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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전우’를 선량한 ‘민간인’으로 키우기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작가

등록일 2020년12월14일 17시5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혈육 간의 정은 기본, 내가 오빠에게 갖는 애정은 일종의 전우애다. 그렇다, 우리 남매는 전우다.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비를 벌러 알바 전선에 나섰기에. 공통의 적에게 같은 전장에서 함께 폭행을 당했기에.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맞았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럴까.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하다가 갑자기 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부모라도 인간적으로 자식에게 이래도 되나. 나는 맞으면서도 이유나 좀 알았으면 싶었다.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아비를 무시하냐며 때리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무시했다면 밥을 무시했지 아버지를 무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요새 애들은 편하게 살고 있어서 문제니 6.25 전쟁이 또 나야 한다며 때리는 것은 또 뭐람. 겨우 그런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리움과 안도감,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화가 났다. 한편 여전히 궁금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이런저런 분야의 책을 읽으며 오래오래 생각했다. 어느 날, 눈 앞이 환해졌다. 아, 그는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었구나. 어릴 때 전쟁을 겪어 무서웠고, 밥 굶고 고생했는데 그 사실이 지금까지도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었구나. 어린 자신이 배불리 먹지 못한 쌀밥을, 어른이 된 자신이 돈 벌어와 가족에게 먹여주는 것이 자랑스러운데, 자식이 많이 먹지 않으니 가장으로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했구나. 쯧쯧. 어리석은 가장이여. 본인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녀를 패다니. 결국 이유란 없었다. 때릴 수 있는 권력이 있으니까,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때린 것이다.

 


<폭력의 대물림> 출처 :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한겨레신문

 

시대의 폭력이든 가정 폭력이든,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은 원인과 구조를 제대로 보고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문제를 일으킨다. 힘이 없기에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당해서 생긴 무기력감이나 모멸감을 극복하는 쉽고도 나쁜 방법은 자신이 가진 힘을 다른 상대에게 행사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성인 남성들은 모두 나이 권력과 남성이라는 젠더 권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전통적인 가장으로서의 권력까지도. 이 권력을 가정 내 약자인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적으로 쓰면, 내 힘에 굴복하고 나를 두려워하는 상대의 모습에서 쾌감을 얻게 된다. 별다른 노력이나 시간, 자원을 들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성공한 남성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기에 힘들게 일하여 돈을 벌어다 주지 않아도 전능한 가장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에 무너지고 상처입은 약자로서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고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아들이 똑같이 폭력 아비가 되어 폭력을 대물림하는 이유다. 학대당했기에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맞아 봤기에, 때리는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아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오빠가 조카를 심하게 때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물었다.

“왜 애를 때려?”

그가 답했다.

“얘는 내 맘에 안 들어. 사내자식이 이렇게 작고 약해서 거친 세상에서 어떻게 살겠어!”

 

맙소사. 본인이 아버지 없이 어린 나이에 가장의 의무를 지고 거친 세상 살아가느라 힘들었다는 말 아닌가.

오빠 역시 자기 인생 한풀이로 어린 아들을 때린 것이다. 예전의 아버지처럼. 아아, 한심한 전우여. 내 어떻게 해야 그대를 선량한 민간인으로 키울 수 있을까. 남매애와 전우애가 넘치는 나는 오빠를 볼 때마다 이야기했다. 트라우마와 과거사 청산에 대해. 경고했다. 오빠 본인이 가진 권력에 대해. 너의 위치에서 너가 가진 힘을 잘 쓰면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폭군 아버지의 길을 가려하냐고 말했다. 그러나 오빠는 변함없이 조카를 때렸다. 어느 날 조카가 매 맞다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 전까지는.

 

“두고 봐요. 이담에 제가 크고 아빠가 늙으면, 그때는 제가 아빠를 때릴 거예요.”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 세이브칠드런(기획) 김지은, 표창원 외 | 오월의 봄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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