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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위기, 청년의 위기

최수빈

등록일 2022년11월02일 09시1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65년생인 아빠는 벌써 30년째 5인 가구의 가장 역할을 해왔다. 3년 뒤면 정년퇴직할 나이가 되지만, 그때 부담스러운 가장직에서도 은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빠는 어쩌면 정년퇴직을 하고 몇 년은 더 가장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최근에 경비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퇴근하고 와서 새벽 한 두시까지 자격증 공부를 하는 바람에 아빠의 이마는 빛을 잃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한밤중에 동네 전봇대보다 밝게 빛난다는 소리를 듣던 이마였었다. 주변에서는 이마에서 빛이 사라진 게 중년의 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문제는 청년의 위기에 있다.

 

아빠는 자식이 셋이다. 자식 셋은 어느새 전부 이십 대 후반이 되었다. 내년이면 삼십 대가 되는 자식도 있을 예정이다. 품 안의 아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들 나이를 심심치 않게 먹었건만, 아직도 자식들은 아빠의 품 안에서 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세 명의 자식들이 언제 품을 떠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아빠는 큰딸 때문에 한숨을 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의 큰딸은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잘했다. 그 딸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앞으로 그 애의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상은 그의 생각을 크게 비웃었다. 큰딸은 서류에서, 면접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문과 출신이라는 게 그렇게 큰 걸림돌이 될 줄이야.

 

그의 딸은 서울에 있는 작은 회사에 간신히 취업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큰딸은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러더니 일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싸서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갑상선 환자가 되어서 말이다. 덜컥 하는 마음에 원인을 찾아봤더니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큰딸은 일 년 동안 집에서 요양하며 몸을 추슬러야 했다. 일 년을 쉬자 딸이 일할 곳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받을 수 있는 월급은 더 박해졌다. 어쩌면 큰딸과 평생 같이 살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딸은 금속 디자인을 전공했다. 주얼리 회사에서 인턴으로 몇 번 일해보더니 작은딸은 덜컥 주얼리 회사를 차리겠다고 선언했다. 딸의 창업 계기는 자아실현보다는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주얼리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탓에 작은딸은 그동안 열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면서 일당백으로 일해야 했다. 그 애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이제는 최저 임금만 주면 야근에 특근까지 부려 먹을 수 있는 인간으로 살기 싫다고 했다. 취업해도 고생, 창업해도 고생이라면 차라리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면서 고생하겠다고 하는 데 그 앨 말릴 만한 명분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한 번 마음 가는 대로 해보라고 했다.

 

한 번은 작은딸이 사는 곳 월세에, 작업실 임대료까지 대느라 등골 빠진다고 하소연하길래 당분간 집 월세는 보조해주겠다고 말해버렸다. 아이가 월세 때문에 고생하는 게 꼭 내 탓처럼 느껴졌다. 지방이 아니라 서울에 집이 있었다면 자식들이 월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일 년 정도만 지원해주면 자리를 잡겠거니 싶었는데 이 년이 넘어가도록 아직 아무 소리가 없다. 눈치로 볼 때 겨우 마이너스는 피할 만큼만 벌고 있는 듯하다. 작은딸은 언제쯤 사정이 나아질까. 사정이 나아져도 월세살이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막내는 대학 졸업반이다. 하필이면 그 애가 취업할 시기에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벌써 기업들이 신규 채용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막내는 이과라서 그나마 취업이 쉬운 줄 알았는데, 어쩌면 막내도 제 밥벌이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까지는 막내를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청년들의 불행은 청년들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청년들의 불행은 전파력이 강하다. 청년이 아닌 사람들도 청년과 함께 불행해질 수 있다. 그래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청년의 삶만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청년이 행복한 나라를 꿈꿔 본다. 아마도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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