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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가 오빠에게 잔소리하는 이유’ 혹은 ‘성폭력 사건의 뒤끝’

박신영 역사 에세이 작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0년09월09일 15시4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우리 남매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두 살 위 오빠는 10대 때부터 아버지 대신 내 보호자 역할을 했다. 그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다. 그런데도 내가 직장 성폭력 사건 피해를 입어 고소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오빠가 대뜸 한 말은 이랬다. “그러게, 네가 잘못했네. 왜 태워준다고 그 남자 차를 탔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오빠가 내게 2차 가해를 하다니! 울며불며 오빠에게 따졌다. 어떻게 내 편이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가해자 편을 들 수 있냐고. 친여동생보다 오빠가 속한 성별인 남성 집단의 이익이 먼저냐고. 오빠는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놀라 아무 말도 못했다.

 

<메두사>, 그리스로마신화 속 메두사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변해있다
 

‘자기 편’을 드는 사람들

 

작가가 되기 전에 다니던 어느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장이 여직원 5명을 연쇄 성추행했다.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빌던 사장은 부인이 알게 되자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몰아가며 부당해고 했다. 우리는 고소하여 형사, 민사 모두 이겼다. 가해자를 징역 6개월 살게 만들고 보상금을 받아냈다. 오빠는 재판을 따라 다니며 나를 도왔다. 가해자가 고용한 조직폭력배 무리에 맞서 검은 양복을 입고 눈을 부라리며 내 옆에 있었다. 대표 고소인이었기에 나는 가장 많은 협박을 받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오빠는 서서히 달라졌다. 현재 오빠는 성폭력 사건 뉴스를 접하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올케언니는 시누이인 나 덕분에 오빠가 같은 나이 대의 다른 남자들에 비해 성평등 의식이 있는 편이라고 내게 고마워한다.

 

나는 뒤끝이 길다. 2차 가해한 것에 대해 오빠는 사과했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무려 성폭력 사건인데 친동생보다 모르는 남성 편에서 말할 수 있을까. 내게 그렇게도 애틋한 오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 오빠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게끔 만든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이는 한 개인의 인성이나 말투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나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가의 문제였다.

 

이상한 사람은 오빠만이 아니었다. 직장 동료 남직원이 사장을 위해 쓴 탄원서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보기에 사장은 인격자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반면 대표 고소인(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은 평소 야근을 많이 하는 등 성실히 일했다. 이는 사장에게 사심이 있다는 증거이니까 대표 고소인은 부도덕한 여자다’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피해 직원들을 부당해고한 후에 새로 뽑아 입사한 직원은 더 이상했다. ‘고소인들은 나쁜 사람들이고 사장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사장을 위한 탄원서를 써 냈기 때문이다. 위에 썼듯이, 나는 뒤끝이 길다. 탄원서에 적힌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 신입 직원을 만났다. 물었다. “당신은 당시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지도 않았고 나를 만나본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썼는가? 이 탄원서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 지겠는가?” 그는 울면서 답했다. “사장 부인이 써 달라기에 써 주었을 뿐이다. 내가 보기에 사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나에게 점잖게 대해 주었기에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내가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니 절대 그럴 리 없다’라니. 자신이 그 사람을 좋게 보았다는 것이 왜 그 사람이 무죄라는 근거가 되는가? 가해자가 옳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옳다는 말 아닌가? 결국 이 사람들은 사장 편도 아니고 자기 편을 든 셈이다. 이 얼마나 미개한가. 놀라웠다.

 


 

피해자를 탓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회

 

2015년부터 국내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졌다. 내가 겪은 직장 연쇄 성폭력사건은 2000년대 중반에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시기상 사람들이 아직 미개해서, 즉 성인지감수성이 낮아서 내 사건 때 이상한 반응을 많이 접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8년 미투 고발 운동이 일어나고 안 지사와 고 박 시장 사건까지 겪은 지금도 상황이 변함없음에 나는 새삼 놀란다. 어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 왜 ‘그 사람이 무죄이고 피해 여성이 무고한 것이다’라는 증거가 되는가? 사건 소식을 듣고 자신이 너무 충격 받았다는 말을 왜 ‘그 사람은 절대 그럴 리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는가? 나는 내가 겪은 사건과 똑같이 가해자가 적반하장 대응하는 것,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에 놀란다. 세상이 여전히 미개함에 놀란다.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 Gender Sensitivity)은 개인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평소 성차별적인 사회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하는 말은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말이 아니다. 자신이 평소 지닌 편견을 말하기 쉽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말하기 쉽다. 이때 자기의 이익이란 대개 가해 남성의 이익 쪽이다. 말하는 이가 여성이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모두 강자/남성의 편에 속하기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 동성 간의 성추행 사건을 접하고도 사람들은 강자/가해자 입장에서 말한다. 피해자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더 강한 쪽에 감정이입해서 가해자 입장에서 가해자의 성폭력할 권리를 지켜주고 피해자를 탓하게 되니 말이다. 내 사건 때 가해 남성의 입장에서 말하던 나의 오빠처럼.

 

성폭력 사건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기 결합 성폭력 외에 성추행, 성희롱을 포함한다. 성추행, 성희롱 사건의 경우에는 폭력으로 치지 않고 피해자의 예민함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폭력인지 아닌지는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내가 보기에 그 정도는 괜찮다. 그것은 성희롱, 성추행이 아니다. 직장 관행이다. 친근감의 표현이다’라고 말하여 2차 가해하지 말아야 한다. 왜 피해자가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이 기준이 되는가? 왜 내 판단이 옳다고 자신하는가? 나의 관점과 판단은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신이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이 사회 문화의 기본이 성차별적이고 강자의 폭력에 관대하기에 문제다. 그러기에 지금 깨어서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해자의 편에서 그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가 되어 버린다. 약자를 공격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경로사상 강조하고 타고난 남성 성별을 우대하는 나라에서는 정말 깨어 있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남성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주위 여성이나 어린 사람, 사회적 약자들에게 폭력적 언행을 하거나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말을 하기 쉽다. 개인의 인품과도, 의도와도 상관없다. 내 사건 때 오빠가 한 말을 보라. 다시 말하지만, 오빠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이며 30년째 아빠 대신 내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남성으로서 가해 남성을 옹호하는 말부터 하지 않았는가.

 

가만 있으면 시대에 뒤쳐져 낡은 것이 되는 것은 핸드폰만이 아니다. 인간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후져진다. 폭력을 폭력인지도 모르고 행하다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나는 오빠가 아내와 딸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오빠에게 열심히 잔소리하는 이유다. 십여 년 전 겪은 성폭력 사건을 계속 증언하는 이유다. 이게 나의 뒤끝이다.

박신영 (역사에세이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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