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 골목식당
20년 전인 2001년, 나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를 했었다. 의경 자원입대였는데 교통의경으로 차출되면서 서울 청량리경찰서(현 동대문경찰서)에서 2년 2개월간 군 복무를 했다. 당시 청량리 관내에서 근무가 가장 힘든 곳은 ‘경동시장 사거리’였다. 경동시장이 있으니 그곳은 언제나 주차와의 전쟁이었고, 사대문 안을 오가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지라 교통난 역시 매우 심했다.
그런데 다른 사거리와는 또 다른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오토바이였다. 신호 대기 중에는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이 차량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타나 정지선 앞에 일렬로 서더니 출발신호가 켜지면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달려 나가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하는 위험운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20년 전과 다른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배달시장이 커진 것이다. 주요 대로는 물론 골목 구석구석까지 이륜차가 지나다니면서 발생하는 위험운전으로 차량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돼버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음식 배달원, 택배기사 등이 포함된 배달원 취업자 수는 39만 명으로 2013년 조사 이후 약 10만 명이 증가하면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과거 주요 도매유통망을 거점으로 성장했던 배달시장은 이제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같은 배달 플랫폼(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골목식당까지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세상이 됐다. 초창기 플랫폼 기업은 편리함과 기술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제 플랫폼 경제는 전통적인 자본주의 시장논리로는 해결이 안 될 정도로 사회적 갈등과 쟁점을 드러내고 있다.
선릉역 오토바이 사고, 무법지대
지난 8월 26일, 서울 선릉역 사거리에서 오토바이 배달노동자가 화물트럭에 치여 숨진 사건이 있었다. 교통사고 조사 결과와 별개로 안타까웠던 건 사고 직후에 있었던 고인에 대한 도 넘은 악플들, 그로 인한 유족들의 2차 피해, 조의금 형태로 1천만 원을 지급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배달의민족, 화물차주가 입었을 정신적 충격, 그리고 알고리즘 속도경쟁 속에서 배달노동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 운전은 계속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10여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2010년 당시 피자업체들의 ‘30분 배달제’로 배달노동자의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청년유니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배달보증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30분 배달제’가 폐지된 적이 있었다. 관행상 금지됐던 이 속도 배달 서비스는 그러나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기업들을 통해 되살아났다. 배민1(배달의민족), 치타배달(쿠팡이츠), 로켓배송(쿠팡), 샛별배송(마켓컬리) 같이 배달노동자의 안전보다 효율과 수익을 우선시한 이 속도 경쟁은 기업의 필수전략이 됐다.
배달노동자는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에서 정의하는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사업자로 등록 후 배달대행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통해 자영업자 신분으로 배달을 한다. 플랫폼 기업이 노동법의 규제를 피하고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사장님으로 만들었지만 행정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배달노동자들은 인공지능(AI)의 지시에 의해 대·소변을 참아 가며 속도경쟁에 내몰리고, 위험운전을 하면 비난은 온전히 배달노동자의 몫이었다. 혹여나 준법운전을 해서 배달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고객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도 배달노동자의 몫이고, 동시에 AI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아 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배달노동자의 몫이었다.
위험운전, 안전운임제
배달 단가는 시간이나 날씨, 주문량 등의 요인으로 큰 차이가 난다. 점심 시간대 배달이나 무더운 날씨, 눈이나 비가 올 땐 운임료가 3배 이상 올라간다. 이 피크시간대에 바짝 배달하지 않으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배달하는 1건당 운임료를 받기 때문에 배달을 많이 할수록 많이 버는 시스템이다. 피크시간대와 건당 운임료, 이 2가지가 배달노동자들을 속도 경쟁에 내모는 주원인이다.
현행법 개정을 통한 보호나, 아니면 새로운 법률의 제정도 중요하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 플랫폼 기업에게 배달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관리를 법률로써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화물업계에서 시작된 안전운임제처럼 배달노동자에게 건당 운임료나 프로모션이 아닌 적정 운임을 보장해주는 제도도 참고할 만하다. 실제로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이 화물노동자를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과적, 과속, 과로 경험이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노동자에게도 최소한의 안전운임료가 보장되면 위험 운행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맞서 보수언론에서는 “여러 규제가 생기면 플랫폼 혁신이 저해되므로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적극 규제를 못해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노동자가 대거 양산됐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진 지 오래다. 그리고 카카오의 사례를 보듯이 플랫폼이라는 명분 아래 각종 법과 제도를 빠져나가 골목상권까지 장악해버린 모습을 우리는 혁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안전한 노동, 사회적 합의
지금까지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 배달노동자들이 위험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렇다고 위험운전 그 자체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배달노동자에 대한 안전교육과 건강검진이 정기적으로 이뤄져 안전한 배달노동이 이뤄져야 한다. 플랫폼노동공제회추진단에서는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서울시 지원을 통해 배달운전의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교통안전교육을 추진했다.
현재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사업공고가 연기됐지만, 선릉역 오토바이 사고의 중대성을 설명하며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다. 건강검진과 관련해서는 9월 초 공공상생연대 공모에 추진단의 사업이 최종 선정돼 내년부터 배달노동자를 포함한 플랫폼 비정형 노동자에 대한 건강증진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배달노동자의 처우 개선 필요성은 노동계, 정부뿐 아니라 경영계도 공감하고 있다고 본다. 더이상 특수고용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지난 20여 년간 소모적인 논쟁을 해왔던 방식으로 진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을 맞아 2019년 총회에서 발표된 보고서 내용을 발췌하며 이번 기고를 마치고자 한다.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 뿐만 아니라 사용자 및 노동자 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 발전의 혜택을 공정히 지급 받고 권리를 존중받으며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배제되어온 수백만의 노동자를 포함한 일의 세계의 모든 주체가 완전히 참여할 때에 사회적 대화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이러한 사회적 합의의 적시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