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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임금을 재판시간에만 한정해 지급한다면?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등록일 2022년09월08일 09시2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판사들의 임금을 재판시간에만 한정해서 산정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해보라. 노동자 대부분은 초단시간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고 임금 개념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지난달 31일 서울서부지법에 <저주 토끼>라는 작품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는 연세대를 상대로 지난 10여년의 근속기간에 대한 퇴직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그를 지지하는 비정규직 대학 강사들은 이를 판단해야 할 재판부에 공정한 판결을 주문하며 위의 예시를 들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 사용자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연차휴가나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보통 1주 최대 9시간을 넘지 않는 대학의 강의시간에 따라 1주 3시간에서 최대 5시간 정도를 강의하는 시간강사들은 그동안 근로기준법상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보라 작가의 소송 제기로 대학 시간강사의 퇴직금 문제가 이슈화됐지만 사실 이전에도 대학 시간강사들이 퇴직금 지급이나 초과수당 지급 여부를 묻는 상담이 우리 상담소로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상담을 의뢰한 대학 시간강사들은 대학이 강의라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의시간만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행태에 분노를 터뜨렸다.

정 작가가 제기한 문제의식도 같았다. 연세대가 정 작가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2019년 1학기 이전 기간의 실제 강의시간은 표면적으로는 1주 15시간 미만이었다. 그러나 정 작가는 대학 강의 특성상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하고 학생들의 성적을 관리하며, 각종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등 강의와 함께 1주 4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강의 외 업무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벌어진 대학과 시간강사와의 법적 분쟁에서 이미 수많은 하급심의 판례는 강의 준비시간과 학사행정 업무시간 등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서울고등법원은 강원대 국제어학원 한국어 강사의 부당해고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근로계약서에 정해진 주당 수업시간에 강의하는 것 이외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처리에 필요한 시간은 소정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학측은 이들이 1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주장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른 적용제외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통상 강사들에게 주어지는 “학생 생활지도나 신분관리, 학생 상담 및 평가, 출석 관리, 연구 활동 참여 등의 의무가 주당 수업시간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처리에 걸리는 시간”으로 해석해 이를 더해보면 “이들의 1주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취지로 대학의 주장을 배척했다.

의정부지법은 2012년 경기도 의정부의 한 대학에서 교양영어 시간강사가 학교를 상대로 퇴직금 지급을 청구한 소송에서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을 반드시 강의시간에 한정할 수 없고 1주당 강의시간의 3배(=1주당 강의 자체에 걸리는 시간+그 2배의 강의 준비시간)로 보아 원고들의 근로시간이 15시간을 초과했다”라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이후 고등교육법에 일부 반영돼 2019년 9월1일부터 1년 이상, 주당 5학점 이상 강의한 대학 강사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해당 재판부는 시간강사 퇴직금 지급을 위한 근속기간 산정에서도 근로계약 사이에 일부 공백 기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방학 기간 등이라면 “갱신 또는 반복된 계약 기간을 합산해 계속근로 여부와 계속근로기간을 판단해야 하고, 근로관계의 계속성은 그 기간에도 유지되는 바 원고들은 계속근로기간이 1년 이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학교측의 퇴직금 지급 의무를 인정했다.

그런데도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법 개정으로 퇴직금과 법정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 강사들은 2019년 2학기 이후부터 강의를 수행한 강사들이다. 정상적으로라면 이미 지급해야 할 자신들의 퇴직금 및 법정 수당의 책임을 대학이 회피한 결과 2019년 1학기까지 대학에서 강의한 시간강사들의 권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됐다.

대학 교직원 출신으로 시간강사들의 근로조건을 연구한 황주원 노무사는 현재 ‘강사법’에 따라 1주 5시간 이상 강의를 하고도 1주 15시간 미만으로 취급받아 퇴직금을 받지 못한 대학 강사들을 대신해 고용노동부에 퇴직금 지급 진정을 대리하고 있다.

그는 2019년 2학기 강사법 시행 이전 퇴직금과 법정 수당의 지급청구권을 잃어버린 수많은 대학 시간강사들의 권리 훼손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소 수백만원이 드는 소송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퇴직금과 법정 수당 청구소송에 나설 시간강사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 우려하며 시급히 교육부가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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