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회 이후 국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정책들은 늘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조금씩 개선되거나 대폭 방향을 전환하기도 한다. 복지정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2023년에도 복지정책은 여러 분야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올해 바뀌는 정책의 대표적 사례, 그리고 정책적 방향의 논의가 심화 될 주제에 대해 살펴보고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부모급여와 육아휴직, 큰 그림은 있나?
기획재정부는 연초 올해 달라지는 정책분야 전반을 소개하는 자료를 배포했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또한 세부정책들의 변경사항들을 정리하여 소개한 바 있다. 그 중 눈길이 가는 부분은 부모급여와 육아휴직 제도이다.
우선 기존 정책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출산 및 육아 과정에 해당하는 가구를 지원하는 정책들은 다양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아동에 대한 소득지원은 작년 기준으로 아동수당과 영아수당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아동수당은 만 5세 이하 아동에게 모두 월10만원씩 지급하는 제도이고, 영아수당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만0~1세 아동을 대상으로 월30만원씩 현금을 제공하는 제도다. 즉,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은 아동수당과 영아수당 모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영아수당 제도는 과거 ‘양육수당’ 제도의 연장선상에서 금액이나 지급기간이 2022년도부터 변경된 것인데, 2023년 올해부터 부모급여로 또 다시 명칭이 바뀐 것이다. 부모급여는 만0세의 경우 월 70만원, 만1세의 경우 35만원을 지급하도록 급여수준을 확대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육아휴직기간의 6개월 확대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고용보험제도를 통해 보장되고 있는 임금노동자의 육아휴직은 아이 1명당 최대 1년의 기간을 보장하고 있다.
내용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고용노동부는 부모가 모두 3개월 이상의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에 6개월을 더 연장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만1세(24개월)까지 부모의 직접적 돌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점과 어린이집을 보내는 경우에도 아이와 부모 모두 몇 달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육아휴직기간이 늘어나는 것이 일정 정도 도움을 줄 여지는 충분하다.
부모급여 도입과 육아휴직기간 연장은 실제 정책이용자들에게 꽤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먼저 부모급여의 경우 ‘만 0세 70만원, 만 1세 35만원’이라는 지급기준이 어떻게 설정된 것인지, 이에 따른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된 부분이 전혀 없다.
물론 영아기(0~24개월) 아동이 실제 분유, 기저귀, 병원 이용 등에 있어 지속적인 소비가 발생하는 부분들이 있다. 때문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득보장을 해주는 방식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급여기준이 정책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혹은 가구의 평균적 소비에 있어 얼마만큼을 차지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나 근거가 없다면, 앞으로 이 제도는 재정적 상황이나 정치적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즉, 제도가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지자체 차원에서 제공하는 여러 현금지원제도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그 기능이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어 이에 대한 통합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육아휴직기간 연장은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용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있다. 과거보다 많이 늘어나기 했지만, 아직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전체 육아휴직사용자 중 24.1%(21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배우자출산휴가 또한 전체 출산휴가자 대비 22% 정도 수준이어서 남성의 육아와 관련된 휴가 및 휴직제도 이용은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연장된 기간과 관련, 급여수준이 더 많아진다든가 하는 부분도 현재는 밝혀지지 않아 실효성이 매우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 2023년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출처=보건복지부)
사회보험의 방향 전환, 개선인가? 후퇴인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 연금, 교육분야의 개혁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복지정책의 큰 방향적 전환이 예상되는 부분은 단연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이다. 공적연금의 경우 현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라는 정치적 합의기구가 운영되고 있고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서 2월초 연금개혁에 관한 구체적 방안들이 도출되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내용들이 발표될 때 확인할 수 있겠지만, 노동계 입장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공적연금의 핵심적 가치인 ‘적정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공적연금이 노후소득에 있어 적정한 수준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현재 매우 잔여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공적연금의 급여수준 상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우리 노후는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재정안정화에 치우쳐 보험료율만 급격하게 인상되는 것 또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현재 소비여력을 희생시키는 것이기에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불어 공적연금에 대한 신뢰 훼손으로 가입자 반발이 심해지면, 그 뒤에서 사적연금시장을 활성화시키자고 주장하는 금융자본의 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또한 지난 문재인 정부의 ‘문케어’가 보장성 강화라는 취지보다 실제 급여지출이 많아져 재정안정성이 매우 훼손되었다며, 이를 대폭 손보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물론 건강보험급여가 다소 왜곡되게 사용되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후퇴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의료이용자인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기 때문에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비급여 진료행태에 대한 정부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재정안정성이란 말은 공허할 뿐이다. 여전히 민간보험으로 인해 충분함을 넘어 과도할 정도로 의료비 지출을 하는 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있다. 병상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과잉공급 되고 있고, 도서지역과 같이 의료이용이 어려운 곳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는 등 의료 이용의 전반적인 왜곡을 우선 바로 잡아야 한다.
변화되는 복지정책의 방향을 간단히 살펴본 결과,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제도의 객관성과 이용에 있어서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연금개악의 전운이 드리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축소 압력 등 노동계가 투쟁에 나서야 할 지점들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지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바로 ‘왜 필요한가’에 관한 부분이다. 복지제도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충분히 제공되지 않을 수 있는 소득·서비스를 국가와 사회가 집합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가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제도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가 복지제도가 왜 필요한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제도변화의 장기적 안목이 이토록 부재하다면,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말도 공허한 표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