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에서는 21대 총선을 노동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고용위기 속에, 한국정치는 여전히 노동하는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선택지는 한정되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워주리라 기대했던 진보정당의 위상은 위축되었고 노동중심성도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하는 시민의 이해가 정치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한국노총이 해야 하는 정치적 역할과 새로운 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21대 총선, 노동 없는 민주주의
Ⅲ. 위기의 진보정치, 독자적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꿈
Ⅳ. 한국노총의 새로운 정치적 시도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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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선거는 결과가 발표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과 발표 후에 해석이 시작되는 데, 이러한 해석은 선거 이후의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선거에 대한 해설은 이야기를 만들고, 메세지를 전파시킬 수 있다. 승자들은 자신의 승리가 자신이 제안한 변화에 대한 승인이라고 주장하고, 대중 매체들은 이에 동의하도록 설득한다.
출처: 『비교정부와 정치(2018) Rod Hague 외 저, 김계동 외 역:357』
△ 4월 15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개표상황실
지난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이 끝난 이후 미디어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압승과 미래통합당 패배 요인에 대한 분석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국민’들이 정말 의사 표현을 했는가?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 사실 개별유권자만이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을 뿐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결과는 투표의 집합적 결과만을 반영한 편의적,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선거해석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다수득표세력의 통치에 권위가 실리며 이후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선거 해석은 이후 정치적 모색을 위해 유의미할 것이다.
최근 미디어에서 나오는 선거 관련 보도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정당과 후보를 선택해 투표할 수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는 경쟁의 틀은 주어져있다. 다만 유권자들은 주어진 것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은 것을 선택하거나 그마저 어려운 경우 기권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8:100).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노동하는 시민들에게는 어떤 선택의 기회가 있었는가.
본고에서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고용위기 속에, 21대 총선은 노동하는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지 못했으며 이들을 위한 선택지는 한정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워주리라 기대했던 진보정당의 위상도 위축된 현재를 돌아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하는 시민1)의 이해가 정치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한국노총이 해야 하는 정치적 역할과 새로운 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21대 총선, 노동 없는 민주주의
코로나19로 노동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삶이 위태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내용은 21대 총선의 선거쟁점이 되지 않았다. 많은 시민들의 삶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여러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20년 3월 취업자수가 전년 동월대비 19만5천명 감소하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일시휴직자는 160만7천명으로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충격이 본격화되고 있다(통계청, 4.17).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전체취업자 중 절반)의 규모는 아예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월부터 3월 13일까지 소기업·소상공인 공제제도인 노란우산의 공제금(가입 소상공인이 폐업이나 사망으로 더는 일할 수 없게 되면 그간 납입한 원금에 이자를 더해 공제금을 지급)지급 건수는 1만1천792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8천377건 대비 40.8% 증가했다(연합뉴스, 3.23). 즉 이번 선거는 유례없는 고용의 위기가 심화되며 실직·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 도산·폐업 위기를 맞이한 중소기업 및 영세자영업자들이 급증하는 상황 속에 치러졌다.
그런데 위기 국면에서 각 정당들이 어떤 해법으로 위기를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내용은 정작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총선과정을 복기해보면 정치인들의 막말 논란, 지난 조국사태를 상징하는 여·야 후보 간 경쟁, 비례위성정당 논란, 코로나 감염자 수치를 둘러싼 음모론 정도가 떠오른다. 그나마 의미가 있었던 논의는 재난소득기금의 소득기준 70% 정도이다.
선거기간 중 정치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단기간에 엘리트 내 정치적 논쟁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정치인, 언론인, 전문가들은 정치적 의제에 대한 공적, 경쟁적 조사에 집중적으로 참여하며 보다 중요한 정책 제안이 부각되고 해부되고 수정되고 때로 폐기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선거운동이 끝날 때쯤이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상당히 진전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선거운동은 가속화된 정치과정이다(Rod Hague 외, 2017:358).
사실 코로나19로 비롯된 위기 국면에서 고용·노동부터 재정·금융 및 경제정책까지 논의되어야하는 이슈는 많았다. 현재 기업에게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정책의 실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기업에 대한 지원과 고용유지, 해고금지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자영업 줄도산이나 폐업을 우려해 임대료 인하·동결을 유도하는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그나마 선거 때 논의가 된 재난지원금 100만원은 많은 정책들 중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물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선별이 아닌 보편적>‘무상급식’은 진보적 의제였다.
‘무상급식’을 내세운 구청장들의 당선, 이에 반발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발의, 투표율 미달과 시장직 사퇴로 이어진 일련의 정치과정은 보편복지 논쟁을 확산시키고 그 이해를 넓혔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 일자리를 잃거나 폐업을 맞이한 이들에게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이란, 물론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흔들리는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정책이 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선거 이후까지 논쟁은 여전히 <100만원 지원금의 보편-선별>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정치가 수많은 휴직·해고·실직·도산 위기에 빠진 노동하는 시민들과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는 다른 지향을 가진 세력 간 갈등이고 경쟁이며, 선거는 그간 치열하게 다투어온 싸움에 대해 시민들에게 평가받고 선택받는 최전선의 장이다. 문제는 싸움의 내용이다. 자영업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한국의 경우도 생산계층의 75%는 노동하는 시민이며, 자영업자 중 상당수도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노동하는 시민들의 삶이 전면적으로 흔들리고 있는데, 이들의 문제가 정치적 싸움과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사회의 중요한 갈등이 정치적으로 표출되거나 대표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문제점 중에 하나인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이번 21대 총선과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당이 대표하는 사회의 이익과 기반이 협소하면 역설적으로 정당 간 갈등만 강도가 격렬해진다. 정당 간 이념과 기반이 유사해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재가 빈약하다보니 오히려 감정을 자극하고 적대적 열정만 동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최장집·박상훈, 2012: 254).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막말논란도 이런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위기의 진보정치, 독자적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꿈
지난 30년간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정당·노동자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졌으나, 이 시도들 또한 위기에 처했다. 한국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 기준이 되어온 노동정치 모델은 유럽형이었고 이념적이고 계급적인 좌파정당을 건설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았던 노동세력을 정치과정으로 들어오게 하고자 했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10석을 획득하며, 드디어 한국 정당체제가 계급적 구성을 최소한이나마 반영하는 정상적인 구조로 변화(김원, 2008)하고 지체된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리는 기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정의당은 6석을 얻는 데 그쳤으며, 민중당·노동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다. 노동자 밀집 지역이자 노동정치를 선도해왔던 창원·성산지역은 있던 의석마저 내주어야했다. 물론 진보정당의 어려움은 분열의 역사 및 구조적 문제가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첫째, 지난 30년간 친노동을 표방한 진보정당은 노동자나 하위계층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학에서는 <왜 계급배반투표가 이루어지는가>가 하나의 중요한 연구 질문이 될 정도로 소득이 낮은 계층이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2000년대 이루어진 다수의 연구들은 한국 유권자의 투표결정에 계급이나 소득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의 박근혜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보고하기도 했다(한귀영, 2013; 전병유·신진욱, 2014).
물론 손낙구(2010)는 재산에 따라 계층투표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번 서울 강남벨트에서 보수정당의 승리로 볼 때 유효한 분석으로 추정 가능하다. 그러나 상위계층의 보수정당지향에 비해 하위계층의 진보정당 지향은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투표행태에서 발견되는 경향은 소득이 낮은 집단일수록 기권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3-2014년 <한국종합사회조사>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고소득층보다 중산층이, 중산층보다 저소득층이 투표에 불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높아진다(권혁용·한서빈, 2018).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토대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연령이 낮고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노조가입이나 소득수준은 진보정당 선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지병근, 2014). 이번 총선을 앞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현재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화이트칼라·수도권·젊은 세대가 중심이다(한국갤럽 4월2주차 조사). 즉 진보정당이 대표하겠다고 주장하는 취약계층 노동자는 물론 조직된 노동자의 지지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지난 30년 진보정당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둘째, 한국의 진보정당은 국회에 2004년 처음 입성한 이후 분열과 재창당을 거듭하며 조직노동과 연계가 약화되는 형태로 변화해 왔다. 과거 민주노동당 내에는 최고위원 중 1인, 중앙의원·대의원은 당규에서 노동부문 할당수를 28%로 규정하고 있었으며,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 중 절반 정도가 노동조합원이었다2). 민주노동당의 재정 중 민주노총이 제공하는 정확한 총액은 알 수 없지만 당원의 절반이 조합원이라는 점에서 정치후원금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다. 비록 예산안이지만 2007년 대선예산안에서 당의 후원금 70억원 중 50억을 민주노총의 세액공제사업으로 충당할 계획(제정남, 2007:139)을 밝히고 있어 정당 재정에 노동조합의 기여가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 논의가 다소 실무적·형식적 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으나(김영수, 2007:93) 지도부 정례협의회·민주노동당 노동위원회와 민주노총 정치분과 간 매주 회의를 비롯해 공식적·비공식적 논의가 존재했다. 이는 당이 노동자중심성을 유지하고 노동현안을 챙길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통합진보당-정의당 등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노동조합과 정당 간 공식적 연계구조는 약해졌다. 이는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을 약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앞서 밝힌 당의 지지기반 문제와도 연관된다.
미디어나 인기정치인, 일시적인 바람에 의해 비조직적 유입된 유권자의 지지는 단기적 지지에 머무르기 쉬운 반면, 노동조합을 비롯해 이익집단을 통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장기적이고 고정적이다(Poguntke, 2002). 물론 진보정당이 조직률 10%에 불과한 조직노동자뿐 아니라 다양한 노동 시민을 대변해야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진보정당에서 조직노동 대신 빈공간을 메꾼 것은 다양한 층위의 노동시민이 아니었다. 미디어나 일시적 바람으로 유입된 조직되지 않은 젊은 도시유권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지지는 안정적이지 않으며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폭넓게 겹쳐있기도 한다. 정의당 내 <조국사태> 등의 논란은 현 <조직노동>을 비롯해 고정된 지지기반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의 단면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존중>을 내세우며 집권세력이 되었다. 물론 집권세력의 노동정책은 일관되지 못했다. 노동을 주요한 사회파트너로 인정하기보다 취약한 (비정규)노동자에게 시혜를 베풀듯 <온정주의>적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거 집권세력보다 노동 배제적이지 않고 의회 다수파·행정부라는 막강한 권력자원을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최저임금제-광주형일자리를 비롯한 지역형일자리-경제사회노동위원회-탄력적근로제-ILO협약 비준 등부터 최근 코로나 고용위기까지 구체적 정책집행은 순탄치 않았고 여전히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있다.
진보정당이 이러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노동의제에 대해 선명하고 도덕적인 <주장> 이상의 정치적 역할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진보정당이 노동의제를 다루는 정치적 실력이 좋아지지 않는 한 조직노동은 물론 노동 시민들은 막강한 권력자원을 가진 현 여당 세력보다 지지할 인센티브가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진보정당들의 생존이 반드시 노동기반 강화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이후 주요정당들이 다루기 어려운 이민, 환경, 유럽통합 등 선명한 정책이슈를 주장하며 기존 정당들이 다루지 못하는 틈새 공간에서 틈새정당(niche party)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들은 노동-복지가 아니라 비경제(non-economic) 이슈를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M.Wagner, 2011).
물론 서구의 정당체제는 사회적 균열에 기반해 이미 노동-경제 이슈를 다루는 주요 정당이 안착화되어 있다. 그 틈새공간에 새로운 이슈를 다루는 작은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애초에 노동이 정당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한국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정의당 비례대표후보자 선출과정에서 환경·젠더·인권 이슈를 중시하는 후보자들이 대거로 출마해 유의미한 득표를 했다. 거대 양대 정당에서 논의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선명한 이슈를 내세워 좁지만 충성스런 지지층을 만드는 길이 양 정당 틈새에서 생존가능한 방식일 수도 있다.
진보정당에 대한 평가와 성찰은 현존하는 진보정당의 자신들의 미래뿐 아니라 과연 <독자적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는 <노동>을 고민하고 <노동정치>를 모색하는 노동조합·노동자에게 주어진 물음이자 과제이다.
Ⅳ. 한국노총의 새로운 정치적 시도와 과제
한국 주요정당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노동>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잘 다루지 못했으며 이번 총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과 같은 좌파정당 건설을 통해 노동정치를 구축하려던 길도 혼란과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유럽과 같은 좌파정당(사민주의정당)이 허약하거나 부재한 미국과 일본의 노동조합은 리버럴정당(자유주의)정당의 한분파 혹은 정책적 지분 확보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실현해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조합 역시 리버럴정당과 연계를 통한 노동정치 모색에 가능성이 실린다3). 한국노총은 2011년 민주통합당과 당통합을 통해 자유주의정당의 한 분파로서 노동 역할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비록 그 시도는 성공적으로 끝나지 못했지만 현 더불어민주당 내 <최고위원>, <전국노동위원회>, <정책위 부의장>, <정책위 노동전문위원>, <정책대의원> 등 당 내 유산을 남겼다. 이는 2017년 문재인후보·더불어민주당과 정책 연대로 이어질 수 있었고, 이번 총선에서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 후보’ 66명을 발표했고 그 중 51명이 당선되었다. 아울러 한국노총 출신의원 9명 중 6명이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소속이다.
이번 시도는 한국노총이 그동안 선거시 추진했던 추천후보나 정당과의 정책연합 시도를 중앙차원에서 체계화·구조화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노동조합이 정당에 선거자금과 선거운동·조직표를 제공하는 대신 당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노동 입법 및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형식의, “지지-공공정책의 교환체계”를 통해 정당과 노동조합의 연계를 보다 조직적으로 구축하려고 있기 때문이다. 노총의 산별연맹과 지역조직은 중앙정치위원회를 통해 자신들 조직과 밀접한 국회의원을 스스로 선정했고 후원금과 조직표·선거운동을 제공했다.
각각의 회원조합들은 제조․금융․공공․서비스․운수로 분류된 총 5개의 업종별 위원회에 참여해, 스스로 국회의원후보를 업종별위원회에 공동위원장으로 선정했고 이들 모두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노동존중 당선자>들은 상임위원회 배치 등을 고려해 이후 노조와 의원들 간 업종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노동조합이 이제 민원인 수준을 넘어서 산업별로 정당과 정책협의를 통해 보다 통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려는 계획이다.
아직 한국노총의 정치적 실험은 출발점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거대여당이 되었지만 한국노총과 맺은 <노동부문 5대 비전·20대 공동약속>이 그저 공약(空約)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앞으로가 중요하다. 한국노총이 당과 연계를 통해 끊임없이 조직노동뿐 아니라 미조직된 노동자 전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정당을 견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지도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보다 힘 있게 정치적 실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나아가 현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다수 노동하는 시민들의 삶을 낫게 만들며 <노동 없는>민주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1) 본고에서 ‘노동자’보다 ‘노동하는 시민’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첫째, 맑스주의 관점에서 노동자-자본가 등의 계급적 의미보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자원배분에 참여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 노동자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한국에서 <노동>이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은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생산자 집단·노동하는 시민들에도 해당된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가령 한국에서 비정상적으로 비율이 높은 자영업자의 대다수는 IMF경제위기 이후 임금노동자보다 소득이 낮고 빈곤위험에 빠질 확률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 역시 정치에서 중요한 의제가 되거나 정당 간 쟁점의 대상이 되지 않아왔다. 즉 한국정치는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시민들의 삶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2) 민주노동당에서 노동부문에 중앙의원·대의원으로 할당된 비율은 28%이지만, 2009년 6월23일 기준 당시 중앙의원 중 노동비율은 323명중 50명(15.4%), 대의원 1178명중 218명(18.5%)이다.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 37,000명 중(당비 납부하지 않는 전체당원은 약 7~8만에 이름) 약 45%가 노동조합원이고, 수천명의 한국노총 소속 당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민주노동당 당원 중 민주노총 소속 당원이 40%정도를 차지했다(2009.6.23. 민주노동당 조직국 당직자 인터뷰).
3) 이에 대한 국가 간 비교 및 가능성 검토에 대해서는 2019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보고서 『한·미·일 노동조합 정치활동 비교사례분석-리버럴정당과의 연계를 중심으로(정혜윤·박상훈·김진엽)』에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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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조직국 당직자 인터뷰(2009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