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겨우 지하철 때문에

최수빈

등록일 2022년12월08일 11시1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서울에서 더는 못 살겠다는 결정을 내린 건 출근길 지하철에서였다. 그때 나는 언주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에 살던 곳에서 회사까지 가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2호선을 타고 당산역까지 간 다음 9호선으로 환승해서 언주역에 도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당산역에서 언주역까지는 삼십 분 정도 걸린다. 손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삼십 분을 가다 보면 지옥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았다. 당산역에서 9호선 열차를 기다릴 때면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리면, 적군에 쫓기던 병사가 퇴로가 완전히 막혔음을 깨달았을 때처럼 망연자실했다. 나는 오늘도 삼십 분의 지옥을 맛보겠구나.

 

9호선 열차를 한 번 타고 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한 움큼씩 잘려 나가는 듯했다. 9호선 열차 안에서 팔다리의 자유를 빼앗긴 나는 나 자신이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이익만 생각하는 주인이 모는 트럭 짐칸에 실린 돼지인 것 같았다. 돼지가 트럭에 실려 향하고 있는 곳은 삶의 종착지가 될 도축장이다. 내가 9호선을 타고 향하는 곳도 실은 회사가 아니라 도살장이 아닐까. 출근길에 종종 그런 생각까지 하곤 했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대도시에 쉽사리 적응 못하는 촌뜨기거나. 지하철에서 죽음을 느끼다니. 역으로 들어오는 9호선 열차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속으로 이렇게 묻곤 했다. 다들 이 열차에 타는 게 아무렇지 않나요? 무섭지 않아요? 나만 그런 건가요?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모두 열차 안으로 거침없이 발을 내딛는 것처럼 보였다. 나처럼 열차를 앞에 두고 우물쭈물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사람이 많은 상태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나만 빼고.

 

유독 지옥철 안으로 들어가기가 겁이 나는 날이면 나와 비슷한 시간에 당산역에서 9호선을 타는 중년 남성을 떠올렸다. 그분은 항상 말끔한 양복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한 회사에 근속했다면 10년 넘게 이 9호선 열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을 수도 있겠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태연하다 못해 권태로움이 느껴지는 그분의 얼굴은 내게 희망이었다. 나도 이 9호선 열차를 저 사람만큼 오래 타고 다니면 지옥철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렇게 1년을 버텼다. 내 몸과 마음이 하루빨리 지옥철에 적응하기를 바라면서.

 

그날은 유독 9호선에 사람이 많았던 날이었다. 내 몸은 구겨지다 못해 거의 반으로 접힌 상태였다.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점점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는 뿌예졌다. 계속 이 열차를 타고 갔다간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 내리자, 일단 내리자. 출근보다는 살아있는 게 더 중요하잖아. 언주역까지는 한참 남았는데도 나는 무작정 9호선에서 내렸다.

 

지나치기만 했던 역에 쫓기듯이 내려서 숨을 가쁘게 쉬며 생각했다. 더는 못 탈 것 같다고.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이든, 도시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이든 간에 타고난 나의 기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지옥철을 타는 게 죽고 나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만큼 무섭다. 내 코만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매일 9호선 열차 안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그 뒤로 나는 지옥철을 피해 고향으로 도망쳤다. 누군가가 서울에서 갑자기 왜 내려왔냐고 물으면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고작 지하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솔직하게 이유를 말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서울 사람들은 매일 아무렇지 않게 타고 다니는 지하철인데, 그게 무서워서 고향에 내려왔다니. 너는 정말 나약한 인간이구나. 나는 오랫동안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이태원 참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9호선에서 맡은 죽음의 냄새는 내 나약함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었다는걸. 같은 냄새를 1분 이상 맡으면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9호선 열차에서는 늘 죽음의 냄새가 났지만, 다들 그 냄새를 너무 오랫동안 맡아온 나머지 더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최수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