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출범하고 한국에서 최초의 기후 대중운동이 시작된 이후, 코로나19 상황과 정부 교체를 겪으면서도 기후운동은 꾸준히 진전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서울 시청 앞에서 진행된 기후정의행진은 3만 5천 명의 참여 속에 더욱 높아진 열의와 관심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행진에서 외쳐진 구호도 상당히 달라졌다.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정부를 비판하며 하루빨리 기후 비상선언과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할 것을 촉구했던 2019년에 비해, 기후위기에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히고 대안 주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목소리가 전면에 등장했다. 참가자들의 피켓에는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지금 당장 정의로운 전환’ 같은 구호들이 적혔다.
그러나 이런 변화 또는 변혁의 대상이 되는 체제의 실체와 변화의 방법이 되는 전략, 그리고 변화의 결과로 만들 미래상에 대해서는 기후정의운동 내에서도 구체적인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행태를 비판한다고 해서 곧 체제 전환의 방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운동 안팎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언급되고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것이 급진적인 전환 전략으로 가시화되는 상황도 아니다.
지난 아홉 차례의 연속 기획연재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 연구단의 필자들은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한 걸음 더 나아간 논의를 소개하고 쟁점을 살폈다.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지형과 조건에서 가능하고 필요한 진단과 제안을 시도했지만, 정의로운 전환이 적용하기만 하면 되는 완성된 매뉴얼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정의로운 전환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고 많은 과제도 제기하는 열려 있는 아이디어다. 그리고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도 이와 관련한 도전들을 맞이하고 있다.
△ 9월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된 기후정의행진(사진=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정의로운 전환의 다양성과 한계도 인정해야
예를 들어 지속가능성이나 기후정의를 말하는 진영도 하나의 노선이 아니며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국제노총(ITUC)과 다수의 국제적 산별노조는 녹색 성장 또는 생태적 현대화 담론에 가까운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한다. 제3세계의 노동조합 일부는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사회운동과 더불어 생태적 정의를 강조하고 반자본주의적 의제까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은 현상유지, 개혁관리, 구조개혁, 변혁 접근 등으로 유형화하여 평가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어떤 유형이 유일하게 정당하거나 유효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이런 유형들은 추진 주체의 정치 전략과 지향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례의 특수성, 즉 노동조합과 정부 및 기업의 전환 역량 수준과 구체적인 맥락에 기인한 결과일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유형이 상위 단계로의 단선적 발전이나 규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은 대안적인 노동과 사회 체제로 향하는 매우 유용한 수단일 수 있지만, 현상유지와 개혁관리 또는 현상태 방어를 공고히 하는 정책이나 운동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정의로운 전환이 내용 없는 문구로 남용되거나 탈정치화될 위험성, 그리고 지금과 같은 노동시장 분절 구조의 유지와 남성 정규직 중심 대안에 머물 한계도 지적한다. 말하자면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녹색’ 양식을 갖는 자본주의와 임노동의 지속을 심지어 더욱 강하게 고착하면서, 반면에 다른 조망과 보다 급진적인 대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배제한다. 따라서 생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효과적으로 몰아낼 가능성도 몰아낸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유일하게 정의로운 전환인지를 규정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실천의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하면서 논의와 정책을 풍부하게 하는 게 의미 있는 태도일 수 있다. 기후위기는 모든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해당 부문과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구체적인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지방공무원 노동조합인 UNISON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소방관, 경찰관, 복지공무원 등이 조합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후위기 대응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과 안정적인 노동 조건 그리고 특수한 숙련, 시민에게 다가가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간호사 노동조합은 기후변화로 공중 보건이 위기에 처하게 됨을 깨닫고 더 많은 공공의료를 요구한다. 한국의 노동조합도 제조업, 에너지 산업, 공공 및 민간 서비스 부문과 지역마다 기후위기를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맥락과 내러티브가 가능할 것이다.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접근 필요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선언과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지만 대체로 이름뿐이거나 강한 정책 의지를 찾기 어려웠다. 현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다시피 하고 ‘탈원전 폐지’만을 말할 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전향적인 모습을 기대하거나 기다릴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스스로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2019년 이후 노동조합 운동도 조금씩 크고 작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양대노총 모두 기후위기 대응을 중요한 사업 과제로 받아들이고 대정부 요구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정의로운 전환은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자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의 모듈이다. 노동조합에게는 전환 역량을 자기 점검하고 키울 수 있는 매개가 되며 더욱 큰 사회적 전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또한 정의로운 전환은 단지 기후위기와 산업 전환에 따르는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요구되는 산업 전환의 과정이 경제적 평등과 사회 정의를 함께 고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책 목표도 취약계층 피해 최소화를 넘어 더 많고 더 좋은 녹색 일자리와 녹색 산업으로 나아가는 미래가 되어야 한다. 단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정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실효성있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집행을 담보하는 제도와 수단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의 발전과 적용에 있어서 지난해에 제정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 및 시행령과 공정 전환 지원에 관한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논의와 투쟁의 한 바탕이 되지만, 거기에 얽매이거나 국한되어선 안 된다는 것도 당부하고 싶다. 산업 전환을 다루는 위원회, 조례, 기금 등은 중요하지만 수단일 뿐이며, 결국은 노동자 주체의 구상과 역량, 그리고 지속적 운동이 관건이다.
현장에서는 노동조합과 조합원이 기후위기와 이에 따르는 변화를 체감하고 대응의 효능감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획과 사업부터 각급 조직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과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더욱 넓은 기후변화 의제와 운동들 속에서 개방적으로 풀어가면 될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의 힘만으로 어렵다면 언제든 더 넓은 기후운동에게 손을 내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