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정기국회가 짊어진 막중한 과제
2020년 정기국회가 후반전에 돌입했다. 이제 ‘입법의 시간’이다. 12월 내 각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본격적인 (법안)안건심의활동에 집중한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법률안 발의건수는 11. 23. 현재 총 5,172건(의원입법 기준)으로, ‘입법의 폭증’ 상태라 할만하다. 이중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총 500건이 발의되어 이 중 35건이 처리되었고, 465건이 계류 중이다.
지금 국회는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의 한복판에 서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국회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효과적인 입법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동안 축적되어왔던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들을 들추어내고 바로잡을 수 있는 개혁입법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주요 노동입법현안에 대한 한국노총 핵심요구
한국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 취지에 역행하는 정부 노조법 개악안 저지를 위해 11월 6일 제84차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법개정을 필두로 ‘7개 핵심요구과제’를 선정하여 전방위적 대국회 입법투쟁을 결의했다. 핵심요구과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관련기사 참조)
1. ILO 핵심협약 비준 및 노조법 개정
ILO 협약비준을 위한 정부 노조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파업 시 사업장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종업원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출입제한 및 대의원·임원 자격제한과 같은 ILO 협약비준과 무관한 사용자대항권 강화 목적의 개정조항을 포함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사자율교섭에 맡겨야 할 ‘전임자 급여지급 및 근로시간면제한도 문제에 대한 입법적 개입’ 이다.
지난 11월 19일 공개된 ‘한-EU FTA 전문가패널 심리내용’ 역시 위와 같은 정부입법안의 문제점을 뒷받침한다. 심리내용에 따르면, EU 측은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ILO 협약비준 이행노력에는 불충분하다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았다. 만약 이대로 EU와의 분쟁에서 우리나라가 FTA를 위반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우리나라는 FTA 노동기준을 위반한 세계 최초의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또 다른 FTA 체결국가인 미국과의 상황도 녹록치않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과정에서 노동과 인권이 보장되는 공정무역체계 확립을 위해 공격적 통상집행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협약비준과 노조법 개정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국제망신에 그치지 않고 상대교역국에 의한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입법안을 제외하고 현재 10건의 노조법 개정법률안이 계류중이다. 이중 많이 미흡하기는 하지만 10월 7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환노위 여당간사위원)이 대표발의한 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2104441)이 한국노총의 기본입장에 가장 근접하다. 특히,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개선 관련 개정법률안은 여야에서 개정법률안을 발의해놓은 상태이다. 법안심의과정에서 반드시 병합심의를 통해 법개정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확대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 충격으로 실업·실직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문제가 중요이슈로 떠올랐다. 한국노총은 7월 28일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을 체결하여 이른바 ‘전국민고용보험제도 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에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제도 도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고용보험법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안은 비정형 노동자의 포괄적·보편적 사회안전망 확보에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취약계층 노동자, 특히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확대와 관련 현행 고용보험제도의 근본적 제도개혁이라는 원칙 하에, 시급히 정부지원이 필요한 특수고용노동자를 넓게 포괄하는 방식으로 보호방안을 마련하고, 전속성 판단요건을 폐지하여 모든 직종·업종에 대해 고용보험이 당연·의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취약계층 노동자의 최저 노동조건 보장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중소·영세 사업장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임금·노동시간 등 주요 노동조건에 대한 근기법 적용배제로 사실상 ‘무법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1년 미만 근속 노동자 역시 합리적 이유없이 퇴직급여 지급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는데, 이는 명백한 ‘차별’로서 지속적 시정 권고대상이 되어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과 1년 미만 근속자 퇴직급여 문제는 ‘청년’의 일자리 등 고용환경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에 대한 한국노총의 요구과제는 명쾌하다. 근기법 제11조 적용범위 규정을 개정하여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는 것이다. 1년 미만 근속 노동자 퇴직급여 보장 역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4조 제1항을 개정하여 이들에게 퇴직급여 수급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기법 전면적용에 대해서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법률안(의안번호2104382)이 계류중이다. 1년 미만 근속 노동자의 퇴직급여 보장과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법률안(의안번호:2100172)을 대표발의하여 계류중이며,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및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 관련하여서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과 안호영 의원이 발의했다.
4. 최저임금제도 개선
21대 국회에 최저임금법 일부법률안은 16건이 발의되어 계류 중이다. 이중 2건을 제외한 14건 모두 야당의원들이 발의했다. 올해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87%, 1.5%로 낮게 결정되고,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관련 논의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긴장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이후 현장에서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근기법상 ‘통상임금’에 ‘최저임금 산입임금’을 포함시키는 근기법 개정이 급선무다. 또한,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가구생계비를 반영하여 최저임금을 ‘현실화’시키고,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5. 돌봄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서비스원법 제정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고령인구 증가 등 사회구조 변화로 보육, 요양, 장애인활동지원, 간병 등 사회서비스 수요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라는 공공성 취지에 부합하는 사회서비스원 관련 법률 제정이 절실하다. 사회서비스원의 설립목적을 공공성·전문성·투명성 제고로 확고히 정하고, 사회서비스 질을 높이고, 종사자 등 처우개선에 관한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6. 공정경제3법을 넘어 ‘경제민주화5법’
올해 8월 이른바 ‘공정경제3법’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공정경제3법’은 일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 상생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과 사회양극화 해소에 많은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경제민주화·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를 발족한 이후, 경제적 불평등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을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공정경제3법을 넘어선 ‘경제민주화5법’ 이라는 핵심 개혁입법과제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요구한다.
향후 입법과제
위에서 언급한 입법과제 이외에도 지금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노동입법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사노동자특별법,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실효성 확보,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사용사유제한 등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노동시간 단축 정상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 노동현안 쟁점들이 위에서 열거한 핵심요구과제들에 비교하여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관련 법제·개정을 위한 지속적인 입법투쟁이 요구된다.
앞서 ‘입법의 폭증’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회입법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과도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국회미래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어느 한 의원이 하루 4시간씩 1년 300일 동안 동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한 건당 15분 정도 읽고 검토한다고 할 때, 그것만으로도 5년이 걸릴 정도의 분량”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과도한 법안활동은 자연스럽게 부실한 법안 검토 및 심사로 이어진다. 충분한 심사와 토론을 통한 ‘양’보다 ‘질’, 그리고 ‘더 중요한’ 입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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