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누군가의 노동을 존중하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제2회 한국노총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독후감부문> 수상작

등록일 2021년03월30일 11시1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까대기(이종철, 보리)를 읽고” 박지원(3등 노동가치상 일반인 부문 수상)

 


 

“와, 무슨 알바왕이에요? 아르바이트를 엄청 많이 하셨네요.” 예전 인턴 면접에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내 경력이 적힌 이력서는 두 장을 훌쩍 넘겼다. 호텔, 공장, 영화관, 워터파크, 카페, 레스토랑 등등…. 장, 단기 아르바이트 개수만 약 40개. 나의 20대는 온통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나는 공부하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성인이자 노동자였다.

 

첫 시작은 단순히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교통비, 휴대폰비, 보험비, 월세, 관리비, 나이가 들수록 감당해야 하는 범위가 넓어졌고 내 삶에서 아르바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났다. 수단에 불과했던 노동은 어느새 내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만화 <까대기>는 만화가 이종철이 자신의 택배 상하차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만화가라는 본업은 따로 두고 고정적인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온 그는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택배 일을 시작하고 그만두기까지, 그의 시점의 변화는 내가 그간 일을 하며 겪어온 일련의 감정들을 총망라해서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노동을 통해 배운 점들을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었다.

 

겨울의 초입, 한창 택배 일을 하던 이야기의 화자, 바다는 김장을 했다는 엄마에게 김치를 조금만 보내라고 말한다. “엄마, 택배 기사님들 힘들어” 누군가는 치부하지도 않을 이유이지만 적어도 그는 진심이었다. 김장철은 택배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꼽힌다고 한다. 소금물에 절여져 묵직한 절임 배추와 박스를 꽉 채워 터지기 일보 직전인 김장김치. 심지어는 한 집에 수십 박스씩 오는 바람에 무게는 한 명이 짊어질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는 수준이 된다. 바다는 잘못된 포장으로 샌 김칫국물에 옷이 젖고 그 냄새에 밴 채 일을 한다. 이제 그에게 김장김치는 단순히 엄마가 보내준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배송 과정에서의 현실을 현장에서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험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게 노동은 세상 속 다양한 시선을 이해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뷔페에 가면 음식 너머 요리를 하는 셰프들의 위계 관계가 보였고, 놀이공원에서는 반복되는 멘트를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는 알바생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받아도 일일이 CD를 끼며 9시간을 보냈을 사람들이 그려졌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만들어진 게 없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름 모를 이의 노고가 담긴 결과물이었다. <까대기>를 통해 배송 조회를 할 때마다 보이던 이천, 옥천 HUB와 간선 상, 하차의 뜻을 알게 되었다. 객관적인 명사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밤새 택배를 싣고 야간 운전을 하는 기사님과 이른 아침부터 몇 트럭의 짐을 옮겨 담고 있을 까대기 알바생, 택배 기사님, 그들의 모든 일상이 이 짧은 단어 안에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책의 제목인 ‘까대기’는 택배 상하차 일을 칭하는 용어로 나온다. 나는 다른 의미의 ‘까대기’에 몰두했던 때가 있다. 한 의류 브랜드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시기였다. 매일 아침, 100개가 넘는 상자가 오픈 전인 매장 앞에 쌓여있었다. 우리는 칼로 박스를 뜯고 비닐에 담긴 옷들을 꺼냈다. 하나씩 보안택을 달아 빈 매장에 채워 넣었다. 여기서 옷의 비닐을 벗기는 일을 우리는 ‘까대기’라 불렀다. 처음에는 이런 단순노동을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 온 알바생과 어느 정도 익숙한 직원, 오랜 경험을 가진 관리자의 까대기 속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정리해놓은 방식과 모양도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훨씬 빠르고 깔끔했다. 단순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나의 미련한 생각이 깨진 순간이었다.

 

바다의 까대기도 첫 출근한 사람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택배를 레일 위로 내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우 아저씨만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바다에게 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일하는 틈틈이 그를 챙기며 택배 기사님들에게까지 말을 붙였다. 이전에 까대기를 해봤던 종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새로운 근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고, 제 몫을 해내며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똑같은 업무와 상황도 맡은 사람에 의해 그 양상이 달라졌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일의 뒤에는 ‘사람’이 창출해내는 노동의 가치가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자 애쓴 개인의 노고와 성장이 결합해 만든 결과물이었다. 다만 사회는 노동을 아름답게만 바라봐주지 않았다. “몇 번 쓰고 버릴 거니까 대충 쓰라”는 지점장의 대사에는 개인의 노동을 가성비적으로만 접근하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나도 일하며 숱하게 경험한 부분이었다. ‘돈’의 가치가 소중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제일 꼭대기에 군림해버리는 현실. 이를 탈피하고자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우 아저씨는 바다에게 택배 기사님 각각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식당이 망한 부부, 유도선수로 활동하다 일찍이 아빠가 된 대학생, 은행원 출신, 도박으로 빚을 진 사람… 구태여 절절한 사연을 들어보지 않아도 그들의 삶의 곡선은 몹시 고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회에서는 성공보다 ‘실패’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빛나는 정점에서 한 차례 멀어진 사람들. 주 6일 12시간 이상 힘들게 일하면서도 늘 버는 돈은 적었고 누군가에게 죄송하다는 양해의 말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충분히 떳떳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직접 뛰며 땀방울을 흘리고 정당하게 그 대가를 지급받았다. 이는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데 쓰였다. 이른 아침, 가족들이 깰까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출근하는 그들을 그린 그림이 안타깝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보다는 ‘신성하다’는 단어가 더 잘 어울렸다.

 

내가 15살, 동생이 10살 되던 해,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평범한 주부였던 엄마는 당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근처 회사에서 3교대 근무를 구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의 월급은 애 둘을 키울 돈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공장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야간 출근 전에도, 쉬는 날에도,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엄마는 낮에는 반복되는 화장품 포장을 하며 허리를 감싸안았고, 밤에는 근무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나와 동생을 전부 키워내셨다. 내가 군말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도 그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간혹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많이 하면 힘들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걸 통해서 제가 이렇게 자랐는걸요”라고 대답했다. 어른들은 대견하다고 했지만 내게는 당연했다. 더러운 것을 만져야 하는 일도, 냄새 나는 일도, 그 어떤 노동도 하잘것없지 않았다. 나와 우리는 멋지고 당당했다.

 

올여름, 대학을 졸업한 나는 드라마PD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바다가 만화가라는 목표로 달려가던 중 <까대기>라는 새로운 통로를 만났듯 나도 그랬다. 나는 지난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고졸 취업자의 고충부터 부모님의 사업 빚을 갚는 청년, 소규모 사업자의 비애 등 우리는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이야기의 존재만으로도 귀를 기울이고 위로를 받는다.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리며 공감을 이끌어낸 <까대기>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비하인드를 그린 드라마를 만들어 서로를 이해하고 발전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 나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누군가의 노동을 존중하고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오늘도 각자의 까대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끌어낸 나의 변화였다.

 

심사평

☞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까대기의 내용과 잘 어울리고 있다. 자신의 노동을 통한 경험들이 훗날 본인이 희망하는대로 노동의 가치를 아는 멋진 작품을 만드는 PD로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40여개의 알바로 20대를 보낸 경험과 고달픈 가족사가 독후감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진정성 있게 했으며, 드라마 PD 지망생다운 구성을 만들었다.

 

“열 가지 당부(하종강 외, 창비)를 읽고” 오솔비(3등 노동가치상 청소년 부문 수상)

 


 

먼저 이 책 표지를 보고‘왜 십 대부터 노동 인권을 알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노동에 관해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고 노동은 나의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장을 보면서 그 생각은 다 없어졌다. 첫 장에는 “우리는 서로의 노동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살고 있는 집도, 먹고 있는 음식도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노동은 나의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또 첫 장에 있던 말 중에 “‘돈 많은 백수’나 ‘조물주 위에 건물주’를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이도 있죠”라는 말이 정말 공감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말로 “돈을 위해서만 노동을 해야 할까요?”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난 정말 그렇게만 생각을 해왔었다. 돈이 아니면 굳이 노동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노동을 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에 쓰여있다시피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성취감, 노동으로써 맺게 되는 인간관계 또한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노동을 즐기면서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즐거운 생각이었다. ‘노동도 즐기며 하면 참 좋은 세상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노동을 즐기기 위해선 노동 인권이 존중받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노동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그냥 아르바이트 하면 최저임금은 받겠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해왔던 생각이 다 틀린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1000명을 인터뷰했는데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있었다. 난 정말 이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최저임금은 물론 그 이상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나라의 노동이 얼마나 힘들고 가혹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럼과 동시에 ‘나는 왜 그동안 노동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해왔던 것이지?’라는 의문점도 들고 죄책감도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나이 또래 몇몇은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유해 주고 싶다. 그리고 노동자라고 하면‘머리보다는 신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소방관뿐만 아니라 교수, 공무원, 교사도 노동자라는 내용에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직 노동에 대해 반절도 모르고 있었구나’, ‘공무원, 교사분들이 내 생각을 아셨으면 정말 기분이 나쁘셨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노조(노동조합) 내용이 많이 나왔는데 난 이 부분에 대해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 새롭게 느껴졌다. 노동에 대해서 단체적으로 조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은 당연히 못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청소년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청소년 노동자들은 더욱 부당하게 대우받는 경우가 많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용돈이 부족할 때 아르바이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은 해왔지만 노동에 대해 자세히 찾아본 적은 없었다. 노동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노동을 하면 무조건 노동조합에 들어가고 싶다. 또 이 책에서 부당한 일을 겪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 내가 만약 이 일을 겪은 당사자였다면 나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받아들이며 나왔을 것 같다. 그럴 상황을 생각하니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특히 30분 일찍 나오고 30분 마감시간이라는 명목으로 아무 보상도 주지 않는 상황은 정말 빈번히 일어날 것 같았다.

 

노동자의 1시간을 허투루 날려놓고 수당도 주지 않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 분하고 억울했다. 여기서도 내가 만약 당사자라면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정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으면 할 수 있다는 말이 너무나도 듬직했다. 또 정치의 쓸모를 기억해달라는 말이 진짜 마음에 와닿았다. 나도 정치를 멀게만 느꼈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불공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면 정치를 꼭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에는 스트레스에 관해서도 다룬 내용이 있다. 나는 뭐가 조금 안되면 “스트레스 받아”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또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집중력도 올려주고, 성취감도 높여주고, 능력치도 키워준다고 말하고 있다. 근데 막상 생각해 보면 수학 문제를 풀 때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그 문제를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땐 진짜 뿌듯하다. 그래서 무엇이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스트레스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정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좋지 않다고 말한다. 난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바쁜 일상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일을 많이 하면 뭔가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일 많이 하고 살아야지’라고 미래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해도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정말 뭐든지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또 스트레스를 받은 만큼 잘 풀기도 해야겠다. 나는 나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성인이 된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은 없고, 학생 때 나의 미래를 많이 상상해보았다. 그래서 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 특히 바리스타를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바리스타는 임금이 적고 일하는 시간이 적어 투잡을 뛰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고 조금의 충격을 받았다. 내가 보던 바리스타 분들은 진짜 멋져 보였는데 내 생각보다 힘드시겠다고 생각했다. 또 대기업에 다니시는 분들은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여기 나온 대기업 다니시는 분들의 사례를 보고 ‘무조건 돈을 많이 받는다고 좋은 것만은 절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휴식시간도 제공받지 못하고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 같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100% 공감은 안되지만 일하는 시간만큼 휴식시간도 보장받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나는 근로계약서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않았다. 근로계약서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이 책을 덕분에 내가 피해 보는 상황은 절대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하멜은 자신의 임금과 보험 보상을 받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13년동안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서 하멜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포기했을만도 한데 무려 13년 동안이나 기록을 했다니. 정말 놀라웠다.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록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나도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일을 하게 되면 하멜처럼 그렇게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불공정한 일을 당할 기미가 보이거나, 당했다면 그 내용을 누구보다 자세하게 기록해 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노동에 관한 지식이 0%였다면 보고 난 후에는 80%는 채워졌다고 확신한다. 내가 만약 이 책을 보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면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부터 근로계약서는 쓰지도 않고 정말 피해 보는 입장에서 노동을 시작했을 것 같다.

 

또 과거의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으로 보아 우리도 노력하면 노동에 관한 인식과 노동에 대한 법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노동이 발전하도록 노력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인식되지 않기를 바랬다. 나의 노동 지식을 0%에서 80%까지 올려준 이 책을 노동에 관해서 거의 모르시는 분들께 너무나도 추천드리고 싶었다. 이 책을 보게 된 것을 정말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책 쓰신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이 책을 노동자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심사평

☞ 가장 어린 참가자 이다. 돈과 노동에 대한 생각이 책을 읽고 변화된 시선이 잘 표현되어 있다. 돈을 위한 노동에서 성취감, 인간관계, 즐거움 갖는 노동으로 변화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확장이 느껴진다.

☞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감상이 표현되어 있고, 책을 통해 노동에 대해 알고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했던 본 공모전의 취지에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노동존중’을 통해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없기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돌베개)를 읽고” 전세훈(특별상 일반인 부문 수상)

 


 

1. 들어가는 말: 동시대의 비동시성

 

최근 가장 첨예한 갈등으로 보이는 것은 ‘세대 갈등’이다. 세대 갈등이 불거지게 되면서 현재 청년 세대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게 됐다. 최근 나오고 있는 수많은 서적들도 세대를 다루고 있다『불평등의 세대』,『청년팔이 사회』,『90년대 생이 온다』등이 그것이다. 가장 이슈인 세대 갈등은 ‘386세대’와 현재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생들 사이의 갈등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청년운동이 지난 2010년대를 뜨겁게 달궜다. 많은 청년단체들이 생겼고, 청년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세대담론에서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은 어디까지나 대학을 나왔을 경우에 해당한다. 혹은 구직 자리가 화이트 칼라의 국한된다. 지금의 세대 담론은 대학 밖에 있는 삶을 꾸린 수많은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담론이다. 지금의 세대담론도 대졸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제법 많은 수가 특성화고, 옛말로 “실업계”를 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인 “알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 나아가서 ‘알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야 한다.

 

필자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실업계’를 갔다. 그리고 현재도 블루칼라로 일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흙수저 청년’이다. 그렇기에 글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이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 쉽사리 ‘세대’ 담론에서 논외가 되어지는 블루칼라 노동자들, 그리고 대학에 미진학한 청년들, 그리고 그 기성세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필자는 86세대지만, 대학에 가지 않은 이들의 자식이다. 그리고 90년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정작 동네에서는 실업계(특성화고) 청년들을 많이 봤던 청년으로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이 글은 주로 세대-노동 사이의 “동시대의 비동시성”이라는 틀로 『알지 못한 아이의 죽음』을 읽고자 하는 시도다. 90년대 생으로서 내가 느꼈던 노동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나는 최근까지 논의되는 세대 담론을 비판하고, 우리 시대에 잊힌 세대, 그 중심에 노동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한다.

 

2. 세대론에서 제외된 ‘김동준들’ 그리고 ‘김용균들’

 

한 아이가 죽었다. 이 아이는 특성화고 학생이다. 특성화고는 200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에게도 낯선 말이다. 우리 또래는 ‘실업계고’ 혹은 ‘전문계고’가 더 익숙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도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서두에서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 인상깊게 논한다. 그것은 우리가 볼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성화고생을 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어느 삽십대 남성은 이야기 하던 중 자신은 살면서 특성화고 졸업생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와 마주보고 있던 나는 여상을 졸업했다. 그가 말하는 특성화고 졸업생이 바로 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은 전부 대졸자이고 특히 글 쓰는 일에 종사하면 대학을 나왔으리라 간주한다...(중략)...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됐다..(10-11쪽)”

 

그리고 이러한 ‘잊힌 그 누군가’는 더 나아가서 한 ‘세대’에서 조차도 배제되어 있다. 세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방어망 역할을 하고, 친구를 만들어 낸다. 그런 세대에서 배제됨은 방어망과 친구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 속에서 ‘특성화고생 김동준’은 배제되어 있다. 같은 세대의 이야기들이 공유되고 있지 못하다. 차라리, 좋은 방향으로 공유되지 못했으면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김동준’과 ‘김용균’은 한국의 노동문화의 몹쓸 악폐습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이었다. 특히 이들은 학력 밖에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학력 밖 청소년들은 ‘하층계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담당 노무사 김기배는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학력을 채우지 못하고 하층계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 한 어린 친구가 다닌 거에요. 그 친구가 전공과 무관하게 CJ 진천공장에서 소시지 포장하는 일을 했어요. 만약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진 원래 뜻대로라면, 학력이 갖고 있는 계급성과 관계 없이 고등학교 나와서 정상적으로 노동자로 적정한 임금을 받고 살아가야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게 아니거든요.(94쪽)”

 

세대 밖에 위치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하층계급’으로 전락한다. 학력이 가진 계급성을 부정해보고자 이명박 정부에서 만든 마이스터고는 속이 비어 있었다. 학력이 가진 계급성을 끝끝내 떨치지 못했다. 학력은 저숙련-블루칼라 노동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하나의 노동 계급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러나 그 발버둥을 쳐서 빠져나간 곳에서 그대로 남아 천박한 사회와 자본주의 아래서의 계급이 유지되는 이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세대에서 배재된 이들’의 부모들은 다를까. 최근에 기득권이라고 비판받는 ‘586’ 역시도 대학 없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대학진학률이 35%가량이었다. 60년대생들까지는 학력이 고등학교 졸 언저리었다. 대학 진학률은 1994년까지 50%가 되지 않았다.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은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 일하였다. 주 6일, 최장의 근로시간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일하였다. 산업재해 속에서도 일했다. 우리가 떠올리는 586의 모습이 아니다. 공단에서 “내 자식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일렴 하에서 끊임없이 일했다. 그렇지 못한 부모는 죄인이 된다. 산재로 자식을 잃은 이민호씨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돈 없어서 좋은 교육 못 시켜서 특성화고 가게 만든 것도 아빠잘못이지. 특성화고 가서 그 회사 보낸 아빠가 잘못이지. 거기에 제가 가라고 했거든요. 예전에 화물차 운전할 때 그 회사 본부장과 아는 사이였어요. 도중에 본부장이 바뀐 것을 몰랐어요. 그 죄책감이 커요(125-126쪽).”

 

세대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세대든, 자식 세대든 간에 그려지는 모습 뒤에는 대학이 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다채로운 이해가 없다. 노동을 배제해왔던 발전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의 유산 속에서 어떤 이들은 같은 세대로서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그 삶은 배제되고 있다. 비가시화된 노동자들의 삶을 제도권 교육에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김동준도, 김용균도 한 세대로서 인정받지 못한 자리에는 그 부모세대도 함께 하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어떤 노동을 하는지에 따른 갈등이다.

 

결론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 안에서도 실제로 노동계급 간의 갈등이 깊이 깔려있다. 중산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노동계급 간의 갈등이 세대 갈등처럼 보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3. “설마 그런 일이”

 

지금도 동시대의 같은 세대 밖에 있는 또래들이 죽어감에도, 우리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세대에서 배제된 이들의 일은 산업현장의 악폐습은 ‘설마’라는 말을 하게 만든다. 책에서 다루는 김동준은 수없이 많은 언어 및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다. 이후에 산업재해로 죽은 김용균과 이민호의 죽음 역시 2010년대에 일어났다고는 믿기 힘든 일이다. 필자는 지금도 대학에 있다. 대학 안에 있는 구성원들은 이 책의 배경인 김동준 사건 등에 대해서 사람들은 ‘설마’라는 말을 했다. 지금이 60~70년대도 아니고, ‘설마’ 하니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었겠냐는 것이다.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설마’라는 말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오랜 시간 있는 사람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다.

 

다만, 배제된 노동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이들도 이해가 된다. 특정 노동현장이 배제되고, 블루칼라 노동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일부 노동현장은 ‘가지 못하는 곳’으로 인식됐다. 동시대라고 믿기 어려운 근로조건과 조직문화를 가졌지만, 배제된 노동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다. 이 안에 들어온 노동자들은 악폐습으로 물든 조직과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폭력을 당하게 된다. 이 책 표현대로 ‘조금 싸가지 없지 않은 이상’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같은 시대라고 믿기 힘든 현상을 ‘설마’라는 말로 인식하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교육과 문화로 가려지고 있다. 이러한 아픈 현실은 세대를 넘어선다.

 

4. 동시대의 비동시성 속 공유하는 것들

 

동시대의 공유하는 한 가지는 노동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도 없고, 결사의 자유니, 단결권이니 하는 것은 전혀 모른 채 살고 있다. 우리 사회 속에서 자란 이들은 그렇다. 세대 별로 다를 것 같지만, 동시대에 공유하고 있는 측면은 노동에 대한 인식이다. 세대 간의 노동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배제가 만들어 낸 참혹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왔는지 모른다. 이 책을 통해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 모범생이 되길 강요받았던 이유를 곰곰이 고민했다. 우리 또래만 해도,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공부해왔다. 흔히 노동은 ‘몇몇 블루칼라 노동자’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자(혹은 생계형 자영업자)를 ‘낙오자’라고 수업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때였다. 우리 삶에서 명문대학을 가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직업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질까봐 였다. 노동이 교수, 의사도 포괄할 수 있다는 말은 몇몇 교양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실제로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노동자 스스로 좋지 못한 상황이다.

 

돌아서 생각해보자. 우리 뒤에 불편한 진실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불온시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노동자’는 육체노동과 기술직에 국한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조차도,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이 ‘욕’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노동이란 인식은 더하다. 노동자를 배제하고, 노동운동을 억압해왔던 군사정권도, 소위 진보정부라 불리는 ‘민주당계 정부’도 이와 다르지 않은 정책을 펴왔다. 우리에게 사회 속에 배태된 노동에 대한 인식은 노동자가 노동자를 혐오하고, 미워하도록 만들고 있다.

 

“뭘 하든 사람대접받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73쪽)”는 김동준 어머니 김석경의 말처럼 우리사회는 어떤 일이든 귀히 여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 노동을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어떤 세대를 거치든지 배제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포섭되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노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 말미에 나와 있는 유족좌담회에서 나왔듯이 사람이 돈으로 치환된다. 이를테면 이슈가 되면, 9000만 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5000 만원이 되는 등 노동현장 속 죽음이 헛된 것이 된다.

 

5. 맺는 말: 노동존중에 대한 동시성을 바라며

 

이 글의 내용은 나와 대화한 수많은 ‘한 세대에서 배제된 노동자’로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리한 것이다. 전달이 조금 부족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이부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배제된 노동이 있다. 배제된 노동은 블루칼라를 비롯한 육체노동이다. 이들은 세대 담론에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나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근면함은 인정받지 못한다. 서두에서 말했던 “배달하는 청년”을 보고서 “너는 저렇게 살지 말라”고 하는 부모들의 인식이, 동시대를 사는 다른 노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서 다를까가 의문이다. 지금의 세대 논쟁 속에서 배제된 노동, 그리고 배제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분노와 서운함이 사회에도 존재하고 있다.

 

필자는 노동 존중을 어떤 세대이든지 동시에 인식했으면 한다. 어떤 노동이든 존중해야지만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양극화 문제, 학벌 문제, 실업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인식을 고치려고 하는 부분이 어떤 시대에든, 세대에서든 필요하다. 김기배 노무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팩트라는 이름으로 현상을 확인하는 식의 사고 방식은 우리의 인식을 가로 막아서 드러난 것에만 집중하게 하고, 그 아래 구조를 바라보지 못하게 해요. 그 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래가 보일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109쪽)”

 

이 시대의 동시성이 노동을 존중하는 문화가 됐으면 한다. 세대를 넘어서 노동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의제가 되었으면 한다. 노동은 인간 생활을 이루어가는 중요한 매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의 ‘동시성’이 노동을 존중하는 인식인 날이 왔으면 한다. 노동에 대한 존중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기에 그렇다. 이 변화를 통해 산업현장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제 2의 김동준도, 김용균도, 이민호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알지 못하는 세대는 없었으면 한다.

 

심사평

☞ 독후감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대-노동 사이의 ‘동시대의 비동시성’의 틀로 시작해서 노동존중에 대한 동시대의 ‘동시성’ 으로의 맺음은 논문이나 평론으로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 노동존중에 대한 동시성을 바라는 마음을 논리적인 구조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노동존중이야말로 양극화된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책과 각종 사회적 이슈들을 들어서 설득하고 있다.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