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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임욱영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등록일 2021년03월10일 09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한국노총 기관지에서는 2020년 <제2회 한국노총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독후감부문> 수상작들을 순차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1회 남진희 저청소일하는데요

2회 오연서 까대기 / 우예린 전태일평전

3회 오솔비 열가지 당부 / 전세훈 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

 


 

“까대기(이종철, 보리)를 읽고” 오연서(2등 노동존중상 일반인 부문 수상)

 

나는 주말에 배달 일을 한다. 평일에 회사를 다니고, 적은 월급으로 저축도 어려운 서울살이는 꿀 같은 주말도, 주7일의 근로를 부추긴다. 소위 사이드잡은 자기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데, 정작 현실은 닥치는 대로 해도 먹고사는 게 녹록지 않다. 고로 진정하고 싶은 직업과 먹고살기 위해  하는 직업 사이에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택해야 하는 걸까.

 

힘들고 어려운 건 기피하는 요즘 시대, 까대기라 불리는 택배 분류 작업은 나 역시 하루 만에 도망을 나온 경험자로서, ‘2020판 노가다’라는 생각이 든다. 배달 역시, 주문자의 하대와 갑질이 더해, 몸과 마음까지 아픈 업종으로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직업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까대기와 배달.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밑바닥의 일이다. 사용자의 신속함을 요구하는 이 직업들은 근로자의 안전과 인권보다, ‘빨리빨리’가 먼저인, 참 슬프지만 당연한 우선순위로 자리 잡혀있다.

 

그 우선순위에 부합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턱에 숨이 가득 차도록 언덕을 뛰고 있다. 이종철 작가, 까대기 만화 속의 ‘이군’이라 불리는 주인공 작가의 실제 택배 분류 작업 근로 이야기이다. 그도 역시 서울 드림을 꿈꾸며 만화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무작정 서울에 왔으나, 서울 생활은 현실과 다르게 냉혹했다. 아는 형집에 머물며 어떻게든 월세를 줄여가며 80만 원의 열정 페이로 까대기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택배 상하차 업무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아서 반나절 만에 슬쩍 도망가는 사람, 며칠을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나, 힘든 와중에도 부부 근로자, 그리고 부모님 뻘의 어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까대기를 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려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건. 구멍이 나고 냄새에 찌든 장갑이었다. 수천 개의 택배를 내리고 올리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장갑은 땀에 절고, 해지기 일쑤였지만. 사장은 장갑, 그 하나마저도 근로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이 군은 사장에게 장갑을 새로 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장에게는 장갑 따위는 남 일이었다. 냄새나고 해져 수북이 쌓여 있는 장갑들을 가리키며 알아서들 쓰라는 상사의 말은 나 역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게 바로 근무여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게 사람대우라는 것이다. 손이 다칠 염려조차 감수하면서 무리하게 진행되는 택배 상하차 작업은 비단 그곳만의 한정된 비인간적인 처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다만 ‘이씨’라는 호칭이 따르고, 시간이 흐른 뒤, 그‘이씨’는 ‘바다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들 입장에서는, 며칠 있으면 혹은 잠깐 하다 힘들어서 사라지게 될 사람들 이름이 중요치 않다는 게 이 바닥의 흔한 풍경으로 느껴졌다.

 

한데, 까대기 현장에 늘 뒤처리를 해주고, 늦게 들어온 택배기사를 기다렸다 하차를 도와주거나, 고약한 냄새 진동하는 화장실 청소를 말없이 하던 ‘우씨’아저씨. 그 역시, 이름이 없다. 그곳에서는, 사람의 존재는 없고 노동력만 남아 이름을 잃는 곳이었다. 이름을 잃는 곳. 나를 잃는 곳이다. 안타깝게, 까대기 현장만의 일일까? 어느 날 회사에서 도망가다시피 하여 퇴사한 사무원의 빈자리를 보고, 상급자는 이렇게 말했다. “또 뽑으면 되지. 뭐.” 당연하고 가벼운 것.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가벼웠다.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누구 하나 안타까워하거나 그것을 분노할 거리조차 안됐다. 노동자의 인권이 없는 곳에서, ‘나’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참고 버티느냐, 용기 있게 박차고 나가느냐. 둘 중 하나. 누가 이렇게, 당연하게 만들었을까. 이바다, 주인공은 짧지만 함께 했던 ‘우씨’ 아저씨에게 무슨 일 있는지 연락이라도 하고 싶었다. 갑자기 일을 나오지 않으니 여기저기 불편한 상황이 생기거나,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없고 나서야 알게 된다. 뉴스를 보면, 잃고서야 알게 된다. 잃고 나서 법을 고친다.

 

올해 김용균 2주기로 이제서야 세상의 열악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수천, 수십만의 김용균이 어두운 근로 환경에서, 우리나라에 빛을 내주고 있다. 정작, 밝은 빛을 내어주고도, 그 근로자들은 비현실적인 임금과 기본적인 근로환경도 제대로 갖춰있지 않은 상태의 어둠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청춘을 깎아 빛을 밝히고 있다. 얼마나 많은 푸른 청년을 잃어야 알게 되는 것일까. 어떠한 최소한의 보장도 없이 위험을 무릎 쓰고도,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이바다와 다를 바가 없다. 근로현장은 그렇게 청춘에게 냉정하고, 불안한 곳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이씨, 이바다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서울 드림을 꿈꾸며 새벽까지 만화를 그리는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게 까대기 작업이었고, 고됨과 취약한 노동환경을 택한 것도, 꿈을 위해서라면 버텨야하는 생존 환경이었다. 이바다를 보며, 나는 내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뒤돌아보니, 뒤통수가 찌릿하면서 따가워졌다 먹고 사는데 급급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놓치고 하루살이처럼 산 세월이 벌써 십수 년이 흘렀다. 씁쓸하지만 다들 이렇게 살겠지라고 포기 아닌 포기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 안에 꿈틀대는 희망이라는 꿈은 아직 낼모레 마흔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느 날 이바다는 수정이라는 친구를 만나 얘기했다.

 

‘사람값이 싸도 너무 싼 거 같아. 위태롭기도 하고 몸이라도 망가지면 끝장이니까.’ 우리는 끝장날 불안을 매일 안고 이바다처럼, 김용균처럼 일하고 있다. 사는 게 어떠냐는 이바다의 물음처럼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은 안녕한지 말이다. 사람의 값을 매길 수도 없지만, 최저임금이라는 기준으로, 나의 생활이 결정되고 있고, 최저임금이 안정된 수준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로서의 삶은 팍팍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컨베이어 벨트의 택배물처럼 쏟아지는 불안과 열악함과 꿈들이 뒤섞여 쉼 없이 움직인다. 오늘도 배달지로 뛰어가며 까대기 만화책을 챙겼다. 서글픈 청춘의 민낯.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지 않은가. 갑자기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현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막막함은, 이 시대 모든 근로자들의 아픈 민낯이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하므로.

 

심사평

☞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 뛸 수 밖에 없는 이바다의 꿈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하는 현실을 자신의 실제 경험과 회고를 통해 노동자의 민낯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주말 배달일을 했던 경험과 책 내용이 잘 어울어져 표현되었으며, 무거운 청춘의 무게를 덜어내고 앞으로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

 

“전태일 평전(조영래, 아름다운전태일)을 읽고” 우예린(2등 노동존중상 청소년 부문 수상)

 

아빠의 꿈은 인권 변호사였다. 아빠가 이런 꿈을 꾼 건 전태일 평전을 읽으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한테 말하셨다. 대학 1학년 때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고. 인생의 목표가 변하셨다고. 아빠는 지금 과외를 하신다. 가락시장에서도 일하신다. 할머니와 고모가 많이 아프시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글을 쓰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빠 때문이다. 아빠는 늘 책을 읽으신다. 밝은 미소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신다. 아빠는 남을 배려하신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다른 사람이 내릴 때까지 스톱 버튼을 누르신다. 아빠는 나한테도 정말 좋은 친구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존경한다. 작년 봄에 아빠가 나한테 말하셨다. 토요일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자고. 나는 연예인을 만날 거라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어서 토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토요일이 왔다. 아빠는 그날 노동 법률 학교에 나를 데려가셨다. 송파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이 개최한 행사였다. 그날 강의는 송파구청에서 있었다. 나는 정말 실망했다. 그때 노무사님은 산업재해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어떤 노동자는 화학 약품에 중독되어 사망했다고 했다. 안전장치가 없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분은 노동자의 생명이 너무나 무시되는 현실에 분노하셨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 20명쯤 되는 사람들이 강의를 들었다. 직장에 다니는 언니가 있었다. 빌딩 청소를 하시는 아줌마들이 있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아저씨도 계셨다.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대학생이냐고 물으셨다. 내가 중 2라고 말하니까 모두 놀라워하셨다. 어떤 아줌마는 우리 아이들도 이런 모임에 데려와야겠다고 말하셨다. 그분들은 나한테 정말 친절하셨다. 나를 따듯하게 대하셨다. 그날 나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연예인을 만나지 못했다고 불평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빠는 얼마 후 송파유니온에 가입하셨다. 그날 이후 나한테 노동조합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가 결코 외롭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전태일 평전을 3번 읽었다. 처음 읽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빠가 생일 선물로 책을 사 주셨다. 전태일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용이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다. 중학교 1학년 때 다시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전태일 평전을 읽는다. 이제 그가 분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전태일을 열사라고 부르는지도 알게 되었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 암흑기의 절망과 희망을 상징하는 분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성장을 했다. 독재정권은 노동자의 인권을 탄압했다. 한강의 기적은 노동자들의 아픔과 죽음을 먹고 이루어졌다. 전태일은 목숨을 버리면서 그런 불의한 시대를 고발했다.

 

어린 여공들이 하루 14시간 이상 일을 했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들은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내 나이 또래 여공들의 얼굴은 누렇게 떴고 위장병 안질 빈혈 같은 병에 시달렸다. 먼지가 많은 곳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하지만 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태일은 마음이 따듯한 젊은이였다. 어린 소녀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전태일은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대통령한테 편지를 썼다. 바보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가난한 어린 여공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차가웠다.

 

전태일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근로기준법을 불태웠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 시대의 어둠을 밝혔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노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졌다. 송파유니온도 전태일 열사가 만든 불꽃 중 하나다. 가난하고 배움도 없는 젊은이, 전태일은 어떻게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까?

 

첫째 그는 늘 배우려고 노력했다. 둘째 힘든 현실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셋째 어려운 현실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었다. 넷째 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했다. 나는 이런 전태일의 미덕을 전태일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책을 읽고 내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었던 오빠의 모습이다. 오빠는 차비를 모두 써서 풀빵을 샀다. 그걸 여공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오빠는 먼 길을 걸어야 했다. 전태일은 무척 피곤했지만 행복했다. 어린 여공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았으니까. 그런 따듯한 마음이 전태일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전태일이 있는 것 같다. 늘 웃으시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는 매일 전태일을 만난다. 송파유니온에서 만난 사람들도 전태일을 닮았다. 나도 전태일을 닮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 평전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테니까.

 

심사평

☞ 아버지로부터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친근한 감정을 배운 학생의 예쁜 마음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학생의 말처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전태일 평전을 읽었으면 좋겠다.

☞ 이제 중학교 3학년인 필자의 인생에 아빠는 필자가 꿈꾸는 작가가 되기에 이미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필자가 위대하게 평가한 전태일처럼 늘 배우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어 필수 조건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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