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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욕보이기에 급급한 정부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등록일 2023년01월27일 09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노동조합은 자치조직이지만 헌법과 법률을 통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이에 따른 사회적 책임이 있는 자치조직으로서 자율적·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할 의무를 진다. 노동조합 활동을 규율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동조합 대표자가 6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원을 통해 노동조합의 모든 재원 및 용도, 현재의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과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25조1항·2항)

이뿐만 아니라 노조대표자는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하고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열람하게 해야 한다.(26조) 그리고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는 3년 동안 보존해 노조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14조1항) 이러한 의무 규정을 위반할 경우, 혹은 노조법에 따라 해당 노조 설립 당시 관할 행정관청이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요구하는데도 이를 거부할 경우 노조 대표자에게는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27조)

노조가 나랏돈을 쓴다면 더 꼼꼼하게 감시받는다. 시민들이 직접 수혜를 입은 사회서비스는 본래 시민의 세금으로 공무원을 뽑아 국가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면 공무원수가 늘어나고 국가가 비대해져 조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국가는 이를 전문성 있는 단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맡긴다. 이른바 국고보조 사업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국고 사업이 시민들의 노동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률상담사업이다. 한국노총은 가장 큰 국고보조 사업으로 매년 약 18억원가량의 노동법률상담권리구제사업을 고용노동부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전국 17개 이상 지역에 노동상담소를 운영하며 30여명의 상담요원을 두고 노동자와 일반시민, 그리고 예비취업자들인 학생들을 상대로 노동법률 상담과 노동법 교육을 수행한다.

연간 인터넷 상담과 직접 대면상담, 그리고 전화상담을 포함해 수만 건의 상담을 진행하고 상담사례를 가공해 언론에 보도요청하는 방식으로 노동법률 분쟁 사안에 대한 노동법 지식을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내가 일하는 한국노총 부천상담소는 지난해 4천건 넘는 노동상담과 노동법 교육을 실시했다. 업무수행 내용과 기록은 상담사업 추진 실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노동부로 넘어간다.

여기에 상담소마다 매월 지출하는 20만~40여만원의 운영비 사용 내역 역시 다과 물품 영수증 하나까지 정리돼 e나라도움이라는 회계시스템에 기록돼 있다. 이처럼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각 부처 국고보조 사업 회계시스템이 꼼꼼하게 국고보조 사업을 통한 세금 사용내역을 체크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국고보조금 횡령이 쉽지 않은 구조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조합의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며 국고보조 사업의 회계부정 사례를 찾고자 하지만 노동부가 노조에 지원한 국고보조금 부정사용 적발 사례가 없었다고 보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노동부의 행정력이 부족하거나 노조의 회계 속임수로 국고보조금의 부정한 사용내역이 감춰졌을 수 있다. 실제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간부는 건설노동자의 노동문제를 상담 지원한다는 이유로 국고보조금을 타내고 그중 인건비 수억원을 부정하게 사용했다. 반성하고 사죄할 일이며 얼굴을 들기 어렵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1월부터 조합원 1천명 이상 단위노동조합 및 연합단체 약 250개와 공무원·교사 노동조합 80여개를 상대로 노조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자율점검을 실시한다. 현행 노조법 14조에서 정한 서류의 비치 및 보존 여부를 스스로 확인해 시정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자율점검 기간이 끝난 뒤에는 노동부가 각 대상 노조를 상대로 노조 회계서류 등에 대한 보존의무 이행 점검결과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점검 결과 만약 노조법 14조에 따라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작성 후 노조사무실 등에 비치하지 않은 노조에는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노조의 회계부정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책임이 있는 주체에게 그 책임을 균등하게 묻고 재발방지 대책을 합리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노동부의 자율점검과 보고서 제출 요구는 전국건설산업노조 등 노조회계와 관련해 문제가 된 노조에 시행한다면 그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조법에 따라 정해진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서류비치 의무를 이행하는 노조를 상대로 뜬금없이 너희가 문제가 있을지 모르니 회계자료를 살펴봐야겠다고 의심한다면 이는 노조를 비리가 있는 집단으로 국민에게 욕보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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