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연 꽃다지 대표 · 문화기획자
"우와~~!" 한밤중의 고요함을 가르며 함성이 울려 퍼진 그날, 6월 27일. 또 하나의 세계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자살이라고 합니다. 과연 자살일까요? 국가와 사회에 의한 타살은 아닐까요?
쌍용자동차의 대량 해고와 국가 공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고 10여 년간 쌍용차 해고노동자 당사자나 가족 서른 분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러나 그 비통함과 분노의 눈물은 월드컵에서 이긴 기쁨의 함성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늘 슬퍼하거나 분노하며 살 수는 없지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게 삶이고 세상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늘 슬프기만을 강요당하는 해고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공감하고 공존의 노력을 하기보다는 외면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렇게 한탄을 하면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조용히 있다가 국민을 존중하는 정부가 들어서니까 악다구니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비난하는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심하게 숨죽여 사느라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했는지 볼 수 없었겠지요. 이 사회의 부조리에 맞섰던 이들의 투쟁을 외면하고 싶겠지요. 일부라고 하기엔 너무 많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취임하자마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한 대통령 아니냐? 우리 대통령이 다 잘하고 계시니까 조금만 기다려라.”라고 점잖게 타이르기도 합니다. 또 그 반대편의 어떤 사람들은 “시체 팔이, 관 장사, 이러려고 뒤진 거냐?”라고 분향소에 삿대질합니다. 기약 없는 희망 고문 속에 세상을 등지는 동료를 지켜봐야 하는 남은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양쪽이 별달라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청사진 속에서, 험악한 비아냥 속에서 속만 타들어 갈 뿐입니다.
약속은 조용히 믿고 기다린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시스템의 약속도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 한 사람을 믿으라는 건 민주주의 시스템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민주주의는 과정마다 민중의 분노 표출과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가만히 믿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끊임없이 제언하고 투쟁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말의 성찬에 끄덕이는 게 아니라 지금 실천하라고 촉구하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일할 권리를 달라는 죽음에 침묵하거나 비웃는 사람들을 보며 ‘봄은 왔는데 꽃은 피지 못하고 어찌하여 붉게 물든 꽃잎만 가득한가’라고 묻던 박은영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2000년대 초반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던 시기에 말없이 투쟁해온 사람들은 간데없고, 갑자기 등장한 사람들이 내뱉는 화려한 통일전망을 들으면서 느낀 생각을 글로 옮기고 김호철이 가락을 지은 노래 ‘봄은 왔는데’의 한 구절입니다. 통일 문제뿐만 이렇겠습니까 정리해고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이 노래를 녹음하던 때 목이 상해서 평소의 노랫소리보다 거칠게 녹음되었는데 그 거친 소리가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노동의소리'가 '단결, 투쟁, 승리, 해방의 노래' 94곡을 모아 2007년에 발매한 음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노동의 불안정성이 노동자의 투쟁으로 청산되기를 소망하면서, 노동자에게도 진정한 봄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오늘 ‘봄은 왔는데’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