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혁신안은 전형적인 공공기관 정책의 민낯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국민신뢰 회복을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 혁신안에는 LH 직원들의 토지투기 책임을 물어, 조직의 20%인 2천명을 감축하고 조직을 분리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 직원 직무중심 보수체계 도입, 직무중심의 인사관리 개편, 과거 경영평가 수정 및 성과급 환수 등 투기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지난 3월 정부는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를 위해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재산 등록을 의무화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국회는 해당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대다수의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이전 정부와는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가 중시되고, 공공기관의 거버너스 체제 구축 등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LH혁신안을 볼 때, 공공기관에 대한 인식이 이전과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H혁신안에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와 책임자 처벌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고, 그동안 정부 정책을 성실히 수행해온 LH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조직분리, 직무급 도입 등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구태의연한 제도만 담겨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공정이 사회적 화두이며,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LH혁신안에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 그에 따른 합리적인 조직 개편안이 포함되어야 하며, ‘국민 주거안정 실현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의 LH 노동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만 한다. 지금의 혁신안처럼 본질을 흐리는 과제들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공공기관이 대국민 서비스 증진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운영에 대한 대전환과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기관 운영 대전환 필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 공운법)의 목적은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의 확립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를 향상시키는데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법의 본래 취지에 반하는 지침과 제도 등을 통해 공공기관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오죽하면 새롭게 부임해오는 공공기관장이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진다’는 말을 한다. 이는 공공기관의 예산, 조직, 평가 등 모든 권한을 기획재정부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공공기관 수와 경영평가 대상기관은 증가하고, 공공기관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의 조직규모도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공공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관리조직 확대보다는 공공기관의 운영방식에 대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공공기관이 정권의 무분별한 선심성 공약을 수행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외교로 인해 석유공사의 부채는 2008년말 5조 5천억원(부채율 73%)에서 2020년말 18조 6천억원(부채율 3400%)으로 증가했다. 광물자원공사의 부채는 2008년말 5,200억원(부채율 85%)에서 2020년말 6조7천억원(자본잠식으로 부채율 산출불가)이 되었다. 이들 기관은 해외자원투자실패의 희생양이 되어 지금은 부채율이 높은 공기업이 되었으며, 광물자원공사는 광해관리공단과 통합되는 상황까지 왔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LH혁신안은 부동산정책 실패의 원인을 LH를 비롯한 공공기관에 떠 넘기는 책임전가 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공공의 사회적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공공기관의 공공적·자율적 경영이 담보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공공기관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반영한 ‘신공공관리론(New Pubic Management)’의 영향 아래 설계되어 공공재를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지표를 토대로 평가받아 왔다. 신공공관리론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방만 경영 해소’이다. 이후 ‘형평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효율성만 추구함에 따라 공익적 가치가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늘어나자, 보다 중시해야 할 과제로 ‘사회적 가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공공서비스론(New Public Service)’을 도입해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규범을 제시했다. 그러나 각 기관 별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적용해 사회적 가치창출의 목적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설립목적인 공공 가치 실현과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운영과 관리방침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
셋째, ‘신공공거버넌스(New Public Governance)’에 기초한 공공기관의 재구조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공공기관에 대한 집중관리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총리실에서 공공기관을 집중관리하고, 각 부처의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혁신도 필요하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연직을 제외한 운영위원회 위원을 추천하는 결정구조에서 벗어나 해당 분야에서 추천받은 사람을 대통령이 위촉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종합적인 운영평가로 전환해야
지난 6월 발표된 2020년 경영평가 결과에 오류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기존 경영평가 결과보다 등급이 하락한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표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에서는 기획재정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기획재정부는 오류 수정 후 경영평가 결과를 재발표하고 경영평가단 관계자에 대한 인사상의 조치, 검증 시스템 보강, 경영평가 시스템 전면 재검증 및 근본적인 제도개편을 추진한다는 자체 처방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만으로 경영평가제도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고, 신뢰가 회복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아있다. 약 40년 넘게 이어온 경영평가제도는 여러 차례 부분적 개선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성, 경영 효율성과 사회적 가치의 조화를 내세운 경영평가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영평가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공공성 및 경영효율성’의 상호관계를 확정 지을 수 없거나, 모순적 성격을 내포하는 잣대를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평가의 가장 큰 문제는 공공성을 경시하는 방향성 평가, 공공기관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통제 수단으로 변질, 공공기관의 자율성 제약 등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지표로 포함시켰지만 근본적으로 경영 효율성 중심의 평가라는 성격에 큰 변화는 없었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서 ‘경영실적 평가제도’는 공운법 제48조(경영실적 평가)에 따라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자율·책임경영 체계 확립을 위해서 매년 경영노력과 성과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종합적인 운영평가’로 전환하는 대혁신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세부방안으로는 1) 평가 패러다임 전환(경영평가 폐지 혹은 경영평가단 운영의 주체를 총리실로 이관) 2) 평가시스템 개선(평가결과의 등급축소 및 평가주기 개선) 3) 평가지표 개선(총인건비 인상률 지표의 All or Nothing 개선) 4) 평가단 운영개선(관료배제와 독립적 운영) 등이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시급
공공기관의 진짜 주인은 국민이며,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공공기관 이사회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주요 경영현안에 대해 노동자들이 아무런 결정권도 행사할 수 없다. 노동이사제는 과반수 노동조합이나 직원들이 추천하는 자가 이사회에 참여하여 경영현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논의함으로써 공공기관 경영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유럽의 경우, 1951년 독일의「광산철강공동결정법(Montan-Mitbestimmungsgesetz)」도입 후 확산되었으며 현재 EU 18개국에서 시행중이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 14개국에서는 이미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 적용 중이다.
유럽 사례에서 볼 때, 노동자의 적극적인 경영참여는 시간당 노동생산성, 파업손실 등에서 모두 긍정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7년부터 서울특별시를 포함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며 주요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1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서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노정 합의를 이루었다. 현재 국회에서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담은 법안(「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시급하다.
공공기관과 노동조합의 선도적인 역할 필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장기화, 기후변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사회는 불평등과 사회양극화 등의 수많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사회에서 노동환경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공공기관이라고 이런 문제에 대해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다. 2000년 초반부터 공공기관은 ‘사회적 책임경영(CSR, Coope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 Union Social Responsibility)’의 일환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가치 제고를 위한 ESG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기관의 이미지 제고와 평가를 위한 소극적인 자세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대한 공공기관과 노동조합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에 중점을 두던 과거의 방식을 넘어 사업장 내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과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활동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산업안전 관련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위기 등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과 사회변화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한다. 아울러 부동산 투기사태와 이해충돌방지법 등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투명성과 청렴성이 요구되고 있는 요즘,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국민 신뢰 회복과 내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책임있게 활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정부와 국회의 일방적이고 잘못된 공공기관 탄압정책에 대해 강력 대응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언제까지 정권의 정책을 시험하는 조직으로만 남아 있을 것인가? 공공노동자들은 언제까지 굴종의 시간을 보낼 것인가? 공공기관은 국회와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안정적이고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과 노동자들이 섬겨야 할 대상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