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을 통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출발
전 국민적인 촛불항쟁은 지난 적폐권력의 종지부를 선언했고, 새로운 국민권력의 대변자를 선출했다.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 이명박-박근혜 독재권력을 청산했지만, 97년 IMF 이후 한국사회에 몰아친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상부권력의 교체만으로는 변화가 불가능한 체제를 양산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낙수효과’로 대표되는 대기업,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이 결과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슬로건이 사회를 지배했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과정에서 생산 중간기지로서의 한국 경제의 위기는 기업을 살려내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노동의 유연화를 통한 비용의 절감, 효율성의 극대화가 제1순위 처방이었고, 20여 년 만에 비정규직 일자리는 폭발적으로 양산되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정치권력 교체의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새로운 권력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좋은 정치인’에 대한 호감이 아닌, ‘우리의 삶’을 바꿀 정치에 대한 열망이었다. 이런 국민들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바로 ‘소득주도성장론’이다. 국민들의 소득(임금) 증대를 통한 생산과 투자의 확대, 곧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통한 성장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바로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이런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정책이 정권 초기에 많이 회자 된 ‘최저임금 1만 원’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공공부문에서부터 지난 20년 간 무분별하게 양산된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화를 통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취임 후 첫 현장방문지로 인천국제공항을 택했다. 인천국제공항은 비정규직의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로 비정규직이 다양하고 비정규직 인원도 정규직 수의 10배에 육박했다. 바로 그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017년 7월 20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중앙부처 및 지자체,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정규직화가 추진됐다. 기관별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 정규직 전환 방식과 처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나 정규직화 논의는 공공기관별 ‘정규직 전환 경영평가 실적’에 쫓기게 되었고,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은 충분히 수렴되지 못한 채 ‘자회사’로 내몰렸다. 대다수의 공기업 및 공공기관들은 모(母)회사가 100% 자본을 출자 해 자(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했다.
무늬만 정규직인 자회사 방식 정규직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는 반쪽자리 정규직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회사가 100% 출자한 자회사였음에도, 회사의 운영방식과 계약과정은 모두 원청과 용역의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구조였다. 자회사는 수십, 수백 개의 용역회사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한 구조이다 보니 노동자들은 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을 뿐, 진짜 정규직 노동자는 되지 못했다.
더 큰 문제점은 용역형 자회사의 운영방식이다. 기존의 용역설계방식 그대로 운영하다보니 정규직 전환 이후 처우개선 몫은 자회사의 일반관리비와 이윤으로 쓰였다. 또한 매달 자회사가 모회사에 기성금을 청구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니 경영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했고, 계약방식은 공개입찰에서 수의계약형태로 변했지만 낙찰률 적용으로 설계금액조차 받을 수 없는 ‘용역형 자회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모회사와 업무 관계의 문제점도 있다. 자회사는 대부분 단순위탁업무를 수행하는데, 모회사 의 감독 및 총괄부서에서 자회사 현장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직접 지시하고, 인사 및 근태 등을 직접 관리하는 관행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모·자회사 간의 갑질문제가 대두되고, 불법파견·위장도급 등의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12월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 운영 모델안’을 발표하여, 기존 용역관행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상 개선되지 않았고, 2020년 3월 ‘자회사 운영 개선 대책’을 다시 발표했다.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진 된 후 3년 동안 가이드라인과 모델안, 대책까지 3가지 지침이 내려왔지만, 아직도 정규직 전환은 완성되지 않았다.
진정한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비정규직 사용제한
민간 영역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공공부문의 경우 기존에는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통해 용역계약 시 낙찰률 하한선 규제를 하고 있고 새로운 용역업체로 변경 시 고용승계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으로 근로조건과 고용을 보호받고 있다. 반면 민간의 경우 대다수가 최저가입찰제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어 계약 갱신 때마다 최저의 근로조건으로 용역금액이 설계될 수밖에 없고, 사용자(현장대리인 등)의 재량에 따라 근로계약을 종료(해고)시킬 수도 있어 말 그대로 불안한 노동인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코비드-19로 인한 여파는 민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에 치명적인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ZERO’ 정책을 통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신규노동자의 정규직 고용관행을 민간으로 확산시켜 사회양극화해소와 고용-복지-성장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 추진 3년이 지난 지금 민간영역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용-복지-성장’의 선순환구조, 즉 소득주도성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규직화 정책이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영역까지로 확산이 필요하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20년이 지나온 오늘날, 우리는 ‘효율’이라는 가짜 이름이 덧씌워진 ‘노동의 유연성’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파견법과 기간제법, 민법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 된 비정규직에 대한 ‘사용사유제한’을 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적용되었던 ‘상시지속 업무’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고용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마치며
정규직화 정책 추진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인천국제공항 사태를 겪으며 공정의 논란에 가려진 정규직화 정책의 민낯은 이미 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3년을 반추하며, 앞으로의 정규직화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행 정책이 가지는 한계가 무엇이며,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할 것인지를 제대로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정규직화 정책의 성과가 민간으로 확산되어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진정한 소득 주도 성장이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