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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의 노동자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상담실장

등록일 2023년02월10일 10시3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음식점을 운영했다. 당신이 서른 무렵 주변에 빚을 얻어 시작한 식당 한편에서 쪽잠을 자면서 열심히 해물 뚝배기를 끓이고, 돈가스를 튀겼다. 설과 추석 명절 당일을 빼고 1년 363일은 일했다. 모두 가족을 위해서였다.

다행히 엄마가 식당을 시작한 때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을 비롯해 우리 경제가 한창 호황을 맞이한 시점이었다. 우리 식당에는 일본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식당을 시작한 지 5년이 채 안 돼 우리는 자가용을 사고 집을 마련했다.

좋은 시절은 딱 10년이었다. 엄마의 부지런함으로 부족함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 생활을 시작한 서울에서 나는 동생에게 엄마가 식당을 정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의 후폭풍이 엄마가 일하는 제주에까지 미친 것이다.

식당 사장으로 일하던 엄마는 다른 식당에 일하러 나갔다. 내 학비를 대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모두가 밀레니엄으로 들뜬 2000년 엄마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초라하게 시작됐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외환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아 노동시장이 위축된 제주도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엄마는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경기도 안산과 시흥의 관광호텔에서 ‘찬모’로 손님들의 조식을 차리고 예식이나 세미나에서 접대 음식을 만들었다.

새해 벽두에 두서없이 엄마의 이야기를 지면에 꺼낸 이유는 엄마뻘 여성노동자들의 상담이 부쩍이나 많아진 까닭이다. 이들 중 다수는 정년인 60세를 넘어 일하는데 대부분 지금도 가족의 생계를 부양한다. 내밀한 사정은 달라도 엄마와 같은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 속에서 같은 궤적을 가지고 살아왔으리라.

일자리의 90% 이상이 중소 제조업이나 서비스 사업장인 부천에서 이들 60대 이상 여성노동자들은 5명 미만의 음식점, 마트나 영세 제조업의 단순노동에 투입된다. 상담의 주된 내용은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상담, 퇴직금 미지급 문제다. 대부분인 5명 미만인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편의에 따라 일하다 잘리고도 퇴직금은커녕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연들이다.

엄마처럼 수십년 칼을 쥐고 식재료를 손질하고, 기름에 음식을 튀기며 나오는 연기를 마시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물건을 진열하는 60대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손가락이 굽고, 다리는 안 펴지며,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팠다.

업무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인정보다 매일같이 아프다는 엄마를 보고 짜증 내며 그 나이대에는 원래 그런 거라는 가족이나 사회의 무심한 시선이 더 서러울지 모른다.

최근 반월공단의 구내식당으로 일자리를 옮긴 엄마의 일하는 시간을 접하고는 깜짝 놀랐다. 엄마는 아침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일을 마친다. 아침에 출근해 조식을 준비하고는 쉴 틈 없이 점심 준비를 마치고 식당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는 저녁 준비를 하고 6시 퇴근한다. 그렇게 평일 하루 12시간씩을 일하고 토요일에도 필요하면 4시간을 일한다. 대규모 급식업체를 제외하면 5명 미만의 음식점들에서는 일상적인 근무패턴이다. 6시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가사노동까지 해내고 나면 도대체 이들에게 자기만의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

저녁을 먹고 한동안 거실에 누워 TV를 보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여가활동이다. 일의 피로가 몰려와 자꾸 눈이 감기면서도 일터에서 종일 보낸 하루가 아까워 기어이 TV를 끄지 말라며 트로트 가요 프로그램까지 보고 나면 자정이 가까워진다.

이렇게 고된 노동의 굴레를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생계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자녀들이 생계비를 보조할 정도로 소득이 넉넉하면 좋겠지만 이들 60대 여성노동자들의 자녀는 부모의 생계비 보조는커녕 최초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명함 하나 없이 수십년을 노동하며 사회를 발전시키고 가족을 지킨 이들을 상대로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주로 연금 지원이나 돌봄수당 지급 등인데 무엇보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이들의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줄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에 무제한 적용되는 근로시간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여가를 확보해 인생 후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60대 이상 여성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조리흄 제거시설 설치 지원이나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보조구를 지원하는 등 영세 사업장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산업재해 예방 활동에도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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