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실장
한국노총 정치활동의 의미와 필요성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 9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노총의 정치활동은 통상 2년에 한 번 꼴로 치러지는 각종 정치선거 속에서 여러 부침을 거듭해왔다. 2000년대 중반에는 한국노총 주도의 정당 건립을, 그 이후로는 수권가능한 정당과의 정책제휴 또는 정책협약의 방식으로 추진되었고, 2012년의 경우 시민사회세력과 공동으로 특정 정당과의 통합까지 시도된 바 있다.
그러한 가운데 때로는 정치활동의 성과를 경험했고, 심각한 조직 갈등을 겪기도 했다. 선거방침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치열한 과정, 결정된 선거방침을 전 조직적 활동으로 만들어가는 노력, 그리고 선거 결과에 따른 후속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활동, 그 어느 것 하나 쉽사리 넘어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지 정당 또는 후보가 패배할 경우 그 후폭풍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한국노총의 정치활동이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정치선거에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정부의 노동정책, 의회의 노동입법, 그리고 지역의 노동조례·정책에 대한 개입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더구나 기후위기·디지털전환·인구절벽 등 변화의 물결은 총연맹 차원의 정치적 대응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노총은 보다 공격적인 정치활동을 추진함으로써 노동 관련 법·제도 및 정책을 견인하거나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정치선거(주로 대선 또는 총선)에서 한국노총의 공식적인 지지 정당 또는 후보를 결정하고, 한국노총이 제기하는 정책 및 입법 요구안, 이행 프로세스를 골자로 정책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물론 매번 정치선거 때마다 ‘이행되지 않는 정책협약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현장의 소리는 타당하며, 뼈아프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정치선거에 일체의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한국노총은 그간 정책협약 미이행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이를 보완해나가는 방향에서 계속 전진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2,500만 전체 노동자를 책임지는 총연맹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제20대 대선활동의 시작 : ‘현재의 실천’ 촉구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한국노총 대선 방침은 ‘미래의 약속’보다 ‘현재의 실천’을 만들어가는 방향에서 추진되었다. 한국노총은 △5인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 △사업이전시 노동자 보호 △최저임금법 개정 △공무원·교원 타임오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지원법 등을 7대 입법과제로 제시하고,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각각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7대 입법과제에 대한 각 정당의 구체적인 실천과 성과를 대선방침 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며 각 후보를 압박했다. 또한 2021년 내 개최하기로 했던 임시대의원대회 역시 “한국노총의 주요 입법과제 통과를 위한 각 정당의 노력이 20대 대선 방침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것”이라며, ‘국회 통과 상황을 판단한 이후’인 2022년 2월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키로 변경했다.
이로써 1월 임시국회에서 공공기관노동이사제가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공무원․교원타임오프가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되었다. 물론 임시국회 결과만을 놓고 볼 때, 현장의 불신을 완전히 해소시키기에 역부족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노동의제가 실종된 채 흘러가던 대선 국면에서 ‘노동이 제외된 대선은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제시한 한편, 일부 법안의 통과 또는 진전을 이루어낸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제20대 대선 방침 : 임시대의원대회 투표로 결정
1월 27일 중앙정치위원회를 거쳐 임시대의원대회에 회부 할 대선방침의 초안이 확정되고, 2월 7일~8일 임시대의원대회가 개최되었다. 임시대의원대회는 제20대 대선에서 노동존중 정권 창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노조의 정치참여와 개입력을 높이고 조직·정책과제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임시국회 주요 입법 투쟁 결과를 보고했다. 또한 원내 정당 소속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대의원 투표를 진행, 재적 대의원 총 847명 중 741명이 참여(투표율 87.49%)하여 과반 이상 득표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한국노총 공식 지지 후보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 조직적 역량을 집중하고, 정책협약 체결, 선거대책기구 결합 및 각종 투표 독려 활동 등을 추진키로 결의했다.
임시대의원대회 의결에 따라 2월 10일에는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및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중심 정의로운전환 대선승리 정책협약식>을 진행했다. 정책협약은 ▲노동중심 정의로운전환 대선승리 정책협약서 ▲노동중심 정의로운전환의 새시대를 위한 공동선언 ▲한국노총 정책요구 12대 과제에 대한 이행협약 ▲회원조합 정책요구 12대 과제에 대한 이행협약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한국노총 정책요구 12대 과제에 대한 이행협약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 보장 △헌법상 노동기본권 온전한 보장 △노동중심의 사회적 대화기구 운영 △시간주권 보장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해소 △최저임금 현실화 및 적정임금 보장 △고용안정 실현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안전한 노동 등이 합의되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기구인 <대한민국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에 조직적으로 결합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그 아래로는 <노동중심 대선승리 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노총 소속 회원조합 및 지역본부 체계를 따르는 독립적인 선거대책위원회를 운영했다. <노동중심 대선승리 위원회>에는 총 10개의 회원조합과 3개의 지역본부가 결합했고, 그 외 6개 지역본부는 더불어민주당 각 지역 선거대책위원회로 직접 결합하여 활동했다. 또한 약 40여개의 회원조합 및 지역본부, 지역지부가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약을 체결하거나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추진했다.
‘노동’이 실종된 제20대 대선 : 한국노총의 노력으로 끌어올려
한국노총 대선활동 전반 과정에서, 성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초박빙’ 구도는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일 한국노총 지지 후보가 당선되지 못할 경우, 노정교섭을 비롯한 새 정부와의 여러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제20대 대선이 기본적인 노동의제조차 실종된 채 표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대선 후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 등 문재인 정부 5년간 겨우 이뤄낸 작은 성과조차 ‘손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강성노조 운운하며 ‘강경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여성-남성 편가르기와 매한가지로, 노동자-국민 편가르기가 시도되기도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끝에 서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실로 이상한 판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노총은 여러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지 후보를 선택했다. 이로써 한국노총은 제20대 대통령선거라는 중요한 정세 속에서 노동의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킨 유일한 세력이자, 조직된 노동자가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을 재확인시킨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월 임시국회 결과 및 지난 5년간 주요 정당의 노동정책 비교, 한국노총 정책요구안에 대한 각 정당의 답변을 토대로 한국노총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지지 후보 및 대선방침을 결정했다. 따라서 ‘초박빙’이라는 불안한 정국 속에서도 조직 내 갈등을 최소화하고 행동의 통일성을 높였다는 점도 평가되어야 할 지점이다.
한국노총 대선방침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0.73%(247,077표) 차이로 아쉽게 패배했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염두에 두었던 한국노총의 향후 전략은 ‘윤석열 정부’라는 보다 보수적인 환경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패배와 그에 따른 전략 수정이 곧 ‘한국노총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노총 대선활동의 성패를 규정하는 요소는 지지 후보의 당락 여부가 아니다. 우리는 당이 아닌 노동조합이며, 대선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노총이 제기하는 정책요구안의 관철 또는 이를 위한 정치적·사회적 환경을 마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노총 대선활동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노동의제의 공론화 정도와 한국노총의 정치적·사회적 역량의 확대 여부이다. 물론 지지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노총 대선활동 전체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초박빙’ 상황의 대선 정국임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노동의 힘과 각 정당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지지 정당과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한국노총의 정치적·사회적 위상은 높아졌다. 나아가 확대된 한국노총의 정치적·사회적 위상은 한국노총이 제기하는 각종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기에, 향후 이를 어떻게 유지·발전시킬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 공격적인 정치활동으로 난관을 돌파하자
고민의 여지는 없다. 한국노총은 대선활동의 결과물과 성과를 기반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대선 결과가 어떻든 간에 변하지 않는 것은 현장 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이며, 주요 노동의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여전히 172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을 대상으로, 대선 시기 체결한 정책협약이 이행되도록 협의하고 촉구해야 한다. 주요 법안을 중심으로 환노위를 비롯한 주요 상임위에 한국노총의 의견을 공격적으로 제기하여, 변화된 정치국면 속에서도 일하는 사람 모두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더욱 크게 일어서야 한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한국노총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면, 실천과 투쟁으로 돌파하면 된다. 지난 70년간 한국노총이 살아온 그대로, 노동자답게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