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노동시장 전반의 위축은 국민들을 점점 힘들게 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불평등한 소득(과 재산)의 정도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소득에만 목을 매어서는 해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른바 ‘사회적 임금(social wage)’이라 할 수 있는 복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6월 한국노총은 경제활동 참가시기에 소득보장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개편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논의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소득보장체계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합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핵심은 어느 수준까지 복지를 확대할 것인가
한국 사회는 그동안 내생적 성장체제가 아닌, 수출주도 중심의 성장방식을 통해 국가의 부를 늘려왔다. 1970·80년대 독재 등의 역사적 경로를 거치면서 핵심부 노동자들에게는 관대한 임금을 제공하고 후한 기업복지를 제공하면서 국가복지에 대한 필요성을 최대한 줄여왔다. 1990년대 이후 점차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면서 2021년인 지금 한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성장하고 복지제도 또한 선진국과 유사한 형태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한 만큼 문제도 산적한 것이 사실이다. 무역시장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의 대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형성되면서 노동시장은 이중구조화되었다. 여기에 소위 괜찮은 일자리에 있는 노동자(와 가족)의 경우 임금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은 동시에 국가복지에서도 상당한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취약계층 일자리의 노동자(와 가족)은 넉넉하지 못한 시장임금과 사회보장제도의 두터운 보호 또한 충분히 받지 못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이하면서, 그리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고, 앞서 언급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복지를 확대할 것인가? 아마 그 답은 복지를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을까 가늠해보는 것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발제에 나선 윤횽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30년까지 OECD 평균에 근접하도록 복지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향후 약 10여년간 114조원을 추가로 복지에 투입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이렇게 된다면 아마도 선진국과 유사하게 자원을 배분한다는 가정 아래 대략 60~70조원 정도의 돈이 소득보장제도에 추가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여기에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출발한 한국형 실업부조나 아직 도입하지 못한 상병수당 등도 포함될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지금 쓰는 돈의 자연증가분을 넘어서 훨씬 더 획기적으로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겨우 OECD 평균을 10년 이내에 따라잡을 수 있으며, 이는 반대로 지금 시기에 어떤 경로를 설정할 것인가가 미래의 10~20년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향후 예상되는 산업구조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상실에 대해 대체할 수 있는 여러 수당 제도들이 발전해야 하는 동시에 전직교육훈련이 충분히 제공되는 방식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소득보장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발제자의 주장은 아마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부분 :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의 양립 가능성
토론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면 가끔 의외의 지점에서 쟁점 혹은 관심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본소득이 그러했다. 한 편으로는 대안적 분배체제로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 쉽게 결합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와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기본소득의 논의 배경이 된 부분에 주목하였을 때 기존 소득보장제도와 충분히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의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소위 완전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으며, 보편적 소득보장제도 달성을 위해 여러 제도들을 촘촘하고 두텁게 쌓아가는 방식으로 개혁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발제자뿐만 아니라 토론자들 모두 공감하는 편이었다.
다만 그렇다면 그 방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는 듯 했다. 기존의 소득보장 정책들을 개별적으로 키워나가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 기존 제도들을 통합해 사각지대를 메우는 방식이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사각지대도 줄이는 동시에 보호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다. 기존 제도의 개혁과 관련해서는 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혁은 정치인들이 끝까지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 청년들에 대한 소득보장이 더욱 충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제도개혁을 뒷받침할만한 조세재정의 구조개혁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더불어 새로운 제도 도입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일정 연령 이상 도달시 현금급여를 일시금으로 제공해 생활자금으로 쓰게 하는 청년기본자산도 언급됐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주경제활동 참가 시기의 국민 모두에게 1년간의 기본소득지급기간을 보장하는 ‘전국민 생애안식년 보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전면적 기본소득이 가시화되는 순간은 언젠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최소한 10년 이내에 찾아오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완전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탈노동’이 바로 현실화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노동소득으로 가구의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노동시장과 연동된 각종 제도들로부터 국가복지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강제적으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설사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할지라도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여전히 많은 기업이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만큼 배를 불리고 있는 실정을 생각한다면, 도리어 우리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이렇게나 비뚤어진 시장을 제어(comtrol)하는 것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정부의 핵심 과제는 상병수당
토론회가 끝나면서 다음 정부가 가장 시급하고 결단력 있게 추진해야 할 핵심과제로서 소득보장제도의 개혁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봤다. 답은 ‘상병수당’이었다. 수많은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시행하고 있지 않은 제도, 현금급여라는 제도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또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둬 재정지출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제도, 아프지만 쉴 수 없어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당장 고민해도 늦지 않을 제도가 바로 상병수당제도 인 것이다.
특히 소득보장제도는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아동수당, 한국형 실업부조, 고용보험 실업급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모두가 소득보장제도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도 향후 상병수당을 포함하여 다양한 소득보장제도의 개혁을 추동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