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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식사권 보장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이동철 상담실장(leeseyha@naver.com)

등록일 2023년01월16일 09시4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회사 구내식당 밥이 정말 맛이 없고 부실합니다. 맵고 짜고, 야근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가면 반찬을 재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것은 어떻게 개선이 안 되나요?”

수화기 너머 상담을 의뢰한 노동자의 회사에는 식당이 없다.

그가 말하는 구내식당이란 그가 속한 회사를 비롯해 중소 영세기업이 아파트형으로 밀집한 공업단지 내에 공용으로 이용하는 민간위탁 뷔페 음식점을 말한다. 입주기업 대표회에 민원을 넣어 보시라 답변 드리는 것 외에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몇 해 전 구내식당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국내 유명 기업들의 회사 구내식당 메뉴가 소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직장 밀착 버라이어티를 컨셉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LG전자와 SK텔레콤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방문해 회사 소개와 함께 구내식당의 점심 메뉴를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샘의 눈길도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멋진 출입증을 달고 고급 백화점 음식 코너 수준의 질과 신선함을 자랑하는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이들 회사 노동자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던졌다.

근로기준법상 기업이 소속 노동자의 식비를 지급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일본과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자의 식사를 기업이 책임지는 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에서부터 중소·영세기업까지 구내식당을 통해 식사를 제공하는 복지 형태로 임금을 보전하거나, 식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독보적인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나 수익을 낼 수 있는 중견기업들의 경우 구내식당을 운영하며 노동자들의 식사를 챙길 여력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 영세기업들은 구내식당을 운영할 여건은 고사하고 식비 역시 실제 치솟는 물가 등 경제 상황을 반영해 지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고용노동부의 기업체 노동비용조사 결과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상용직 노동자 1명의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 중 간접노동비용이 있다. 퇴직급여나 복지비·교육훈련비 등을 의미하는데 전체 노동비용 중 약 20%의 비중을 차지한다.

노동부의 2021년 기준 조사에서는 식사비나 통신비·교통비로 구성된 법정 외 복지비용이 전년보다 약 25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3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1인당 월 평균 노동비용이 10.1% 증가한 데 반해 300명 미만 사업장은 5.2% 증가에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의 식사 질에서도 불평등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과 공공기업·관공서에서는 이력을 추적해 그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질 좋은 채소와 과일, 그리고 육류를 재료로 영양의 균형을 세심하게 배려한 신선하고 맛있는 점심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된다. 주변의 시민들도 식사를 위해 평일에 길게 줄을 설 정도다.

그에 비해 ‘테크노파크’ ‘신지식타운’ 등의 이름으로 영세기업이 밀집한 아파트형 공장에서는 만두와 소시지 등 가공육과 냉동식품이 자주 포함된 겉만 번드르한 식사에 대한 불만이 자주 터져 나온다. 영세한 급식업체는 저렴한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인력부족으로 식단의 영양균형을 고민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 영양사가 배식과 설거지에 동원되는 탓이다.

통계청은 매년 13세 이상 가구원 수만명을 표본으로 삶의 질과 관련한 국민의 사회적 관심사와 주관적 의식을 조사해 발표한다.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습관으로 응답자의 약 64%가 아침 식사를 꼽았다.

현대차는 2021년 11월부터 서울 양재동 본사 지하 구내식당에서 소속 노동자들에게 호텔 뷔페식 조식을 제공했다. 요구르트와 신선한 샐러드와 빵까지 다양하고 푸짐한 호텔식 뷔페임에도 노동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2천원으로 당시 화제가 됐다.

반대로 경기도 안산시의 반월공단에서 일하는 어느 노동자의 회사는 인건비 문제로 구내식당에서 아침에 제공하던 식사를 중단했다. 이와 같은 회사의 조치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를 가지고 노사가 다퉜는데, 우리 상담소에서 회사에 대안 마련을 권고해 개별 노동자들이 손수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건강한 식사권은 국민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다. 개인의 재력이나 기업의 지급 능력에만 맡겨 둘 수 없다.

현재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정책 수행시 직업 관련 질환이나 직무 스트레스 예방과 함께 노동자의 건강한 식사권에 대한 평가 항목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근거로 산업보건정책의 하나로 노동자의 건강한 식사권을 보장하는 다양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계 역시 지역과 공단의 노동조합 없는 미조직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건강한 식사권 보장을 위한 지역별 단체교섭을 통해 지역 내 공단 사업주단체, 지방자치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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