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국장
남북관계 경색 또는 단절, 그 어느 단어도 현 상황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
2018년 한반도 전체를 뜨겁게 달구던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는 불과 3년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제 남북관계는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치열한 대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도대체 왜 불과 2년의 시간동안 모든 것이 뒤집힌 것인가, 이렇게까지 격렬한 갈등을 동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 정녕 없는가, 아마도 이것이 모두의 의문이자 우려일 것이다.
EVENT로의 통일정책, 남북관계의 단절은 예고된 것
지난 3년간 정부의 대북정책은 신기하게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과 오버랩된다. 취임 이틀만에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선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는 파격적이었다. 이는 촛불민심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으나, 법과 제도, 재정, 나아가 사회적 갈등 문제에 대한 해결방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안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우려를 그대로 반영하여, 결과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은 감히 <亡>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일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있으며, 그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제로가 갖는 사회적 의미, 그에 대한 국민적 동의, 재벌대기업의 양보 등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직위상의 또는 숫자상의 비정규직 제로화를 넘어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국민의 일할 권리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재정·문화 등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길게 보아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5년 내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던 내용이었던 것이다.
같은 선상에, 남북관계가 서 있다. 한 해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선언에 서명했고, 5월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했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 및 군사합의서에 서명했다. 게다가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 때는 <능라도 5.1경기장>에 무려 15만의 평양시민들을 모아놓고, 민족자주의 원칙과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약한 문재인 정부는 북측의 ‘조건 없는 개성공단 재개’ 제안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제재를 이유로 사실상 고사했다.
그 뿐인가,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천명한 이 정부는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하여 미국산 전략무기 구매, 역대 최고의 국방비 확대 등 대결의 정점을 찍었다. 물론 오늘 험난한 한반도 정세의 가장 주된 원인이 미국에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세기의 만남’이란 타이틀로 국제여론을 뒤집어엎었던 싱가폴회담 직후, 미국 내부 정치상황을 핑계로 사실상 북미합의서를 외면해버렸다. 이후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직전까지, 영변핵시설 폭파를 비롯해 미군 유해 송환 등 합의 이행을 위한 북측의 노력에 어느 하나도 답을 한 바 없었다.
오히려 대북제재는 더욱 강화되었고, 북을 겨냥한 무력과 군사훈련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2019년 하노이회담에서 미국은 북에게 종전의 싱가폴회담 합의를 엎는 후퇴안을 제시하면서, 북미관계는 수직낙하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미국에게 전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있게 남북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15만 평양시민 앞에 ‘민족자주’를 확인하던 그 때, 합의의 이행이라는 길에서 미국의 개입과 압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이미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개입과 압력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다른 어떤 이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확히 알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과 같이 EVENT로 설정되었거나, 약속의 이행에 대해 사실상 별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남북관계의 단절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쿄올림픽에서 남북미가 만났으면 좋겠다거나, 바이든 대통령에게 북미대화가 빨리 재개되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정부의 ‘노력’을 보다보면, 당분간 남북관계 개선은 가망없겠다는 확신이 들 수 밖에 없다.
남북관계를 넘어, 대외정책 전반이 문제다
지난 3월 미일외교국방장관회의에 이어 한미외교국방장관회의가 개최되었다. 미일외교국방장관회의는 △인도태평양지역의 안전, 평화, 번영을 위해 한미일 3국 협력 △센카쿠 열도 문제에 미일안보조약 적용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주장 반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결의 재확인을 합의했다. 이틀 후, 한미외교국방장관회의는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한 한미일동맹 강화 △한미합동군사훈련 재강조 △비핵화와 대북제제 등을 합의했다. 이어 4월 미일정상회담은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의 합동 항행 작전 실시 △중국의 경제보복에 미일 공동대응 △일본 군사력 강화를 위한 기술 지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이 합의되었다.
이 세 회의를 하나의 사슬로 이으면, 미국의 대중국(대북 포함) 전략을 위해 한미일 외교·군사동맹을 강화하되,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미국이 지원한다는 뼈대가 드러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의 보복조치가 충분히 예상될 수 있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군말 없이 지켜보아야 하며, 남북 대결과 긴장은 한층 강화된다는 의미다. 이의 정점은 5월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인 바, 아마도 그것은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북미대화 재개’가 아닌, 미일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한국의 협력을 재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중관계에서 대놓고 미국편을 드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진에 입다물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한반도 긴장상태 악화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라는 의문이 남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가 이 모든 것에 대한 고려와 검토를 하고 있는지, 또한 정부의 대외전략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집권 초기의 ‘균형 외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대외정책의 기준은 바로 ‘국익’
올해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무려 53조원으로, 앞으로 5년간 해마다 5%가량씩 확대될 예정이다. 이 엄청난 국방비의 대부분은 미국산 경항모 등 전략무기 구매로 사용될 예정이다. 2020년 사용된 고용유지지원금이 채 3조도 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국방비 예산은 분명 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 때문에 재난지원금조차 반대했던 경제부총리는 이상하게도 국방비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언급 없이 통과시켰다.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남북관계, 미중간 분쟁 속에 더욱 강력한 한미일동맹으로의 편입, 코로나19로 인한 서민경제 파탄보다 국방비가 더 중요한 정치인과 관료들. 이것이 바로 ‘국익’과 ‘국민’이 배제된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이다.
감상적인 차원으로서 남북관계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대외정책 전반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돌아보기가 시급히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운전자론’이니 ‘균형외교’니 말만 번지르르한 EVENT부터 폐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