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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조날인데 분빠이 해서 한 잔 빨자?

등록일 2019년11월14일 14시4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오필민 칼럼리스트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처음 당구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쓰는 용어는 무척 낯설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말들을 왜 그렇게 쓰는지도 모르고 따라 배웠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 말들은 당구경기의 국제표준어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쓰는 말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고 있었다.

스무 살 적 노동현장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공구를 가리킬 때,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일본어 투다. 그때 익혔던 버릇이 그대로 남아 지금도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이 꽤 많다. “간조날인데 분빠이 해서 한 잔 빨자.” 작업반장 형님의 말을 들으며, ‘간조날’이 뭔지 몰라 물었다. 동료들은 다 알고 있었는지 ‘월급날’도 모르냐며 나를 놀렸다. 내 얼굴이 붉어졌다.

글을 쓰면서 출판사나 인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처음 접했더니 여기도 마찬가지다. 달리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겠고, 알아도 빠른 소통을 위해 나도 모르게 그 말들을 익히고 썼다. 그런 말을 쓰는 게 ‘전문가’처럼 보일 거라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때는 우리말글을 가꾸고 지키고 소중히 써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리고 그 못된 말버릇을 지금도 쓰고 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한글을 만들었는데, 이 값진 한글과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말을 가져다 쓰고, 이를 익혀서 쓰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일본어를 배우는 일과 우리말에 일본어 투를 끼워 쓰는 일은 다르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인데, ‘잘난 척’ 하며 썼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국립국어원은 573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 투 용어 중 꼭 가려 써야 할 일본어 투 용어 50개를 선정했다. 국어원이 2005년 제작한 일본어 투 용어 순화집에 실린 단어 1,500여 개 가운데 여전히 사용 빈도가 높은 말의 표현들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다듬기위원회 위원 15명이 참여해 선정한 목록에는 ‘망년회’, ‘견습’, ‘고수부지’, ‘가불’ 등 일본식 한자어 20개와 ‘분빠이하다’, ‘나가리’, ‘나시’, ‘사시미’ 등의 일본말을 그대로 가져온 30개가 포함됐다.

국립국어원이 뽑은 꼭 가려 써야 할 일본식 한자어는 아래와 같다. 한자에도 없는 일본어 투인데, 이를 가져다 쓰고 있으니 꼭 고쳐 쓰는 게 옳다. 무의식중에 사용한 말이 있지 않나 찾아보고, 앞으로는 우리말로 쓰자. 괄호 안은 권장하는 표현이다.
 
망년회(송년회), 견습(수습), 모포(담요), 고수부지(둔치), 구좌(계좌), 노견(갓길), 가불(선지급), 가처분(임시 처분), 매대(포대/자루), 익일(다음 날), 거래선(거래처), 종지부(마침표), 대절(전세), 도합(합계), 보합세(주춤세), 불입(납입), 고참(선임), 다반사(예삿일), 수취인(받는 이), 잔고(잔액)
 
일본말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말은 아래와 같다. 우리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재미로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말을 쓴다고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스런 부스러기일 뿐이다.
 
모찌(찹쌀떡), 유도리(융통성), 나가리(무산), 나와바리(구역), 단도리(단속/채비), 땡땡이(물방울), 만땅(가득), 쇼부(결판), 와사비(고추냉이), 찌라시(전단지/광고지), 가오(체면/무게), 쿠사리(핀잔), 노가다(막노동/막일), 대빵(대장), 나시(민소매), 쓰키다시(곁들이찬), 아나고(붕장어), 가라(가짜), 간지나다(멋지다), 무데뽀(막무가내), 이빠이(많이/가득), 곤조(고집/근성), 기스(흠/흠집), 분빠이하다(나누다/각자내기하다), 사시미(생선회), 와꾸(틀), 지리(맑은탕), 뽀록나다(들통나다), 비까번쩍하다(번쩍번쩍하다), 삑사리(실수/음이탈/헛발질)
 

#한국노총 #일본말 #일제강점기 #일본식한자어 #우리말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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