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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또다른 착취의 이름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노동수기 1등, 최수빈]

등록일 2022년02월04일 08시2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노동존중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한국노총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가 나와 내 주변의 노동 이야기를 주제로 지난해 12월 열렸다. 이번 ‘난생처음 노동문화제’에선 웹툰과 노동수기 부문이 추가되어 기존의 동영상과 독후감을 포함해 4개 부문에서 24개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국노총 뉴스페이지 ‘노동과희망’(news.inochong.org)에서는 당선작들을 순차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다들 경력 있는 사람을 원했다. 경력이 전혀 없었던 나는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번번이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합격은 고사하고 면접이라도 보려면 인턴십을 한두 개 정도 해서 경력을 쌓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턴이 되는 것도 취업에 성공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인턴을 뽑는 회사에서도 인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했다. 경력이 있어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현실은 나를 무기력에 빠뜨렸다.

 

무기력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친구도 나처럼 첫 경력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 선배의 도움으로 경력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선배를 만나볼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당장 그 선배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친구는 선배가 돈을 받고 돕는 것인데 그래도 만나겠냐고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나는 단박에 선배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애걸했다. 경력 한 줄을 가질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때의 나는 절박했다.

 

선배는 자신을 인턴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대표라고 소개했다. 취업이 어려운 후배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팔자에 없는 창업을 하게 되었다면서 선배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선배네 회사의 수익 모델은 취업 준비생에게 적당한 인턴 자리를 소개해주고 받는 중개 수수료였다. 선배는 곧장 내일 한 중소기업에 인턴 면접을 보러 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회사 규모는 작아도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회사이며, 다들 하고 싶어 하지만 기회가 없어서 못 하는 인턴십이라고 했다. 당연히 하고 싶지만, 경력이 하나도 없어서 면접에 합격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는 확신에 찬 얼굴로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 회사와 이 년 가까이 일했지만, 선배가 보낸 지원자를 면접에서 떨어뜨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내일 보는 면접은 형식적인 것에 가까우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합격을 자신하는 선배의 말을 들으며 내가 이미 인턴이 된 것 같은 황홀함에 빠져들었다. 벌써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자 합격하면 선배에게 줘야 하는 수수료도 지금 당장 내야 할 돈처럼 느껴졌다. 나는 선배에게 얼마를 수수료로 내야 하는지 물었다. 내내 합격에 확고한 태도를 보였던 선배는 수수료에 대해서는 합격을 하게 되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며 갑자기 확신을 유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배의 태도가 돌변하자 내일 면접이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면접은 전날 걱정한 것이 우스워질 정도로 순조로웠다. 이번 면접관은 다른 면접관들과 달리 자기소개서의 경력 사항 부분이 비어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아주 간단한 질문 몇 가지만 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질문은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이 나한테는 면접에 합격했다는 말로 들렸다. 내 예감은 헛되지 않았다. 면접이 끝난 지 세 시간 만에 인턴 지원에 합격했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합격 문자를 받은 뒤에 연이어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선배는 내가 합격한 것을 알고 있었다. 축하한다면서 내일 만나서 수수료에 관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약속 장소로 가기 전에 은행에 들러 통장에 있는 돈을 전부 찾았다. 선배가 수수료로 얼마를 부를지 몰라서 일단 있는 돈을 전부 가져갈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가진 돈은 사십 만원 정도였다. 아직 오지 않은 선배를 기다리는 동안 수수료가 사십 만원이 넘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걱정했다. 선배가 후배들을 돕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으니 많은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을 스스로 다독였다.

 

내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배는 계약서 한 장을 내밀며 수수료가 선지급이 아니고 후지급이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내 월급을 선배의 통장으로 먼저 보내면 그 돈에서 매달 수수료를 조금씩 뗄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앞으로 3개월 동안 받게 될 돈이 월 90만 원이라고 계약서에 쓰여 있었다.

 

90만 원이 어떻게 책정된 금액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계약서에는 회사가 지급하는 월급이 얼마인지, 선배가 매달 가져가는 수수료는 얼마인지 쓰여 있지 않았다. 선배도 무료 봉사하는 수준의 수수료라고 에둘러 말할 뿐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주지 않았다. 선배와 계약서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몹시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깜깜이 계약서에 사인하기로 했다. 선배에게 돈에 대해서 캐묻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가 어렵게 잡은 기회가 사라질까 걱정됐다. 이번 인턴십에서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리화하며 궁금증을 애써 참았다.

 

내가 인턴으로서 해야 할 일은 직원들이 원하는 자료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나 혼자서 모든 직원을 담당해야 해서 매일 정신없이 바빴다. 주 100시간 가까이 일해도 전 직원이 요청하는 자료조사를 제시간에 끝내는 건 쉽지 않았다. 다행히 회사에서도 나 혼자서 모든 자료조사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인력을 보충해주었다. 보충된 인원은 네 명으로 모두 나처럼 선배의 소개를 통해서 이 회사의 인턴이 된 학교 동창들이었다.

 

인턴 네 명이 더 들어오자 직원들은 안심하고 더 많은 일을 맡겼다. 고유의 업무인 자료조사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들까지 우리에게 시켰다. 나중에는 고객사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과 프레젠테이션을 구상하고 자료를 만드는 일까지 인턴들이 해야 했다. 덕분에 우리는 인력이 보충된 뒤에도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고 매일 남아서 잔업을 했다. 우리는 매일 밤을 함께 보내며 직장에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턴의 일과 직원의 일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특히 신입 컨설턴트와 인턴의 업무는 데칼코마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똑같아졌다. 회사는 아예 인턴들에게 컨설턴트라고 적혀 있는 가짜 명함을 만들어주고, 고객사에 가서는 신입 컨설턴트인 것처럼 행세하게 시켰다. 하는 일도 똑같고, 명함도 똑같은 걸 쓰게 되자 내가 신입 컨설턴트와 다른 점은 월급 액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의 신입 컨설턴트 연봉은 구글 검색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신입 컨설턴트가 일 년에 3천만 원, 한 달에 220만 원가량 받고서 하는 일을 인턴인 나는 겨우 90만 원을 받고서 하고 있었다. 어느새 이번 인턴십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다던 처음의 결심은 잊어버리고, 나는 월급 90만 원은 너무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다른 인턴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한창 월급이 아쉬웠을 때, 인턴 친구가 문서를 파쇄하던 중에 경리과에서 작성한 우리의 월급 명세서를 발견했다. 월급 명세서에는 회사가 인턴에게 매달 135만 원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135만 원은 주 5일 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가 그 당시에 받을 수 있었던 최저 금액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시키고는 딱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의 돈만 주고 있었다.

 

회사도 회사지만 선배도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최저 기준을 간신히 맞춘 우리의 월급에서 무려 33만 원을 떼어 가고 있었다. 계약 기간인 3개월 내내 수수료를 내야 했으니, 내가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의 총액은 99만 원이었다. 5개월을 계약한 친구는 165만 원을 수수료로 내야 했다. 선배의 도움이 없었다면 못 받았을 월급이라지만, 선배가 매달 우리 월급의 4분의 1을 자기 지분이라고 주장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선배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가장 먼저 들어온 인턴이라는 이유로 내가 선배한테 전화하게 되었다.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수수료가 너무 비싸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기억에 선배는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꼭 선배가 아닌 듯했다. 그날 선배는 통화하는 내내 내 말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자기가 이 회사에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써야 했는지 아냐며, 그걸 알면 절대 수수료가 비싸다는 말을 못 할 거라고 했다. 계약서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더는 수수료에 대해서 문제 삼지 말라며 선배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수료가 얼마 안 한다면서 백만 원씩이나 가져가는 선배를 더는 신뢰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계약서를 쓸 때처럼 선배의 말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 말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십시일반으로 상담비를 모아서 노무사를 만났다.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 계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최저 시급 기준을 맞추지 못한 근로계약은 무효였다. 우리가 월급으로 받는 백만 원은 최저 기준을 밑도는 금액이었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월 33만 원에 달하는 중개 수수료도 위법이었다. 선배가 중개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으나, 수수료를 제한 금액이 최저 시급보다 적으면 안 됐다. 선배의 사업은 전적으로 불법이었다.

 

노무사는 최저 시급을 떼먹는 걸 사업이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우리더러 선배를 노동청에 고발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한다면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선배를 고발하는 걸 최후의 보루로 삼기로 했다. 선배가 우리에게 인턴이 될 기회를 줬던 것처럼, 우리도 선배에게 일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우리는 선배에게 메일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월급을 우리 통장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수수료 청구는 중단하며, 첫 달에 낸 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 수수료는 반환해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사항이었다. 마지막 줄에는 위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에는 내일부터 일을 중단할 것이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근로계약을 노동청에 신고할 것이라고 썼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선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선배는 전에 없이 초조한 목소리로 우리가 있는 곳을 말해주면 당장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선배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말했다. 지난번에 통화했을 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던 건, 근로기준법을 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말실수였다고 했다. 선배와의 계약은 바로 철회되었다. 선배는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그동안 받았던 수수료를 모두 돌려주었다. 다음 날, 우리는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게 되었다. 남은 기간은 떼이는 것 없이 135만 원을 우리 통장으로 곧바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인턴십이 끝난 뒤에 우리가 거둔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글이 예상치 못하게 화제가 되면서 내 메일이나 댓글로 자신의 부당한 인턴 생활에 대해서 고백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인턴이라는 이름 아래 최저 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새 한국 사회에서는 인턴이라는 단어가 노동 착취를 감추는 그럴싸한 이름이 되어버린 듯했다.

 

인턴들이 계속해서 노동 착취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내 사연과 착취를 경험한 다른 인턴들의 사연을 대조해보면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공통점 안에 내가 찾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사연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인턴십 경험에 대해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과 나는 인턴을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같았다. 우리는 인턴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가 인턴 월급으로 열정페이를 제시해도 최저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그건 노동자가 아닌 인턴은 요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회사는 인턴을 단기 계약직 노동자로 여기고 있었다. 인턴들은 회사에서 일을 배울 시간도 없이 바로 일을 수행해야 했다. 인턴이 수행한 업무 내용과 업무량이 직원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도 회사가 인턴을 노동자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회사는 인턴에게 노동자임을 일깨워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는 편이 인건비 절약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인턴은 노동자다. 모든 노동자는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회사 측에 근로조건 향상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모든 인턴에게는 부당한 착취를 당당히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 사실을 인턴이 스스로 깨우칠 때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심사평

☞ “몰입도 높은 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배를 고발하는 걸 최후의 보루로 삼기로 했다. 선배가 우리에게 인턴이 될 기회를 줬던 것처럼, 우리도 선배에게 일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읽다가 숙연해졌습니다. 배우고 싶은 태도입니다.

☞ 자신이 겪은 부당한 노동 사례를 기승전결에 따라 세세하게 이야기해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부당한 노동을 경험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이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으로 이어져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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