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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는 산재사망사고를 진정으로 줄이려고 하는가?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대재해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

등록일 2022년03월04일 13시0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사람은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편안한 집, 맛난 음식, 매력적인 의복 등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에서도 각 개인별로 우선을 두는 순위가 같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삶을 유지했을 때 추구할 수 있는 가치이다. 생명을 잃고 나면 이러한 선택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그 위험에 의해 신체를 다칠 수 있다. 특히 위험요인이 많은 작업환경에서는 다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일터에서 다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다친 것의 대부분은 비록 회복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 다친 것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은 장애를 남기는 것이다. 장애를 얻게 되면 남은 평생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장애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은 생명을 잃는 것이다. 생명을 잃으면 그 이후는 아무 것도 없다. 비록 장애가 생기더라도 생명을 잃는 사고는 막아야 하는 이유이다.

 

25년 전 필자는 직업병을 전공한 의사로 주로 직업병에 대한 역학조사를 수행하고 있었다. 1998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세계노동기구(ILO)의 산업안전보건국장이 산재사망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태국이고 한국이 그 다음이라는 발표를 했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그 이후 산재사망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유럽 등 다른 나라는 산재사고사망자만 보고하는데 비해 한국은 진폐증 등 직업병 사망을 포함해 ILO에 보고했던 것이다. 이후 산재사고사망만 보고하게 되었지만 산재사고사망률은 여전히 유럽 선진국에 비해 3∼5배가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은 오랫동안, 2010년대 초반까지, 재해율을 산재예방지표로 삼아왔다. 재해율이 높으면 노동부에서 사업장 감독을 나가 닦달했고, 정부나 원청은 입찰 등에서 불이익을 주었다. 재해에는 단순한 재해, 즉 며칠 내로 회복되는 재해부터, 치료에 수개월이 걸리는 재해, 장애가 남는 재해 그리고 사망재해가 있다. 이 모든 것을 각각 하나로 계산해서 산재예방지표를 삼으니 사업주는 당연히 경미한 재해는 보고에서 누락하게 되었다. 소위 ‘공상’처리하여 사업주가 또는 노동자가 부담하고 산재로는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산재사망사고는 선진국의 3∼5배가 되는데, 반대로 재해율은 선진국의 1/3~1/4인 산재예방 선진국이 되는 우스꽝스런 통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율 통계만 부여잡고 수십 년 간 산재예방사업을 해 왔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도 이 통계적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재해율 감소만 외쳐댔다. 그리고 아직도 있다. 부정확한 재해율을 버리고 사망사고를 재해 예방지표를 삼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바꾸는데 수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국제지표로 쓰는 사망십만인율(십만 명의 노동자 당 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수)을 채택하지 않고 굳이 사망만인율을 사용한다. 사망만인율을 쓰면 숫자가 작아 보이고 안전선진국과 쉽게 비교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채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상상일까.

 

아무튼 이제 고용부나 안전보건공단도 산재예방 최우선 지표를 사고사망재해 감소로 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최근 10년간 산재사고사망률은 40%가 감소했다. 과거 십만 노동자당 10명이 넘던 사망사고 십만인율은 이제 5명 이내로 감소했다.

 

이제는 유럽 선진국과의 격차도 줄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사망재해율을 비교해 봤다. 2021년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십만인률은 4.31명이었다. 유럽연합(EU) 15개국의 2018년 사망십만인율은 1.46명이었다. 여전히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은 유럽에 비해 3배가 높다. 여기에는 한국이 건설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구조적인 요인도 있다. 노동자 수를 단순히 숫자만 넣는 한국에 비해 노동시간 (주 40시간)으로 보정한 숫자를 넣는 유럽과의 차이도 있다. 단순히 노동자 숫자로만 계산하면, 노동시간이 늘면 사고의 위험은 증가하고 이는 높은 사망률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재 사고에는 사업주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것이 있고, 무과실, 즉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을 수 있다. 유럽 선진국이 사고사망률을 한국의 1/3로 줄인 것은 고의나 과실에 의한 사고를 대부분 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도 과실에 의한 사고가 아직 있겠지만, 대부분 사업주의 무과실, 즉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의한 사망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한국의 사고 사망의 2/3는 적어도 사업주의 과실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법체계에 전혀 맞지 않는, 즉 영국식 법에서나 통할 수 있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것은 위와 같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모든 경제지표에서 이미 선진국에 있는 한국에서 고의는 아니더라도 과실에 의한 산재사망사고가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날까? 그것은 정부, 사용자, 노동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제는 산업안전보건 수준도 선진국 돼야

 

정부는 행정을 법의 정신에 의해 집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 법 체계는 사고에 대한 사후 처벌이 아니라 기준을 정하고 사전에 지키게 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평소에는 위반사항을 놔두고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특별감독’이라고 해서 수백, 수천 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자랑한다. 그동안 그 많은 위반을 하도록 놔둔 정부는 과연 책임이 없는가?

 

사용자는 정말 아직도 생명의 가치를 우선시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최저가 입찰로 해결하는 한 안전에 대한 투자는 없다. 싼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납품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줄여야 하고, 희생시켜야 하고, 그 때 가장 손쉬운 절감 방법이 안전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연히 법적 수가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행정처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특수건강진단을 입찰하도록 하고 저가로 입찰한 기관을 선정하는 사업장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그러니 정해진 가격이 없는 안전비용은 오죽하겠나? 심지어는 여기에 노동조합이 동조하기도 한다. 최저가 입찰을 하더라도 안전비용을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면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은 생명을 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가? 노동자 안전이 중요하다는 구호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산업안전문제를 산업안전부서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차원에서 관여한다. 그리고 산업안전과는 무관한 노동조건과 노사관계에 대입시켜 해결하려고 한다. 노사가 노동조건, 임금으로는 이견이 있고 다투고 교섭하는 것이 정당하지만, 산업안전문제는 투쟁적이 아니라 서로 이마를 맞대고 협력적인 관계로 풀어야 한다. 위험이 보이면 노동자의 작업중지 권한이 발동되어야 하고, 이는 다른 노동조건과 절대 결부시켜서는 안된다. 있는 그대로 보고 노사가 합심해서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투쟁적 노사관계가 높은 산재사고사망률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됐다. 노사정이 각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풀어가고자 할 때 안전한 작업장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수준이 명실공히 선진국 수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성규(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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