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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방의 임금체계 개편, 이대로는 안 된다

유동희 한국노총 정책1본부 선임차장

등록일 2022년12월08일 08시5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동정책 공약의 타이틀을 ‘노동개혁’이라 칭하며 사실상 반노동정책을 예고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노동개혁은 5대 부문 개혁1)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고, 현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가 되었다. 관련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곧바로 노동개혁을 위한 업무에 착수했고, 주요 내용 중 하나로 노동시간관 임금체계 개편 연구를 골자로 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를 출범시켰다.

 

지금까지 정부 발표내용을 토대로 향후 추진 방향을 엿보면, 근속연수와 연령에 따라 임금을 받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형 임금체계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 내 직무·직군·직급별로 노동자대표가 사용자와 서면합의로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임금체계 개편 정책은 과거 정부에서도 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제시돼왔다. 그러면서 연공급을 청년 신규 채용 및 중장년 고용 안정 저해, 그리고 임금불평등 현상의 ‘문제’로 규정하며,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내세웠다. 과거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의 차이라 할 수 있는 점은 노동 현장의 직무 성과 반영을 언급한 것밖에 없다. 그러나 새 정부가 내놓은 임금체계 개편이 과연 실제 노동시장에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먼저 우리나라 사업체 중 사실상 임금체계가 없는 사업장이 절반 이상이다. 2021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결과,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164만 개 중에서 임금체계가 없다는 응답이 100만 개소(61.4%), 호봉급은 23만 개소(13.7%), 직능급은 22만 개소(13.6%), 직무급은 17만 개소(9.4%)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2차 노동시장 불평등 심화, 빈번한 입·이직, 고령화 등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우리나라의 평균 근속이 가장 짧다. 따라서, 연공급이 임금불평등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임금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바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임금은 사용자에겐 생산비용의 일부일 뿐이지만, 노동자에겐 재생산과 생계유지를 위한 필수 소득원천으로 기능한다. 지금처럼 민생이 어려울록 임금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국가에선 노동자의 근속과 나이가 많아질수록 부양가족의 교육, 의료, 주거비 등 가계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연공급 임금체계가 대안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입장에서 연공급 임금체계는 틀렸고, 직무·성과급이 답이라고 하는 정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으로선 직무급, 성과급이라는 단어의 임금체계 개편이 달갑지만은 않다. 직무가 반영된 임금체계는 과거부터 사용자단체의 오랜 바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단체는 87년 노동조합운동 활성화 이후 증대된 노동조합 교섭력의 결과인 임금 압박을 회피하기 위해 임금체계의 다양한 변형적 행태를 시도해 왔다.2) 그렇기에 지금의 ‘누더기 식’ 임금체계가 만연한 원인은 사용자단체의 책임도 일정부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충분한 이해를 구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인 임금체계 개편 계획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용자단체가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기조에 정부가 맞장구를 쳐주는 모양새다. 때문에 정부가 주장하는 직무·성과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은 결국 단기 근속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장기근속자의 임금을 깎겠다는 의도이자, 사용자단체들의 오랜 숙원과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성과급제가 도입되더라도 그 효과성이 담보되지도 않는다. 기존의 여러 연구에서 직무급에 대해 생산직이나 영업직, 집단성과급제 등 그 효과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효과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직무급이 널리 활용되는 미국과 유럽 등 여타 해외 선진국가에서도 근속연수가 높은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주요 대기업의 대부분은 보상을 결정할 때 연공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또한 직무·성과급제는 참여와 상호협업이 필요한 상황에서 노동의 개별화·고립화, 소모적인 경쟁 초래, 성과지상주의 만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될 수 있음을 여러 연구와 사례에서 지적한 바 있다.3)

 

이 밖에도 우리나라 노동 현장의 임금수준은 기업별노조 체계하에서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결정되고, 기업의 지불능력 유무에 따라 임금수준이 좌우되는 현실에 처해있지 않은가.

 

이처럼 노동자의 임금은 수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됨에도 노동현장의 오랜 역사와 근간을 유지해온 연공급 임금체계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근로기준법 명시 필요

 

지난 11월 1일 한국노총은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대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하고, 임금체계 개편 관련 정부의 해석과 대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발제를 맡은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의 주요한 임금정책인 직무성과급과 표준임금모델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임금체계가 대다수인 2차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직무급을 통한 산별 연대임금이 필요하며, 향후 이것을 전체 노동시장으로 통합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차 노동시장부터 각 직종을 포괄하는 산별임금체계 구축이 필요하며, 이를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힘을 통해 관철해 가는 전략 수립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발제자와 토론자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몇 가지 공통된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것이다. 고용 형태, 인종, 종교, 국적 등과 관계없이 동일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해 동일한 임금수준을 적용하고, 노동의 양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는 대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역시 이 원칙을 국제노동기구 헌장에 실었으며, 기본 인권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산업‧업종별 임금 관련 이슈를 논의할 노정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노정협의체에서 중장기 목표를 정하고, 평등 지향적이고 안정적인 임금체계와 구조 및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산별교섭 구조 마련, 초기업 단위 단체협약의 적용 확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의 중추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정비와 보완이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기에 앞서 불완전한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을 정비하고, 현재 수준보다 훨씬 강화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 가구의 주거, 교육, 의료비 등 가계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필수 생계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회임금과 시장임금의 조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한 노사 논의 및 협상테이블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고용형태공시제와 연계한 임금분포공시제의 확대 시행이다. 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라면 먼저 현재 개별기업 내 임금자료를 비교하며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임금분포공시제도는 임금 비교자료로 활용되지 않을뿐더러, 평균 임금분포 자료만 제공하는 특성상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300인 이상의 공시의무 대상기업이 매년 게시하는 고용형태공시제와 연계한 임금정보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세부 임금정보를 제공해 임금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국민 절반 이상 직무급 임금체계 개편 반대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최근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대국민을 상대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여론조사4) 한 결과, ‘정부의 직무급 임금체계 개편 추진’과 ‘직무성과급제 도입 시 임금 불평등 해소 여부’에 대한 인식조사 모두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제 정부가 노동자와 국민의 의견을 귀담아들어야 할 시간이다.

 

 

정부의 문제의식대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가 노동자의 임금 불평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임금과 관련된 운영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관련 주체인 노·사간의 충분한 공감대와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문제의식, 개선 방향, 내용, 절차 등 모든 부분에 대해 어느 일방의 주장이 아닌 각 주체의 참여와 논의가 필수적이다.

 

지난 30년간 역대 정권마다 임금체계 개편을 자신 있게 꺼내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특성과 노동현장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성과를 낸 사례는 전혀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이를 간과하고 현재와 같이 임금체계 개편을 일방추진할 경우,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그가 말한대로 공정과 상식에 맞는 국정운영을 하고자 한다면, 정부 일방의 직무·성과급 임금체계 개편 시도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미주>

1) 공공·연금, 노동시장, 교육, 금융혁신, 서비스산업혁신

2) 1980년 말- 능력급(포항제철), 호봉고과제(대우그룹), 1990년 초- 직능급(한국전자), 능력급(삼성, LG 그룹), 노조 사업장의 임금체계 개편사례 및 과정 연구(2014, 한국노동연구원)

3) Lawler, 2000; Gomez-Mejia, Berrone, and Franco-Santos, 2010
4) 22.10.25~10.26 전화(ARS) 조사,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95% 신뢰수준 표본 오차 ±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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