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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들의 앓는 소리?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등록일 2022년09월22일 15시4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한 달에 한 번 상담소의 운영비를 정산하기 위해 부천 원미구의 한 농협 점포를 방문한다. 업무상 불가피하게 직접 계좌이체를 해야 하는데 점심이 지나 오후 2시쯤 농협 점포를 방문하면 내 앞으로 4~5명 정도의 대기 인원이 있다. 대출 상담을 하는 2명의 여신담당 직원을 제외하면 입출금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은 3명 남짓이다.

직원 한 명당 업무의 특성에 따라 대기하는 시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고객 한 명당 최소 5분에서 길게는 15분 이상이니, 최소 15분에서 최대 45분으로 평균 20분 이상이 걸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대기시간은 늘어나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몇 해 전까지는 근처 관공서에 농협 점포가 있어 고객이 분산됐는데 언제인가부터 해당 점포가 사라져 이곳은 고객들로 북새통이다.

 



평소에도 입출금 창구 직원들은 쉴 새 없이 돈을 세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대기 고객을 호명하고 낯선 금융 용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귀에 대고 허리 숙여 자세하게 설명하느라 바쁘다. 이들 입출금 창구 직원들로는 고객 응대를 다 소화하기 어려운지 입구에 고객 안내를 돕는 직원도 같이 나서 간단한 입출금 업무는 자동화 기계 등으로 안내하는 등 손을 보탠다.

이는 근처 원미구의 신한은행 지점도 다르지 않다. 점포의 경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 분명한 경비노동자마저 밀려드는 고객의 입출금 업무를 안내하고 지원한다. 은행이 직접 채용한 것도 아닐 텐데 외부 용역업체 소속 경비노동자가 왜 고객 응대에 저렇게 적극성을 보일까. 그래야 다시 경비용역계약이 연장될 수 있을 테니 자발적 금융노동자로 변신한 것이다.

왜 농협이나 신한은행은 이처럼 긴 대기시간으로 고객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노동자들을 업무 과부하로 밀어 넣으며 점포 숫자를 줄이고 있을까? 비용 때문일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비대면 금융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금융기업은 너나없이 점포수를 줄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7천100여개였던 국내 은행 점포수는 지난해 6천320여개로 770개 이상 감소했다.

은행들은 MZ세대를 비롯해 40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뱅킹의 광범위한 이용률을 내세우며 점포수 축소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70대 이상 고령층의 모바일뱅킹 이용률은 채 10%가 되지 않으며 고령층 금융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창구를 통한 현금 인출을 선호한다는 금융위원회의 조사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세대와 기술이용 수준을 불문하고 전세자금 정책대출 등 생애 중요성이 높은 여신업무는 고객과의 직접 대면을 통한 업무처리의 필요성이 여전하다. 최근 설립해 모바일을 통해 고객수를 확장하는 인터넷 은행들이야 특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전통적으로 고객과의 대면을 통해 일상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존 은행들이 기술과 비대면의 편리성을 강조하며 고령층을 비롯한 전통적 고객들을 외면하는 까닭의 핵심은 이들과의 거래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금융노동자들을 동원해 단순 입출금이나 소액 예·적금 업무를 수행하게 해서는 남는 게 없는 모양이다. 이런 단순한 업무를 줄이고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여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경영방침인데 거꾸로 강남 등 금융자산가와 고소득자가 집중된 지역에 고급화된 대면 서비스 점포를 강화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업이 돈을 벌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나 금융기관은 사기업이지만 역할은 공공서비스에 가깝다. 따라서 은행이 이윤을 추구할 때도 최소한의 공공성은 지켜야 한다. 보수언론들은 연봉 1억원 넘는 철밥통 은행원들이 무슨 파업에 나서냐며 비아냥거렸지만 지난 9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금융노동자들이 6년 만에 총파업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금융의 공공성을 무시한 금융기업의 일방적 ‘점포 폐쇄’ 때문이었다.

금융노조는 보도자료를 통해 입만 열면 고객 우선, 사회공헌을 이야기하는 금융자본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점포 폐쇄와 인력 감축에 열을 올린 결과 도보로 지점을 방문하던 고령층이 버스를 타고 가서도 한 시간씩 대기해야 한다고 금융 현장의 현실을 전했다. 점포와 인력을 감축해 줄어든 비용으로 은행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그럼 그러한 이익은 금융소비자들에게 골고루 분배됐나? 아니다. 배당을 통해 주주들의 배만 불렸다. 금융노조는 과거 외환은행을 수탈했던 론스타를 비롯한 외국계 자본이 썼던 방식이라며 그러는 사이 줄어든 점포와 인력으로 고객과 금융노동자들만 고통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 점포 폐쇄로 일자리를 잃고 살인적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금융노동자와 그로 인해 불편을 겪는 금융 소외계층은 같은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매도하는 금융노동자들의 총파업 이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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