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나는 조폭 마누라였다. 그 당시에 조폭 마누라는 가장 왈가닥 같은 여학생만 가질 수 있던 별명이었다. 그때의 나는 두려울 게 없었다. 화장실에 같이 갈 친구들이 항상 네다섯 명은 있었다. 나는 조폭 마누라라는 별명을 훈장처럼 여겼다. 그 별명이 내가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증명해주는 지표라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부를 하객이 없어서 결혼식을 못 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 연락처는 열 개도 안 된다. 그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다. 대외적으로는 외롭지 않은 척, 혼자가 체질인 척하지만 사실은 몹시 외로운 상태다. 한순간에 이룬 변화는 아니었다. 나는 왈가닥 시절을 거쳐 서서히 외로운 사람으로 변해갔다.

내신 관리가 시작된 때부터 내 삶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우선순위는 자꾸만 뒤로 밀렸다. 같은 반 애들은 친구가 아니라 이겨야 할 경쟁상대가 되었다. 어른들은 내게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잔인한 곳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자비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패자가 되어 비참하게 살 수는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이어폰을 꽂고 복습했다. 놀고 싶은 마음이 들까 봐 휴대전화에서 친구들 연락처를 다 지웠다. 나는 친구들을 내 삶에서 내쫓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친구들도 나에게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백 개가 넘었던 연락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십분의 일로 줄었다.

줄어든 연락처 개수를 복구해야 할 때라고,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생각했다. 인서울에 성공했으니 패자가 되는 길에서 영영 멀어졌다고 안심했다. 대학교에서는 정말 제대로 놀아보려고 했다. 공부한답시고 연락 끊었던 친구들을 싹 다 불러모아서 말이다.

하지만 입학한 순간부터 졸업할 때까지 뉴스에서는 매해 대학생들의 취업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려다가 말았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다섯 개의 연락처를 잃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었다. 친구들과 한 번 만나서 놀면 몇만 원이 술술 사라졌다. 한 달에 30만 원으로 서울에서 자취해야 하는 나에게 몇만 원은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돈을 아끼자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자니, 내 자취방은 너무나도 좁았다. 그곳으로 친구를 부른다면 둘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야 했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기회가 우리에겐 없었다.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각자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탓에 만날 약속 잡는 것도 일이었다. 만날 시간도 없고, 만날 돈도 없고. 이럴 바엔 차라리 친구들을 안 만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돈은 내 인간관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취업 기간이 길어지고, 겨우 구한 일자리도 박봉인지라 친구들을 만나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어느덧 고등학교 때 친구 단 한 명만이 내 곁에 남았다.

이렇게 살다 간 고독사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에 모임에 나가보려고 했다. 이 세상엔 나처럼 새로운 인간관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던 모양이다. 모임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팔리는 대박 상품.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고 싶다면, 함께 달리고 싶다면, 함께 글을 쓰고 싶다면 돈을 내야 했다. 소소한 참가비가 아니라 거금을.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자만추’해서 만난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나는 외로워졌다.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청년 10명 중 1명이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문제는 외로움이 단순한 개인감정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립의 시대>에서 노리나 허츠는 외로움이 사람을 덜 건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각종 사회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청년들이 외롭지 않을 방법을 다 함께 찾아야 한다. 언젠가 외로움의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