 매출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동차·조선업종 구조조정에 따른 제조업 활력 부진이 내수 부진으로, 다시 서비스업 부진으로 이어지는 현실과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과 생산설비 자동화 확대가 더해지면서 주로 하위계층 몫인 단순작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삼성전자 생산의 80%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현대자동차가 1997년 이후 국내에 공장을 신설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 ‘다단계 먹이사슬’의 말단에 위치는 노동자부터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이 내수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수출의 내수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 따르면, 수출과 내수(최종소비+총 고정자본) 간 상관계수가 1991~1997년 0.081로 하락한 데 이어, 2010년~2017년에는 마이너스(-0.014)로 전환됐다.
수출과 고용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다. 제조업 수출이 10억원 증가할 때 직·간접적으로 유발된 고용자수인 취업자수는 1990년 59.9명에서 2000년 13.1명으로 줄어든 뒤 2014년에는 6.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90년대 이후 주력 수출업종이 섬유제품과 같은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전기·전자, 운송장비, 화학제품 등 자본 집약적(노동 절약적) 산업으로 이동한 결과다.
미래 전망도 어둡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비관론이 우세하다. 자동화를 통한 인력 감축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기술발전의 혜택이 고도화된 자본을 소유한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고용불안과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대책은 허약해진 우리 경제의 체력을 회복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재벌 경제력 집중 완화,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근절, 동반성장과 상생경영 촉진신산업 분야 규제 완화,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
규제 완화로 일자리 창출 … 제2의 창조경제?
그런데 최근 정부의 정책 방향이 엉뚱한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 동력을 위한 ‘지역전략사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특별법)과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지역특구법) 등 규제완화 법안을 8월 임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야당 시절 규제프리존법 처리에 반대했던 민주당은 이른바 ‘규제혁신 5법’을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법안은 △신산업·신기술 분야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규정하는 ‘행정규제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혁신금융서비스업으로 지정받은 경우 금융규제 특례적용이 가능하도록 한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 △ICT 융합 신기술·신서비스의 실증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 △융복합 신산업 실증규제 특례제도 도입을 위한 ‘산업융합촉진법 일부개정안’ △지역특구 내에서 규제 제약 없이 신기술 등의 실증·사업화 지원을 가능하게 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안’ 등이다.
이들 법안은 ‘신기술·서비스’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 현행 법령에 위배되더라도 허가할 수 있는 포괄적 권한을 정부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법률로 규정된 규제를 행정부 판단으로 풀어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2의 창조경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적폐 청산을 강조해온 현 정부가 과거 정부보다 더욱 강도 높은 규제 완화방침을 들고 나왔다.
정부가 오락가락하면 할수록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떨어지게 돼 있다. 기왕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는 없다고 공언한 만큼,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의 효과가 무르익을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 나가야 한다. 이 대목에서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