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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젼 (2011)

전염병이 드러내는 것들

등록일 2021년03월30일 13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전 세계적 감염병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우리 삶의 모습과 방식도 무척이나 변했다. 일상을 꾸리고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 등 많은 것들이 폭넓은 변화를 겪었고, 공중보건과 의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 또한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물의 관람 방식에도 작지 않은 변동이 생겼다. 극장은 점차 문을 닫고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한 상영과 관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내용은 어떨까? 질환의 전염과 환자의 관리, 생활의 변화 등 코로나19만의 특수한 상황들 자체를 정면으로 극화한 사례는 일단 아직까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재난이 몰고 온 정치, 사회, 경제적인 국면이나 심리적 문제 등을 직접적으로 극화해 다루는 예도 마찬가지다.

 

대신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물과 서적 등은 현재의 사태를 빠르게 담고 영향도 미치는 중이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익스플레인: 코로나바이러스를 해설하다>는 전염병의 발생부터 백신 개발, 대처 방안까지 다양한 정보를 고루 담은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데이비드 콰먼, 꿈꿀자유)나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롭 월러스, 너머북스)처럼 코로나19 사태가 오기 이전부터 인수공통 전염병과 팬데믹에 대해 연구했던 학자들의 대중서도 새로이 주목받았다.

 

아직 인류가 코로나19 사태를 맞기 전, 사스와 에볼라 등 인간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들을 검토한 데이비드 콰먼은 무엇이 될지 모르는 다음번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상상하며 이렇게 썼다. 과학자들이 그 신종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아채고 경보를 울리고 나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은 과학과 정치와 사회적 관습과 여론과 대중의 의지, 그리고 기타 인간 행동의 다른 측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출처 : 다음 영화

 

이는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서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전염병의 전개 양상은 여러 가지 요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매번 달라진다는 것, 특히 인간의 행동은 늘 통제되는 게 아니기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적어도 지금의 맥락에선 섬뜩하게 무서운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세상에 나온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2011)은 그런 측면에서 마치 하나의 사고실험 같은 영화다.

 

여기 비행기와 같이 나라와 나라를 잇는 편리한 운송수단과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빨리 퍼뜨릴 수 있는 통신 시설을 갖춘 세계, 즉 21세기의 우리가 사는 세계가 있다. <컨테이젼>은 바로 그런 세계에서 원인불명의 치명적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급속도로 사망자를 내는 과정과 현상을 담은 영화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과거에도 늘 있었지만, 앞서 콰먼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전개 양상은 사회의 모습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토록 가까이 연결되어있는 세상에서 치사율과 전염성이 모두 높은 바이러스가, 그것도 접촉에 의해 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제는 막연한 상상이 아니게 되었지만, 10년 전의 이 영화는 그러한 질문을 따라 잠시도 쉬지 않고 숨 가쁘게 상황을 진행시켜 나간다.

 

영화의 주인공은 외부의 압력에 맞서 진실을 알리는 과학자도, 이웃과 동료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평범한 영웅도, 최선의 결과를 고려하며 결단하는 관료도 아니다. 여기선 질병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한 사람의 손에서 버스의 손잡이로 그리고 다시 다른 사람의 손으로, 홍콩의 카지노에서 공항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영화는 인물과 배경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이는 대신 이처럼 바이러스의 끊임없는 이동을 보여주는데 온 신경을 쏟는다. 영화가 시작하고 초반 10분 사이에 원인불명의 병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바이러스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투입되며, 사망자의 가족들이 황망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장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여기서 인간은 개별자인 동시에 인간종이라는 한 무리의 부분으로서 등장한다.

 

그들은 표준적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기에, 주변의 상황이 그들을 기준으로 편집되고 재편되지 않는다. 영화엔 스타 배우들이 적지 않게 출연한다.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케이트 윈슬렛, 주드 로, 마리옹 꼬띠아르 등 눈에 익은 배우들이 초기 감염자와 그 가족, 질병통제예방센터 직원, 기자 등으로 활약하는데, 배역의 이름을 익힐 새도 없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배우들의 존재가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준거점이 된다.

 


출처 : 다음 영화

 

한편, 2021년의 관객인 우리와 영화 사이엔 독특한 거리가 형성된다. 전염병의 초기 진행 양상과 장기적인 대응 과정을 지켜봐 온 우리의 경험을 건드리는 지점들이 영화 관람 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바이러스 ‘MEV-1’은 고열과 호흡곤란을 유발하고 뇌염과 흡사한 증상으로 숙주를 사망케 한다. 영화는 증상이 발현되고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끔찍할 정도로 건조하게 담는다. 상황은 개별 인물들의 죽음을 곱씹을 새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병원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달하고 도시 하나가 통째로 봉쇄되며 치안이 부재하는 사태에까지 순식간에 이른다.

 

어제는 가능했던 일들이 바로 오늘 불가능해지고, 불시에 들이닥친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의 평등과 불평등을 벌거벗기듯 드러내며, 뉴스가 전하는 정보와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소문 사이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행동을 선택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영화와 우리 삶의 거리가 순식간에 지워지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컨테이젼>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들과 자기 몫을 나누는 결단을 담아내면서 인간 행동의 숭고한 지점까지 이 사태 안에 포함한다. 이는 우리가 지난 1년간 수도 없이 접해온 인간의 선하고 정의로운 얼굴이다.

 


출처 : 다음 영화

 

하지만 냉정하고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되는 지점도 적지 않다. 현장에 투입된 전문가들이 마스크 한 장 쓰지 않고 감염자들 사이를 누비는 장면이나, 치사율이 그렇게나 높은 바이러스가 이토록 빨리 전염된다는 사실 등은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게 다소 엄밀하지 못한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의하게 되는 점은 영화가 담아내는 황폐함과 전염병 진행 양상의 피상적인 표면이다. 영화는 특정한 인물이나 에피소드에 중심을 두진 않지만, ‘세계적인 사태’를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시각에서 다룬다.

 

특히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되는 홍콩의 모습은 주목할만하다. 여기서 홍콩 출신 인물은 시골 마을 아이들에게 접종할 백신을 획득하기 위해 조사관을 마을에 억류하는 자로 나온다. 물론 이 인물은 악하거나 무지하게 그려지지 않고, 영화는 이러한 광경을 통해 패권국가의 행태를 꼬집으려고 한 것 같지만, 오히려 아시아 국가에 대한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지금의 우리는 각 나라, 각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활동가들의 모습을 알고 있지 않은가.

 

또한 <컨테이젼>의 바이러스는 치안과 생활 등을 파괴할 만큼 치명적이지만, 현재의 우리가 맞닥뜨린 인종주의, 구조적 실업, 불평등의 참혹한 재생산을 유발할 만큼 끈질기지는 않다. 이런 지점들을 지적하는 것은 한 편의 영화가 사태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투정이 아니라, 나름의 객관적인 관찰이 드러내지 못하는 은밀한 세계의 구조와 현재를 떠받치는 장기적인 흐름에 대해 고민해보려는 시도이다.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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