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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 및 정책 과제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등록일 2020년08월31일 09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는 ‘재난 자본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는 반면, 다른 경제와 삶을 위한 전면적 체제 전환의 계기로 연결될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그린뉴딜’은 기후위기와 경제적 양극화가 동일한 원인, 즉 현 경제 시스템의 실패로부터 유래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이 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경제, 정치의 영역을 포함하는 포괄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국판 그린뉴딜은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 같은 주요 목표가 불분명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요소도 미흡하여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백과 부재의 탓을 정부에게 돌릴 수만은 없다. 노동조합 스스로 조합원의 일자리와 지역사회의 미래에 커다란 변수가 될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문제를 자신의 정책과 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다.

 

목차

Ⅰ.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가 던지는 질문들

Ⅱ. 기후위기와 노동의 경제학

Ⅲ. 정의로운 전환과 그린뉴딜의 요청

Ⅳ. 한국판 그린뉴딜의 제안과 평가

Ⅴ.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Ⅰ.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가 던지는 질문들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는 절박한 호소는 이제 우리가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음을, 그리고 부분적인 녹색분칠(greenwash) 정책이 아니라 체제 전환을 위한 지구적 행동이 요구됨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위기가 확산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활동 위축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잠시 줄어드는 현상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의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더욱 진실하게 과학을 대면하고 더욱 과감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는 신속히 해결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지구적 문제라는 사실 때문에 새로운 자본축적의 기회, 즉 ‘재난 자본주의’의 토양이 되고 말 수도 있고, 다른 경제와 삶을 위한 전면적 체제 전환의 계기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그 자체로 노동자의 삶과 일자리를 위협하게 되며, 기후위기 대응 과정과 결과로서 맞이하게 될 다양한 전환들도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의 조직인 노동조합에게 큰 도전을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기후변화와 그 대응은 노동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리고,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산업재편은 어떻게 전개될까? 또한 기후변화 대응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어떤 위기와 기회가 되며,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은 이러한 질문에 생산적인 논의와 상상력을 제공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두 개념이 최근 대두되는 맥락과 관련 정책의 전개를 살펴보고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대응 과제를 제시해본다.

 

Ⅱ. 기후위기와 노동의 경제학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이 2006년에 출간한『기후변화의 경제학』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핵심 내용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500-550ppm 수준에서 안정화하는 비용이 2050년까지 GDP의 최대 5퍼센트에 달할 것인데, 대응이 늦어질수록 이 비용은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스턴은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 보았다. 이는 결국 기후변화가 더 이상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경제 문제라는 것이며, 최근 ‘그린뉴딜’ 논의와 연결되는 핵심 논리와 연결된다.

 

 기후변화와 그 대응 정책은 산업별로 고용에 차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체로 에너지 효율화, 재생가능에너지, 건물 개보수, 대중교통과 같은 산업 분야의 고용이 창출될 수 있고, 화석연료와 관련되거나 에너지집약적인 산업과 서비스 분야에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정과 결과로 새로운 부문과 업종이 나타날 수도 있고, 기존의 비녹색 산업 일부가 ‘녹색화’될 수도 있으며, 기존 직업 중 일부는 사라질 수도 있다. 녹색경제가 창출되면 ‘녹색일자리’가 만들어져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지만, 직접적인 대체 없이 사라지거나 다른 산업으로 대체되는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실업이라는 사회적 고통이 다가올 가능성이 크고, 직무가 전환되는 경우에도 새로운 훈련 과정이나 지역 이동 같은 과정에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 1] 녹색전환으로 생겨나는 일자리와 사라지는 일자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6)

 


 

 이러한 측면들에 대한 정책적 고려와 지원이 충분하지 않게 되면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노동자들이 기후 정책의 지지자가 아니라 반대자로 돌아설 수도 있다. 2018년 프랑스에서 유류세 인상에 반발하며 벌어졌던 “노란 조끼” 시위도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요구되는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그런데 정부와 경제 주체들이 가져가야 할 발걸음에는 더욱 여유를 두기 어려워졌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는 2018년 10월 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48차 총회에서 “1.5도 지구온난화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금세기 말까지 온도 상승을 1.5도로 막는다면 2도의 경우에 비해 해수면 상승이 10cm 정도 적어서 수천만 명의 삶터를 지킬 수 있고, 산호 멸종률을 99%에서 30%로 낮출 수 있으며, 곤충과 동식물 서식지의 파괴를 줄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IPCC는 1.5도 상승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해야 하며,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 즉 온실가스 총 배출량과 흡수량을 합쳐서 결과적으로 제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엄청난 규모와 속도의 산업재편을 불가피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림 2] 1.5도 특별보고서의 기온 상승과 온실가스 감축 경로 요약 (UNEP·WMO, 2018)

 

*주: 1) 기온은 1.5도를 약간 상회해서 상승했다가 하강하여 1.5도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 시점을 온실가스 배출 정점으로 삼고 급격한 탈탄소화를 진행하여 2050년까지 넷제로 상태를 만들어야 함을 보여준다.

     2) Temperature target(기온 목표), Temperature overshoot(기온 초과), Emissions peak(배출 정점), Rapid decarbonization(빠른 탈탄소화)

 

 

Ⅲ. 정의로운 전환과 그린뉴딜의 요청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노동운동에게 환경과 일자리의 관계를 새롭게 보게 만들고 나아가서 중요한 전략적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개념이다. 이 개념은 미국의 노동-환경 동맹의 선구자인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에 석유화학원자력노동조합(OCAW)에서 활동한 그는 독성 화학 물질이 토양에 해를 입힌다면 제조업 작업장에서 유독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들도 분명 의학적 위험에 처한다고 보고 환경운동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노동운동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를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 제안으로 구체화해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초석을 놓았다.

 

 내용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은 유해하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산업과 공정을 친환경적인 것으로 전환하도록 하면서,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희생이나 지역사회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훈련과 재정적 지원을 보장한다는 원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일련의 정책 프로그램을 말한다.

 

 최근에는 정의로운 전환이 주로 기후변화와 화석에너지 위기에 따른 산업의 녹색 전환 필요성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논의와 사업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제노총(ITUC)은 오랜 캠페인 끝에 2015년 새로운 국제 기후체제인 파리협정 전문에 “각국의 발전 우선순위에 조응하여 노동력의 정의로운 전환과 괜찮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원칙을 고려할 것”이라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 자체로는 추상적인 수준이지만 향후 국제 사회와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에서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의 미래에 관련하여 중요한 논의와 투쟁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한편, 2018년 말부터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그린뉴딜’은 기후위기와 경제적 양극화가 동일한 원인, 즉 현 경제 시스템의 실패로부터 유래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이 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지적, 기술적 대책이 아닌 사회, 경제, 정치의 영역을 포함하는 포괄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린뉴딜은 오래 전 미국의 대공황 시대에 플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공공 인프라 사업과 사회보장 강화와 같은 ‘새로운 계약(New Deal)’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정책을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응용한 것이다. 그린뉴딜은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에서 이미 사용된 개념이지만,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은 제레미 리프킨의 의 글로벌 그린 뉴딜이 대표적이다. 리프킨은 전 지구적 경제 위기와 환경 위기라는 비관적 상황을 그의 ‘한계비용 제로’ 경제학과 재생가능에너지 및 수소에너지의 잠재력 평가를 기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프킨의 그린뉴딜은 연방정부의 전면적 탄소세 인상과 탄소 배당, 화석연료 보조금 삭감, 도시와 농업 전환, 녹색은행, 노동조합 연기금 활용과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자금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2021년 초반 미국 새 대통령과 의회의 임기 시작 6개월 내에 그린뉴딜 법안 통과를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경제 및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는 맥락에서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켰고, 2018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여러 급진주의자들이 미국 의회에 진입하면서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방편으로 그린뉴딜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이론적 그리고 사회운동적 배경 속에서 현재 미국 민주당의 핵심 대선 정책으로 떠오른 그린뉴딜은 탄소배출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0~60% 감축하고 2050년 넷제로 달성, 동시에 미국사회 부의 불평등과 차별 완화를 목표로 하며,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태세로 그린뉴딜을 실행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니콜라스 스턴 등이 최근 발표한 논문(Hepburn et. al., 2020)도 ‘그린뉴딜’ 같은 친환경 정책이 코로나-19 위기의 경제 회복 패키지로서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전통적인 경기 부양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단기적으로는 경제적이며, 장기적으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생태적 비용을 시장 가치로 환산하여 현실에 적용 가능한 최적의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환경경제학 또는 넓게 보아 생태적 근대화론의 조망 속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코로나위기 대응이 기후위기 대응으로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한 연결 고리를 보여준다.
 

 그린뉴딜은 각 국가의 역사적 맥락과 조건에 따라 여러 명칭과 내용으로 변주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그린 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영국은 이에 조응하는 정책을 ‘녹색 산업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해외 논의와 정책 속의 ‘그린뉴딜’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통한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불평등 해소를 추구하려는 대안으로, 다른 각론적인 기후정책들과는 차별적인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Ⅳ. 한국판 그린뉴딜의 제안과 평가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녹색당, 더불어민주당이 ‘그린뉴딜’을 주요 정책 공약으로 제시하여 한국의 공식 정치담론에서 그린뉴딜이 최초로 부상했다. 세 정당의 그린뉴딜 정책은 가치와 강조점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석탄화력발전 축소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불평등 완화를 위한 프로그램, 탄소세 통한 재원 확보 등의 내용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었다.

 

<표 1> 21대 총선에서 제출된 그린뉴딜 공약

 

 그런데 총선 이후 국회에서 그린뉴딜을 법률이나 정책으로 발전시키려는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반면에 지난해부터 여러 지방정부나 기업의 크고 작은 환경 관련 정책과 사업들이 ‘그린뉴딜’로 유행처럼 포장되는 사례가 더 많이 목격되었다. 즉 그린뉴딜의 지향과 내용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 보다는 그린뉴딜의 ‘브랜드화’가 가속화되는 형국이다. 
 

 중앙정치의 공간에서 답보하던 한국의 그린뉴딜은 코로나위기 대응 속에서 청와대의 결단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되었다. 지난 4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코로나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의 필요성을 밝히고, 5월 말에는 한국판 뉴딜에 ‘디지털뉴딜’과 더불어 ‘그린뉴딜’을 포함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업을 뒷받침할 추경도 편성되었지만, 실제 내용에는 새로운 과감한 사회 ‘계약(deal)’이나 그럴듯한 ‘새로운(new)’ 사업은 부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나 유럽의 그린뉴딜이 2050년 이전 넷제로 달성 등 온실가스 감축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지만, 한국판 그린뉴딜에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의 목표와 효과 예상이 부재하다는 데에 있다. 또한 인프라 구조의 녹색 전환이라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건물과 수송이 중심이어야 하지만, 세부 사업 내용은 건물은 노후 공공 건축물 개선에 국한되어 있고, 수송 부문 사업(특히 철도 관련)은 전무하다.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 대응에서 중요성이 더욱 커진 농업과 먹거리 부문도 포함되지 않았다. 투여되는 재정 규모도 경제와 사회의 체질을 개선할 정도로 마중물이 되는 규모가 아니며, 창출될 것으로 제시된 일자리의 숫자도 현실성이 불분명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판 그린뉴딜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파리협정 문구에도 포함된 정의로운 전환은 재생가능에너지나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자는 것 뿐 아니라, 이러한 전환의 과정과 결과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참여 속에서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의 발표에는 ‘공정 전환’이라는 표현만 한두 줄 들어가 있을 뿐, 이렇다 할 사업과 프로그램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백과 부재의 탓을 정부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그린뉴딜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야 할 노동조합 스스로도 조합원의 일자리와 지역사회의 미래에 커다란 변수가 될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문제를 자신의 정책과 사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1.5도의 티핑포인트를 지키기 위해 허용되는 탄소 배출량, 즉 탄소예산은 겨우 8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조합에게도 허용된 시간은 많지 않다. 올바르고 유효한 ‘정의로운 그린뉴딜’을 위해 노동조합이 먼저 산하 노동조합과 현장 상황에 대한 조사와 교육, 정책 활동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은 경제 규모와 생산의 일정한 축소와 전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어떤 정의로운 전환이나 그린뉴딜을 들고 나와도 말잔치에 머물 공산이 크다. 한국이 코로나위기 대응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이지만, 정부와 사회가 환경과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유사한 팬데믹은 물론 더 크게 다가오고 있는 기후위기도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위기를 통해 기후위기를 대비하고, 또 코로나위기를 이겨내면서 기후위기를 이겨내는 토론과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림 3]은 높은 생산성과 많은 소비, 환경 보전, 일자리 모두를 동시에 가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녹색성장과 그린뉴딜 그리고 탈성장 사이에는 교집합뿐 아니라 여집합도 존재하는 것이다. 두 위기의 시대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 우리는 ‘성장의 종언’ 또는 최소한 경제의 질서 있는 후퇴와 축소를 통한 관리된 탈성장을 의제로 올릴 때가 되었다. 경제 생활과 에너지 소비 및 오염 배출 사이의 절대적이고 충분한 탈동조화(decoupling)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총량 자체도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GDP 증가로 표현되는 경제성장이 갖는 의미를 상대화하고 다른 질적 지표들을 주류화하는 논의도 늘어나고 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는 다양한 사회적 안녕과 번영을 개념화하고,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폭넓게 인정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림 3] 그린뉴딜, 녹색성장, 탈성장의 관계 모식도 (*번역: 에너지전환포럼)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제조업, 농업, 에너지산업의 목표와 비중을 시간을 두고 전환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 농민, 협동조합의 비중과 존재 양태를 전환해야 한다. 과거 일자리 나누기의 방법으로 제기되었던 급진적 노동시간 단축 및 이와 연동되는 기본소득 보장도 현실의 요구로 논의로 삼을 필요가 있다. 중단기 과정에서 공공 부문 및 에너지, 주요 제조업 등 과거 기간산업이라 불리던 부문이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정치 및 경제 프로그램이자 주체 전략으로서 ‘정의로운 전환’이 구체화되어야 하며 ‘그린뉴딜’ 논의도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름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Ⅴ.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한국 노동조합은 업종별, 산업별 구획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획, 절대적으로 낮은 조직률 속에서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조합은 누구와 동맹을 맺고 산업과 에너지 전환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이러한 동맹 속에서 기후정의와 에너지 민주주의 전략과 더불어 노동조합의 위상과 조직을 강화하고 노동과 생산도 변화시키는 큰 담론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기후위기 대응 결과로 만들어지는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는 노동조합에게 일련의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우선 새로 창출되는 녹색일자리 다수가 건설, 교통, 상업 등 이미 노동조합 조직이 존재하는 부문이며, 녹색일자리의 성장은 노동조합이 이러한 부문을 조직하고 역량을 건설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은 녹색일자리 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녹색산업에 투자하는 지역 및 전국 법제화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며, 지역공동체 동맹에 참여하는 등 정책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 창출되는 녹색경제 부문의 처우가 대체로 좋지 못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점, 그리고 이들 다수가 미조직 상태라는 점도 역으로 노조의 조직화 전략에서 이 부문을 의미있게 만들기도 한다.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의 대응과 결과로 한국 산업과 노동조합은 지역과 부문별로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인가? 불리한 상황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노동운동이 환경운동, 지역사회운동, 진보적 정치세력과 함께 기획할 수 있는 산업 부분/지역 프로그램과 전국 차원에서 요구할 일자리 정책으로 가능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2050년 넷제로를 위한 국가와 사회 차원의 계획이 수립되고 시행된다면 노동운동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작업장과 현장에서 조합원,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식 제고와 실천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의 노동조합에게는 아직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고 선후차를 판단할 기초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도 아직 미온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본격화 한다면 노동조합은 매우 수세적으로 끌려갈 가능성마저 크다.  
 

 한국은 중앙정부 뿐 아니라 노동조합들도 정의로운 전환과 그린뉴딜의 정책과 실천에서 뒤쳐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의 노동조합들도 정책 수립과 이행에서 조직 간 이견이 발생하기도 하고 지역과 부문의 편차로 인해 곤란을 겪기도 한다. 또한 유엔 기후협약에서의 상층 로비 위주 접근과 지역에서의 급진적 실천 사이에서 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보다 필요한 건 행동이며, 일단 행동을 시작한다면 희망은 어디든 있는 것”이라는 툰베리의 말처럼, 노동조합도 움직이기 시작해야 할 때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기후변화 대응은 작업장에서의 실천, 녹색일자리 정책 만들기, 사회적 홍보와 교육, 국제회의에 대한 공동의 협상 전략까지 매우 다양한 수준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노총(2017)의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조합이 주력해야 할 몇가지 실천 과제와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조합의 기후변화 대응 활동으로서 ‘작업장 녹색화’ 프로그램이다. 작업장 녹색화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영역으로서, UNEP, ILO, 국제노총 등이 강조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는 단체협상을 이용하여 환경과 기후변화 쟁점을 다루는 전략으로 연결될 수 있다. 
 

 둘째, 총연맹과 산별 본부에 기후변화와 환경 담당 직제를 신설하는 것과 함께 ‘환경 대의원(green representative)’ 같은 역할을 도입하여 현장의 기후대응 사업 주체를 세우고 조합원 교육 및 정책 개발의 조직상 기반을 만드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기후변화와 고용에 관해서 몇 가지 기본적인 연구부터 진행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와 기후정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특히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주요 산업에 미치는 효과도 파악해야 한다. 이는 한국 상황에 적합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수립하는 바탕이 되며, 이를 기반으로 산업과 업종별로 기후변화와 갖는 관계의 특수성과 노동조합 조직의 상황에 맞는 정책 프로그램이 작성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와 지역 및 전국 차원의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의지와 조망을 가지고 사회의 많은 부분을 정의로운 전환의 우호적 동맹자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은 법제도의 신설이나 기금의 조성 같은 요소를 포함해야 하는 만큼, 제도정치와 시민사회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노라 래첼, 데이비드 우젤 엮음 (2019),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이매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6),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시민을 위한 에너지 민주주의 강좌, 이매진
제레미 리프킨 (2019), 글로벌 그린 뉴딜, 민음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2017), 기후변화와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 연구
Cameron Hepburn, Brian O’Callaghan, Nicholas Stern, Joseph Stiglitz and Dimitri Zenghelis (2020), “Will COVID-19 fiscal recovery packages accelerate or retard progress on climate change?”, Oxford Review of Economic Policy 36(S1)
UNEP·WMO (2018), “Understanding the IPCC Special Report on 1.5°C”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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