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실업률이 상승하는 등 세계경제의 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제위축으로 사회적 위험이 가중되면서 사회적 보호가 절실한 이들이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고, 치료나 돌봄 등 공적 책임이 중요한 영역에 공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코로나19의 장기화가 기정사실이 되고 있어 소득과 일자리 감소 문제는 계속될 것이며, 이에 따른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 소득보장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재정 지출에 있어 과감한 결단으로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향후 5년간 재정의 운영 방향을 논의하여 결정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5월에 열릴 예정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 예산의 규모도 결정된다.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국가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어떤 예산이 필요할까?
△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출처=청와대)
충분한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예산
예기치 못한 감염병 때문에 실직이 증가하고, 취업자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등 심각한 일자리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다른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취업자 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불안정 고용상태에 놓인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의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저소득 근로빈곤층에 대한 취업을 촉진하고, 생활을 안정하기 위한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법률에서 정한 것과 달리 시행령안에서 지급대상과 수준을 낮게 설정해 문제이다. 전국민고용보험제도의 경우, 정부가 먼저 제시하며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러나 감염병 위기 지속으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매우 크고, 비정형적 불안정 노동자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집단이 증가하고 있어 기존의 임금노동자 중심의 고용보험제도로는 새로운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대상자를 확대한다는 안으로는 당장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고용 불안정에 놓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민고용보험을 조기에 도입하고, 실효성 있는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예산을 검토해야 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빈곤선 설정에 있어 사회적인 수준을 반영하는데 중요한 지표인 기준중위소득은 최근 3년간 평균 인상률이 단 2%밖에 되지 않아 실제 빈곤층의 삶의 질은 답보상태이다. 또한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이어 생계급여에서 일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했지만,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거의 늘지 않고, 향후에도 정부의 관련 로드맵이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 위기는 취약한 계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때문에 정부는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준중위소득 인상 등 취약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예산을 충분히 편성해야 한다.
의료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공공병원 확대 예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나라의 취약한 공공의료체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확진자가 급증했던 작년 3월, 대구에서는 확진자가 병실 대신 집에서 대기해야만 했고,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확진자가 생겼다. 의료인력도 부족하여 확진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들이 번아웃에 시달렸다. OECD 국가의 평균 공공병원은 약 71%정도 이지만 우리나라는 약 5.7%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 1천명당 공공병상은 1.3개로 OECD 평균인 약 3개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턱없이 부족한 공공병원 때문에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많은 환자들이 사망했지만 정부는 공공병원 확충에 매우 소극적이다. 올해 예산 편성 시, 공공병원 신축과 증축에 대한 예산은 거의 편성하지 않았고, 작년 말 3개 지역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대전, 울산, 서부산은 원래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했던 지역으로 획기적인 공공의료 확보 방안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열악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 내년부터 17개 시도별로 공공병원 2개 이상을 시급히 확보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안전한 돌봄이 가능한 예산
방역 단계의 조정 등으로 학교, 어린이집, 돌봄 기관 등 필수 돌봄 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돌봄 공백이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정부는 가족돌봄휴가와 같은 유급휴가와 재택근무 등의 대안을 내놨지만, 불안정 고용상태의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게는 실질적 대책으로 작동하기 어려웠고, 결국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또한 지난해 청도대남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사망한 사건은 우리나라 시설 거주자의 높은 밀집도 등 감염병에 매우 취약한 상황과 시설 거주의 반인권적 환경이 그대로 방치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집단 생활시설 거주자와 노동자 등은 감염병 위기에 놓여 있다. 1년이 지난 현재도 정부는 돌봄 공백과 시설 감염자 등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면서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에서 사회서비스원이 제공하는 긴급 돌봄이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기여하면서 공공 돌봄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정부는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공공 돌봄 시설과 인력 확충을 위한 전향적인 예산 확보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과감한 재정 정책이 필요할 때
코로나19로 발생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사회안전망 강화 정책과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담보되어야 한다. 선진국이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확장 재정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확장적 재정 정책의 긍정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즉 침체된 경제상황에서 재정지출 확대는 국가채무 증가로 인한 부정적 효과보다 경기부양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약 40%정도로 매우 양호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국가채무수준 유지라는 기존의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재정준칙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수준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미한 상태이다. 2019년 기준 사회복지지출은 GDP 대비 프랑스 32.2%, 스웨덴 26.8%이고, 미국 24.6%, 일본 22.4%인 반면 우리나라는 11.2%로 OECD 국가 평균 2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장기화되고 사회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기조와 방향은 위기 극복을 위해 보다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곧 있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의 주요 부처와 관료들은 우리나라의 재정운용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낮은 국가채무 비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확장적 재정 정책 마련 논의를 이어갈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