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고려대학교 의료원 지부(이하 ‘지부’라 함)와 고려대의료원은 2013년 연장근로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 관한 합의(이하 ‘특례합의’라 함)를 하였다. 그러나 지부는 2018년 초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기치 아래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특례합의’에 대한 재논의를 요구하였으나, 고려대의료원은 “2013년 특례합의가 이미 존재하며, 이는 기한 없이 유효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결국 위 쟁점은 소송으로 번졌는데, 지부는 기존 ‘특례합의’ 무효의 주된 근거로 ▲‘특례합의’는 근로조건에 관한 내용으로 작성된 단체협약이라는 점 ▲가사 특례합의가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 개정 등 중대한 사정변경이 생겼다는 점을 주장하였으며, 고려의료원은 ▲‘특례합의’는 단체협약이 아닌 근로기준법상 서면합의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근로기준법상 서면합의는 단체협약 최대 유효기간 2년이 적용되지 않으며, 특별한 기간 제한 없이 유효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에 따른 특례합의를 과반수 노조와 사용자가 체결한 경우, 이는 단체협약이다.
이 사건 특례합의는 근로기준법 제53조제1항에 따른 주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원고 지부가 피고와 사이에 서면으로 합의한 것으로서 근로기준법 제59조제1항이 정한 서면합의에 해당한다.
또한,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이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와 근로조건 기타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항에 관한 합의를 문서로 작성하여 당사자 쌍방이 서명·날인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고 그 합의가 반드시 정식의 단체교섭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닌바, 이 사건 특례합의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이 있는 원고 지부와 사용자인 피고가 근로시간이라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합의를 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쌍방이 날인함으로써 성립한 것이므로, 노동조합법이 정한 단체협약에도 해당한다.
단체협약(특례합의)에 특별한 유효기간을 정하지 않은 경우, 단체협약(특례합의)은 체결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유효기간의 만료로 효력을 상실한다.
이와 같이 이 사건 특례합의는 단체협약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 제32조제2항에 의하면 단체협약에서 그 유효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경우 유효기간은 2년이 된다. 그런데 이 사건 특례합의에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를 인정한다는 내용만 포함되어 있을 뿐 그 유효기간에 대하여는 정함이 없고, 이 사건 특례합의 체결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때를 전후하여 원고 지부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특례합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자 단체교섭을 계속하였다는 등의 사정을 인정할 증거는 없으므로, 이 사건 특례합의는 체결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날 유효기간의 만료로 효력을 상실하였다.
3. 대상판결의 시사점
법원은 원칙적으로 지부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단체협약 체결 능력이 있는 지부와 사용자가 근로시간에 대해 합의를 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해 날인한 것은 노동조합법상 단체협약’이므로, ‘이 사건 특례합의는 체결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효력을 상실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고려의료원이 기존의 ‘특례합의’에 따른 인사·노무관리를 하고 싶다면 지부와 다시, 그것도 2년마다 합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통 큰 판결’은 근로자대표, 단체교섭, 단체협약, 쟁의행위 등에 관한 새로운 쟁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첫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한 재판부의 ‘통 큰 판결’은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남긴다는 점이다.
지부와 고려의료원의 ‘특례합의’ 과정에 관한 내부사정까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지부는 일반적인 의미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기보다는 과반수노조로서 ‘근로자대표’의 지위에서 ‘특례합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특례합의’를 단체협약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사례의 ‘연장·휴게시간 특례 등에 관한 합의’ 뿐만 아니라 현행 근로기준법상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휴일대체, 간주근로시간제 합의들도 단체협약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넓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근로자대표’는 퇴직급여법·파견법·산업안전보건법·고용보험법·고령자고용법 등 각종 노동관계법령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대상판결이 갖는 영향력은 남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일반적인 단체교섭·단체협약을 전제하는 기존의 판례 법리가 ‘특례합의’와 같은 새로운(?) 단체협약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특례합의(단체협약)가 체결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등 노·사 모두가 새로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야속하게도, 대상판결은 결국 노동조합 조직률이 증가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무적으로 보더라도,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단체교섭도 부담스러울 텐데 대상판결에 따라 2년마다 거쳐야 하는 ‘합의’가 더 늘어난 셈이니 한숨이 나올 만하며, 그만큼 노동조합이 교섭과 투쟁을 위한 ‘잘 드는 칼’을 몇 자루 더 쥐게 되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듯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과반수노조에 국한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대다수의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이 없으며,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노동조합이 과반수노조에 해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과반수노조가 ‘잘 드는 칼’을 더 갖는 것은 ‘더 쟁취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닿을 수 있겠으나, 생존 자체를 걱정하여야 하는 미조직 노동자 및 약소 노동조합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경사노위 등에서 ‘근로자대표’의 선출·임기·지위 및 활동 등에 대한 합의가 있는 등 ‘근로자대표’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증가해야 해결될 문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문제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