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생인 아빠는 벌써 30년째 5인 가구의 가장 역할을 해왔다. 3년 뒤면 정년퇴직할 나이가 되지만, 그때 부담스러운 가장직에서도 은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빠는 어쩌면 정년퇴직을 하고 몇 년은 더 가장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최근에 경비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퇴근하고 와서 새벽 한 두시까지 자격증 공부를 하는 바람에 아빠의 이마는 빛을 잃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한밤중에 동네 전봇대보다 밝게 빛난다는 소리를 듣던 이마였었다. 주변에서는 이마에서 빛이 사라진 게 중년의 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문제는 청년의 위기에 있다.
아빠는 자식이 셋이다. 자식 셋은 어느새 전부 이십 대 후반이 되었다. 내년이면 삼십 대가 되는 자식도 있을 예정이다. 품 안의 아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들 나이를 심심치 않게 먹었건만, 아직도 자식들은 아빠의 품 안에서 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세 명의 자식들이 언제 품을 떠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아빠는 큰딸 때문에 한숨을 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의 큰딸은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잘했다. 그 딸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앞으로 그 애의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상은 그의 생각을 크게 비웃었다. 큰딸은 서류에서, 면접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문과 출신이라는 게 그렇게 큰 걸림돌이 될 줄이야.
그의 딸은 서울에 있는 작은 회사에 간신히 취업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큰딸은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러더니 일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싸서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갑상선 환자가 되어서 말이다. 덜컥 하는 마음에 원인을 찾아봤더니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큰딸은 일 년 동안 집에서 요양하며 몸을 추슬러야 했다. 일 년을 쉬자 딸이 일할 곳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받을 수 있는 월급은 더 박해졌다. 어쩌면 큰딸과 평생 같이 살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딸은 금속 디자인을 전공했다. 주얼리 회사에서 인턴으로 몇 번 일해보더니 작은딸은 덜컥 주얼리 회사를 차리겠다고 선언했다. 딸의 창업 계기는 자아실현보다는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주얼리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탓에 작은딸은 그동안 열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면서 일당백으로 일해야 했다. 그 애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이제는 최저 임금만 주면 야근에 특근까지 부려 먹을 수 있는 인간으로 살기 싫다고 했다. 취업해도 고생, 창업해도 고생이라면 차라리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면서 고생하겠다고 하는 데 그 앨 말릴 만한 명분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한 번 마음 가는 대로 해보라고 했다.
한 번은 작은딸이 사는 곳 월세에, 작업실 임대료까지 대느라 등골 빠진다고 하소연하길래 당분간 집 월세는 보조해주겠다고 말해버렸다. 아이가 월세 때문에 고생하는 게 꼭 내 탓처럼 느껴졌다. 지방이 아니라 서울에 집이 있었다면 자식들이 월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일 년 정도만 지원해주면 자리를 잡겠거니 싶었는데 이 년이 넘어가도록 아직 아무 소리가 없다. 눈치로 볼 때 겨우 마이너스는 피할 만큼만 벌고 있는 듯하다. 작은딸은 언제쯤 사정이 나아질까. 사정이 나아져도 월세살이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막내는 대학 졸업반이다. 하필이면 그 애가 취업할 시기에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벌써 기업들이 신규 채용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막내는 이과라서 그나마 취업이 쉬운 줄 알았는데, 어쩌면 막내도 제 밥벌이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까지는 막내를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청년들의 불행은 청년들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청년들의 불행은 전파력이 강하다. 청년이 아닌 사람들도 청년과 함께 불행해질 수 있다. 그래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청년의 삶만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청년이 행복한 나라를 꿈꿔 본다. 아마도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