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영화 <올드보이>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브이씨엔씨 대표, 해당 법인에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검찰이 이들을 불구속 기소한 지난해 10월 28일로부터 115일, 이들이 ‘타다’ 사업을 개시한 2018년 10월경으로부터 약 1년 4개월 되는 날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 기간 내내 ‘타다’는 숱한 갈등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사회 화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당시 국무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이어 공정거래위원장까지 검찰의 기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마치 ‘타다’가 잘못 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무너지기라도 할 듯 경제지를 비롯한 언론도 앞다투어 ‘타다’ 구하기에 나섰다. 쏘카와 브이씨엔씨의 기업 규모나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타다’ 사업 모델만 놓고 생각할 때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도대체 ‘타다’가 뭐길래 일개 기업의 존망이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어 이렇게 온 나라가 야단법석에 휘말려야 했을까?
차분히 돌이켜보면, ‘타다’는 잘못된 질문의 연속이었다. 같은 문제를 두고 격렬하게 논쟁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각자는 모두 자신만의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질문1. ‘타다’는 혁신인가, 불법인가?
‘타다’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려는 혁신적 시도인데, 시대에 뒤떨어진 기존의 법과 제도로 불법 낙인을 찍어 정부·지자체의 규제 속에서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기존 산업을 퇴행적으로 보호할 것인가? ‘타다’는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다. 혁신이면 합법이고, 혁신이 아니면 불법인가?
질문2. 그러면 지금 택시를 이대로 계속 타라는 말인가?
‘타다’는 기존 택시 서비스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에 교묘하게 편승해서 여론을 몰아갔다. 적어도 서비스에서는 ‘혁신’이고, 승객이 ‘타다’를 더 좋아하는데 불법인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계속 물었다. 짝퉁 명품가방이 혁신적으로 좋아서 고객들이 줄 서서 산다고 불법짝퉁제조업자를 단속하면 안되는 것인가?
질문3. 정치로 해결해야 할 일인데, 왜 검찰이 나섰나?
검찰공화국을 걱정하는 점잖은 분들은 사건을 법원으로 들고 간 검찰을 나무랐다. 설령 현행법 위반으로 고발이 들어왔어도 검찰은 그냥 지켜보고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검찰개혁 촛불을 들 일이다.
질문4. 시장의 선택에 맡기면 되는 것 아닌가?
택시 산업은 정부와 지자체의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런데 ‘타다’는 여객운송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모든 규제를 피해간다. 이것이야 말로 불공정한 경쟁 아닌가? 큰 돈을 들여 택시 면허를 사서 영업해온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 아닌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타다 때문에 지금 당장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의 생계는 먼 미래에 사회가 기본소득으로 보장하면 된다고 한다. 택시 면허를 사서 영업하라고 하니 개별 기업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 안되고, 자본이 충분한 대기업만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만들어서 혁신적 ‘스타트업’의 기업가 정신을 옥죈다고 한다. 네이버 공동창업자 김정호의 말처럼, 진짜 ‘웃기는 짬뽕’이다.
책임은 모조리 사회에 떠넘기고 이윤만 취하겠다는 플랫폼기업의 전형적인 궤변이다. “현행법에 저촉되긴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우리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혁신적 사업이니 일정 기간 관용해달라, 그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과 혼란, 기존 구성원들의 피해와 손실이 일어날 수 있으니 특혜를 받는 사업자로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지만 사회도 일정 부분 함께 분담해달라”고 호소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아쉽게도 ‘타다’는 그렇지 않았다.
판결문을 몇 번이고 읽어봤다. 법원 내 최고 IT 전문가라는 그 판사님은 법정에서 “나는 이전에 타다를 타 본 적도 없고, 사건을 맡아 탈 수도 없었다”고 한다. 정말 사실인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판결은 플랫폼 기업들에게 아무런 질서와 규칙 없이 무법천지로 사업을 벌여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가 될 것이다. 항소심에서 검찰의 각별한 분발과 건투를 빈다.
그러나 이 판결이 혁신이라는 환상 속에 자행되는 ‘타다’의 모든 불법에 백지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이미 근로감독을 실시해놓고도 아직 기소하지 않고 있는 불법파견뿐만 아니라, 노동법 위반 백화점인 ‘타다’가 프리랜서 기사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불공정한 갑질 행위들에 대해선 별도의 법적 판단이 시급하다.
이제 다시 ‘타다’를 묻는다. 과연 그동안 사회 공동체가 쌓아온 가치를 양보하고, 질서를 허물면서까지 내딛을만한 가치가 있는 혁신인가? 만일 부득이하게 희생을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다면 누가 얼마만큼 부담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가죽을 벗기는(革新) 고통을 거쳐 거둔 대가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이영주(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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