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전남 여수시에서 해상에 정박 중인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던 고3 실습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감시인도 없고, 안전장비도 제공하지 않고, 안전교육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무거운 납벨트를 착용해 작업하던 중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망하게 된 것이다. 2021년 4월에는 평택항에서 작업하던 20대 노동자가 컨테이너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300kg이 넘는 컨테이너의 날개에 깔려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두개골, 경추, 흉골, 폐까지 짓눌린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2018년에는 24살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는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방에 석탄가루가 휘날리는 어두운 곳에서 휴대전화 조명으로 빛을 비추면서 혼자 일을 하다가 안전 덮개가 없는 설비에 몸이 끼여 사망한 것이다.
2018년 정부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를 5년 내에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2017년 964명이던 산재 사고사망자는 2021년 828명으로 136명이 줄어 14% 감소하는데 그쳤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3월 13일 ‘산재 사망사고 감축은 문재인 정부가 노력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에 미치지 못한 대표적인 분야’라며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약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멈추어서는 안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산재예방은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관심을 갖고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에서 올해 1월 발표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의 90% 이상이 우리나라 산업재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해 산재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산재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산재예방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와 한국노총, 시민연대 및 안전보건언론사 등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산업재해와 직업병 예방 일터안전 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천만명은 전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이지만, 산재 감소의 중요성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미에서 거대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1992년도에도 고용노동부와 매일경제신문사 주관으로 ‘밝고 건강한 무재해일터 만들기 범국민 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정부 주도로 서명운동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민간이 주도하는 자발적인 운동이다. 과거 서명운동을 진행했던 시기에서 딱 30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는 다시 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는가? 그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산업재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2020년 기준 산재사망자는 2,062명이다. 하루에도 5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산재로 장애를 입은 사람은 29,813명으로 하루에 81명의 장애인이 발생하고 있다. 2020년에 신규로 등록된 장애인이 83,297명인데 산재로 인한 장애인이 35%를 차지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높다. 2020년 산재 사망만인율1)은 1.09‱인데, 교통사고 사망만인율은 0.59‱로 산재 사망만인율이 교통사고 사망만인율보다 무려 1.85배나 높다. 산업재해로 일을 못하게 된 근로손실일수는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보다 99.9배나 더 많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손실 추정액도 약 29조 9천만원에 이른다. 2021년 4분기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규모가 2조 2천억원인 것과 비교해 보아도 산재로 인한 경제적손실이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심각한 산업재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산재 감소를 위한 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둘째는 저출산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 일하는 사람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2019년 51,849,861명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취업자 수는 26,904천명인데, 이는 전체 인구의 52%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일하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현재 일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기업과 국가가 나서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셋째는 산업재해 문제가 노동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1년 6월 광주광역시 학동에서 철거건물이 붕괴해 지나가던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철거작업 시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반 시민인 버스 승객이 희생된 것이다. 2012년 9월에도 경북 구미에서 불산가스가 누출되어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지역사회 주민은 2천명이나 피해를 당했다. 결국 사업장의 안전관리는 노동자들만의 문제만이 아닌 모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올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은 대부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 지나치고, 기업에 부담을 초래하기 때문에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메시지였다. 대기업에서는 대형로펌에 법률적 컨설팅을 의뢰하면서 처벌을 면하기 위한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산업안전보건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매김 했다. 중대재해에 대한 감독 강화, 언론보도 증가, 현장의 안전보건인력 증가 등의 현상을 보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해 소중한 목숨을 구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산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을 때 이를 더욱 고조시켜 온 국민이 나서서 산업재해를 예방해야겠다는 의식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천만명 서명운동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는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공약을 많이 발표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도 산재 문제가 주요 아젠다로 거론될 만큼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국민의힘에서 발표한 산재예방 공약을 살펴보면, 소규모 사업장 및 건설현장 등 산재 취약사업장에 산재예방 기술 및 예산을 집중 지원하고, 건설공사 안전관리체계의 혁신적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 같은 공약이 공약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가 안전하고 건강해야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노동자 개인 및 가족에 대한 생활이 안정되어야 기업의 생산성도 향상되고 국가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 국민 전체의 삶의 만족도를 증진시키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보존되고,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복지도 의미가 없다. 안전을 지키는 사회문화가 조성되어 이제 더 이상 일터에서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산재예방을 위한 일터안전 천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산재예방을 위한 일터안전 천만인 서명운동에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 드린다.
<미주>
1) 노동자 10,000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의 비율(‱ 퍼밀리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