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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보건관리체제와 노동조합의 역할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등록일 2021년10월12일 10시2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안전보건관리시스템 또는 안전보건관리체제는 Occupational Safety & Health Management System의 번역어로서 안전보건관리 프로그램 자체는 아니고 안전보건관리를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method)이다. 안전보건관리에 접근하는 수단과 방법 중 시스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관점에서 안전보건관리를 시스템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다. 현재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은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매가트렌드라 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위험성평가도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중요한 일부이다.

 

용어 통일조차 안 된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종종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부터가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대한 표현이 통일되어 사용되지 못하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부터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내용과 범위가 매우 불명확하다. 이에 대한 용어 정의도 없고, 그 범위와 내용에 대해 학문적·실무적으로 합의된 개념도 아니다.

 

산안법(제2장)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제’라는 용어를, 동법 시행령(제4조)에서는 ‘산업안전보건경영체제’라는 표현을 각각 사용하고 있고, 고용노동부의 공공기관의 안전활동 수준평가에 관한 고시에서는 ‘안전보건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의 안전관리지침(제19조 제2항)에서는 ‘안전경영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등 유사한 용어가 서로 다른 표현으로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표현은 안전관리론이라는 학문에서 일반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제’, ‘안전보건관리(경영)시스템’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용어들은 강제기준으로 사용할 때와 임의기준으로 사용할 때 그 내용과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대한 국제기준으로는 ILO-OSH 2001, ISO 45001이 있다. ILO-OSH 2001은 ILO가 2001년에 제정한 가이드라인으로서 방침(안전보건방침, 노동자 참가), 조직화(사전의무 및 성과책임), 능력 및 교육훈련, 문서, 커뮤니케이션), 계획의 작성 및 실시(초기조사, 계획·개발·실시, 안전보건목표,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대책), 평가(실시상황의 조사 및 측정, 작업 관련 부상, 질병 및 사고 그리고 이것들의 안전보건성과에의 영향, 감사, 경영진 검토), 개선조치(방지조치 및 시정조치, 계속적인 개선)로 구성되어 있다.

 

ISO 45001은 ISO가 제정한 국제규격으로서 조직의 상황(조직 및 그 상황의 이해, 취업자 및 기타 이해관계자의 수요 및 기대의 이해,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적용범위의 결정, 안전보건관리시스템), 리더십(리더십 및 의지표명, 산업안전보건방침, 조직의 역할, 책임 및 권한, 취업자의 협의 및 참가), 계획(리스크 및 기회에의 대응, 산업안전보건목표 및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수립), 지원(자원, 역량, 인식, 커뮤니케이션, 문서화된 정보), 운영(운영계획·관리, 긴급사태에의 준비 및 대응), 성과평가(모니터링, 측정, 분석 및 성과평가, 내부감사, 경영진 검토), 개선(일반, 사고, 부적합 및 시정조치, 조직적 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대한 의지 부족과 몰이해로 이를 방치하고 있다가 산업안전보건법령을 전부 개정하면서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아예 삭제하고 말았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활성화시키기는 커녕 법적 근거를 삭제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간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적도 없고 기업을 대상으로 지도·홍보하는 것에도 매우 소홀히 해왔다.

 

정부의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탓에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은 곧 인증이라는 잘못된 등식이 정착되어 버렸다. 그리고 정부는 그동안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업무를 정부의 일이 아닌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인증업무로 축소시키고, 민간기관의 인증업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등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 구축되어 있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은 관공서용 또는 마케팅용으로 전락되었고, 실질적인 안전보건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관리체제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안전보건관리 추진조직에 해당하는 것을 규정한 것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관리감독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안전보건관리담당자, 산업보건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안전보건협의체가 그것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관리감독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산업보건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지휘종속관계에 착안한 안전보건관리 실시조직이고,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안전보건협의체는 도급관계에 착안한 안전보건관리 실시조직이다. 문제는 정부나 기업에서 안전보건관리 추진조직을 입법 취지와 다르게 선임·지정 여부만 확인하는 등 외형을 갖추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및 같은 법 시행령(입법예고안) 제4조에 규정된 안전보건관리체계라고 하는 것 역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업 및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유해·위험요인 확인·점검 및 개선에 대한 업무절차 마련 및 이행상황 점검, 안전보건 전문인력 배치 및 충실한 수행, 안전보건업무 전담조직 설치, 종사자의 의견청취 및 필요시 개선방안 마련, 중대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및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대응절차 마련 및 확인·점검,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시 수급업체의 재해예방조치능력·기술 및 적정한 안전보건 관리비용과 수행기간을 확인하기 위한 평가기준과 절차 마련 및 이행상황 확인·점검이 그것이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위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관리체제 및 안전보건관리규정과 상당 부분 중복되어 있다는 점과 위 내용이 여러 가지 면에서 명확하지 않아 경영책임자가 무엇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방지침으로 작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현장에서 많은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안전보건 전담 조직 설치, 위험성 평가 실시, 의견 청취 등만으로는 실효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다.

 

노동조합의 적극적 역할 필요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경우에도 노동조합의 올바른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모니터링를 하지 못하고 자칫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에서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실질적으로 구축·운영될 수 있도록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관철되도록 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에서 우선적으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도입 취지, 위상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용을 학습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기초해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의지와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정진우(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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